사람들 이야기

기무사령관 출신 두 남자의 운명-이재수는 현충원으로, 장경욱은 이라크로

스카이뷰2 2018. 12. 10. 11:12



      장경욱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

대전 현충원에서 12월11일 거행된 이재수 장군 장례식.'절친' 박지만이 친구의 마지막에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9일 대사 신임장을 받고 있는 장경욱



기무사령관 출신 두 남자의 운명-이재수는 현충원으로,장경욱은 이라크 대사 '재취업'




 굳이 ‘운명’이라는 고풍스러운 단어를 쓰고 싶진 않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 신으로부터 각자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 받는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그 책은 하루가 지나서야 전날 일어난 일을 읽을 수 있다. 그 다음 페이지는 그 누구라도 미리 읽어낼 능력은 받지 못했다. 누구나 그 책에 적힌대로 움직여야한다는 점에서 시나리오대로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제각각 두께와 내용이 다른 인간의 ‘운명’인 듯하다.


그렇기에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자살하거나 대법원장 출신 86세 노인이 한강대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들의 책 ‘운명’에는 이미 다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단지 ‘자기 앞의 생’을 몰랐을 뿐이다. 지구상에 사는 인간군상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래서 ‘운명’은 가혹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하지만 끝내는 그 누구라도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을 내야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며칠 전 강남의 13층 오피스텔에서 투신자살한 기무사령관 출신 이재수 장군의 뉴스가 매스컴을 탄 뒤 인간 모두가 태어날 때 가지고온 ‘운명’이라는 책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비교적 ‘단정한 학자풍'인 61세 남자의 ‘가혹한 운명’을 보면서 천하남이지만 안됐다는 동정심이 들었다. 특히 그가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저 '60평생 잘 살다갑니다'라고 썼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2013년 11월 우리 블로그에 ‘기무사령관 이재수’에 대한 글을 내가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보도된 날 그에 대한 그 글에 방문객들이 많이 몰렸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당시 ‘기무사 인사태풍’에 관련된 내용을 다룬 그 글을 보면 당시 기무사령관이었던 장경욱은 점심식사를 하는데 별안간 ‘해임통보’를 받았고, 이임식을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아라는 ‘모욕적 언사’까지 듣고 그 즉시 짐을 쌌다는 스토리였다. 그 후임자가 바로 이재수였다. http://blog.daum.net/skyview999/15971985 (기무사령부인사)


 장경욱은 육사36기였고 이재수는 2013년 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동생 박지만의 ‘절친’으로 37기였다. 그러니까 장경욱은 한해 후배 이재수에게 6개월만에 밀려나면서 아마도 ‘박지만 빽’탓에 억울하게 물러난다는 ‘원한’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항간엔 그가 당시 국방장관 김관진에게 '항명'하다가 찍혔다는 설도 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재수는 박지만과 중앙고, 육사 동기로 매우 친했고 박지만이 마약투약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어려운 시절에도 변함없이 옥바라지를 했던 ‘착한 친구’였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누님’으로 부르는 ‘유일한 친구’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재수는 '본성이 선한 사람'이라는 평도 있었다. 


 '대통령 동생'의 친구여서 그가 ‘4성 장군’이 되는 건 따논당상이고 ‘정권의 핵심실세’라는 풍문도 무성했다. 하지만 이재수는 기무사령관직에서 고작 1년만에 떨렸났고 ‘별 넷’을 달지 못한 채 군문을 떠나는 ‘불운’을 맞았다. 주변에선 모두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재수는 '자기관리'도 철저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누나로 부를 정도였는데 순탄치 못한 코스로 들어간 건 지금 감방에 있는 최순실에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밉보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거의 정설처럼 돌았다.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이재수를 만나지 말라 해서 기무사령관 재직시 대통령을 한번도 ‘독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아바타’라는 모욕적인 별명까지 들어야했던 여성대통령의 ‘무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화’라고나 할까...


자 그렇다면 5년 전 ‘분루’를 삼키며 군문을 떠나야했다던 장경욱은 어떻게 됐을까. 문득 호기심이 들어 검색창에 들어갔더니 뜻밖에도 그의 타이틀에는 ‘외무 공무원’이라고 적혀있었다. 군 출신이 왠 외무공무원? 자세히 살펴보니 장경욱은 지난 11월 9일 이라크 대사에 발탁돼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까지 받은 사진도 실렸다.


아무나 대사 시키진 않을 테고 필시 곡절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뉴스추적을 했더니 장경욱은 지난해,

대선 한 달 전인 4월10일 기무사출신 자신의 옛 부하 21명을 이끌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문 후보가 우리 대한민국의 안보와 통일을 책임질 최고의 적임자임을 확인했다”며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육사생도시절부터 '투 스타 기무사령관'이 될때까지 36년 넘게 몸에 뱄던 '보수적 이념'이 그렇게 빨리 변할 수도 있었나보다.  


그날 기자회견문에선 “군 최고의 강한 보수 이미지를 가진 국군  기무사 지휘관 출신들이 민주 진보 진영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건국 이래 최초 사례”라며 “문 후보는 분단현실을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확실한 복안과 의지를 갖고 있다. 문 후보의 애국심과 국가관, 그 진정성을 직접 확인했다”고까지 밝혔다.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지 궁금하다.  


그러니까 ‘보수정권’에서 기무사령관까지 지낸 인사였지만 이례적으로 ‘진보 후보’를 지지했고 그 덕분에 이라크 대사 자리를 받은 것 같다. 뭐 꼭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뉴스추적’을 해보니 그런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는 얘기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말하자면 '보은인사'의 수혜를 받은 것이다.


어쨌든 장경욱으로선 5년 전 기무사령관 자리에서 느닷없이 밀려난 ‘원한’만은 일단 풀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보수 쪽 군출신’입장에서는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나, 보수 쪽 군부에서 볼 땐 어떤 의견이 나올지 얼추 짐작은 간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입장에서야 설마 보수 진보가 따로 있겠냐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아니 그럴거라고 믿고 싶은 심정이다. 


이 자리에서 누구와 누구의 ‘운명’을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단지 5년 전 한 사람은 6개월만에 자리를 떠났고 한 사람은 ‘좋은 자리’로 영전한 기쁨은 잠시 누렸다. 하지만 5년의 세월이 흐른 뒤 ‘무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한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갔고 한 사람은 생각을 바꿔 현 정권에 들어가 대사로 '재취업' 했다.


그들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왠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드는 스토리다. 자살이라는 극한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나 '신념'을 바꾼 사람이나 그들은 '운명의 책'에 씌어진대로 움직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인간의 앞일을 아는 건 오로지 신의 영역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연민의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행복하다’는 말은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격언이 새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