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과 피구의 숙연한 포옹
어제 새벽(6일)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월드컵 준결승전이 끝나고 승장인 프랑스 지단선수와 패장인 포르투갈 피구선수가 서로를 끌어안으면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감동적이라는 말로도 조금 부족한 것 같군요. 뭐랄까요,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야하는 두 거장선수의 그 모습은 슬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룰 것을 다 이루고 가는,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성실했던 인간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뿌듯한 성취감 같은 것을 대신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아무 상관도 없는 나라들끼리의 게임’에 정신을 뺏겼던 저에게 지단과 피구의 포옹은 시합의 승패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장엄한 기분을 맛보게 했습니다.
혼자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저는 그 두 남자들이 서로를 어루만져 주며 서로의 유니폼을 바꿔 입는 모습을 보며 순간 먹먹한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딱히 말로는 표현하기가 쉽지 않지만 30대 중반의 외국 축구선수들인 그들에게서 인생에 부여된 순도 높은 신실함이나 진중함, 비장함 같은 복합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수준 높은 영화’의 라스트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두 선수 모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들로 태어나 ‘뒷골목축구’로 시작해서 한 시대를 풍미해온 영웅들이라는 점에서 쌍둥이 같은 축구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지단을 보면 ‘애늙은이’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게자리 출생’답게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달고 달리는 것 같은 지단을 보면 어떨 때는 연민마저 들더군요.
지난번에 우리나라와 한판 겨룰 때 후반전에 선수교체로 퇴장하면서 ‘주장의 완장’을 땅바닥에 홱 던져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예민한 ‘게자리 인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늘 근심이 있는 듯해 보이는 지단을 보면서 혹시 ‘식민지 알제리’출생이라서 그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월드컵 때 아마 박지성 때문에 피구가 힘을 못썼죠. 그도 이제는 ‘황혼의 선수’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친구’인 지단과 ‘선수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승부를 겨뤘지만 승자의 자리를 내주는 순간 기분이 어땠을까요. 둘은 같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 솥밥을 먹고 뛰는 동료이기 전에 ‘국가대표’로 자기나라의 명예를 위해 싸워야 했기에 더 괴로웠을 것 같군요.
지단이나 피구나 그들 나라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지만 축구 선수로는 ‘황혼기’인 35세 노장으로 그들 생애 마지막이 될수도 있는 ‘월드컵 잔디구장’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은 모습에서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때가 되면 다 떠나야 할 우리 인생’말입니다. 언젠가 가수 조용필이 ‘생각 같아서는 21세기 말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이라는 말을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겠지요. ‘영원히’ 머물며 전성기의 순간을 누리고 싶겠지만 그러나 어김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 아니겠습니까.
신새벽부터 일어나 축구를 보면서 거창한 ‘인생공부’까지 한 셈입니다.
자! 이제 월드컵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0일 새벽에 한다죠?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최종 결투는. 전 지금부터 행복한 고민에 또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어느 나라를 응원해야 할까요?
며칠 전 독일과 이탈리아의 준결승 때도 순간적으로 어디를 응원하나라고 망설였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탈리아는 지난 2002 월드컵 때 우리에게 ‘분패’했던 팀이고, 우리는 독일한테 지는 바람에 4강에 머물러야 했던 기억이 살아나서 냉큼 이탈리아 편을 들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정서적으로도 저한테는 독일보다는 이탈리아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두 나라를 다 구경 다녀봤지만 음식도 이탈리아가 훨씬 입맛에 맞았고, 무엇보다도 이탈리아는 문화예술적인 면에서 제 맘을 끌고 있습니다.
패션도 이탈리아가 한 수 위 아닙니까. 개인적으로는 이탈리아 옷이 제일 맘에 들거든요.^^
아무튼 이탈리아를 응원할 이유가 독일을 응원할 이유보다 훨씬 많아서 그 날은 맘 편히 응원할 수 있었습니다.
보신 분들은 다 그 ‘짜릿했던 순간’에 만감이 교차하셨을 겁니다. 승부가 영 가려지지 않아 연장전까지 했고, 후반 14분이 될 때까지 0대 0이었는데 막판에 이탈리아의 그라소 선수인가요, 왼발로 툭 찬 볼이 독일의 네트를 갈랐죠. 그러고도 한 몇 초 후 질풍노도처럼 달려간 또 한명의 이탈리아 선수가 골키퍼와의 단독 대결 상황에서 또 한 골을 성공! 2대0으로 승리를 낚아챘죠. 그 순간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저게 축구고 저게 인생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축구는 왜 이렇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게 많은지! 꼭 선생님 같은 스포츠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골프에서 인생을 배운다’라는 말들을 많이 해왔지만, 저는 ‘축구야말로 인생의 교과서’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골프보다야 한 수 위에서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고 또 ‘돈’안들이고 ‘넘치는 행복감’을 선사해주지 않습니까?
골프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최소한 20만 원 이상이나 들어가는 ‘부르주아 운동’아닙니까? 우린 서민이라서 그런지 일단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 그게 무엇이든지 거부감부터 갖게 되거든요^^
제가 응원한 이탈리아가 이기니까 꼭 우리나라가 이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환호하는 이탈리아 선수들 옆에서 울고 있는 독일 선수들을 보니까 금세 맘이 안됐더라구요. 젊은 남자들이 우는 모습은 왜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요.
지난번에 우리가 스위스하고 해서 졌을 때 우리 선수들이 막 울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인생에서 우는 날이 있으면 웃을 날도 돌아오는 법이란다 라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10일 날 새벽에 열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대결을 생각하니까 지금부터 맘이 설렙니다. 이제 ‘월드컵 행복’은 서서히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를 응원할까요? 두 나라가 다 나름대로 저에겐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나라 모두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나라들 아닙니까. 요리면 요리 패션이면 패션, 우열을 가려내기 쉽지 않은 나라들끼리 ‘용호상박’의 혈투를 벌여야 하는 낼모레 새벽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어디가 이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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