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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선수 설기현의 추석선물

스카이뷰2 2006. 10. 2. 17:24
 

      효자 선수 설기현의 추석선물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설의 초반 득점이 해머(웨스트 햄의 애칭)를 기절시켰다.’ ‘설이 헤드라인을 점령할 것이다’ 이런 문장들이 오늘 영국 매스컴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오늘 잉글랜드 프리미어 팀인 레딩FC에서 맹활약 중인 우리의 설기현 선수에게 쏟아진 찬사들이다.  


어제(1일)와 오늘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한 그쪽 유럽 동네에선 ‘코리아의 설기현 선수 소동’이 일어난 모양이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게임 시작 1분 18초 만에 ‘대포알 같은 슛’을 선보인 설기현에게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는 외신도 들어왔다.


축구의 종주국답게 잉글랜드 사람들의 ‘광적인 축구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런 그들이 머나먼 코리아에서 날아온 까무잡잡한 설기현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슛에 모두 넋을 빼앗겼다고 한다. 


간만에 통쾌한 기분이다. 그렇잖아도 요즘 별로 신통한 소식도 없고 명절은 다가오는데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마음의 추석선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다. 


어제, 오늘 우리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시간마다 설기현의 이 ‘벼락 골’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정말 간만에 시원했다. ‘보고 또 봐도’ 물리지 않는 골 장면이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작렬한 설기현의 이번 ‘번개 슛’으로 같이 뛰던 선수들은 물론 축구장에 있던 관중과 구단주들 기자들 모두가 놀랐다고 한다.  골대 앞 30미터 지점이라니까 꽤 먼 곳이었다.


그런 거리에서 마크하는 상대팀 선수를 약이라도 올리듯 요리조리 볼 컨트롤하던 설기현은 냅다 오른 발 중거리 슛을 날렸고 볼은 시원하게 네트를 가른 것이다.


뉴스 시간에 여러 번 봐놓고도 모자라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날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또 보면서 문득 그의 강릉에 산다는 그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스카이뷰 블로그 5월27일자에 소개한 적이 있는 설기현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평가전에서 헤딩으로 선취골을 기록하자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것 같다”며 기뻐했다.


남편을 탄광사고로 잃고, 나이 서른에 청상(靑孀)의 몸이 되어 네 아들을 혼자 힘으로 키운 한 많은 ‘한국의 어머니’였다. 포장마차 3년, 막노동 10여년에 아들이 국가대표가 된 이후에도 과일 좌판을 벌여왔지만 ‘건실하고 넉넉한 어머니의 웃음’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부 합숙 훈련으로 얼굴 보기 힘든 아들을 보러 장사하는 틈틈이 학교 담장너머로 달려가곤 했지만 해준 게 없어서 차마 학교 안으로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어머니였다.


설기현이 중학시절 “축구부 생활이 너무 힘들다”면서 어머니에게 달려왔을 때 아들 손을 이끌고 자신이 다니던 막노동판으로 갔다. 일당 2만5천원의 막노동판에 이틀 일한 아들은 “이제 정말 축구만 하겠다”고 어머니에게 다짐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철부지아들은 막노동이 그렇게 힘든 건 지 몰랐다면서 그걸 묵묵히 견뎌내신 어머니가 안쓰럽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이 다음에 엄마를 꼭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 이후로도 축구가 너무 힘들어 몇 번이나 접으려 했지만 막노동에, 노점상에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식들 먹여 살리는 어머니가 떠올라 그 ‘힘’으로 버텨냈다고 한다.

벨기에의 프로 팀에 스카웃 되었을 때 받은 계약금으로 ‘고생만 해온 어머니’에게 설기현은 32평 아파트를 사드렸다. 


그동안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설기현은 결정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곤 했다. 한일월드컵 이태리 전 때 천신만고 끝에 동점골을 뽑아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선수도 바로 설기현 이었다.


지난 독일 월드컵 때는 프랑스에게 다 진 게임에 설기현이 절묘한 어시스트로 보낸 볼이 박지성의 슛으로 성공해 콧대 높은 프랑스인들의 기를 꺾어놓았다. 새벽잠 설쳐가며 본 우리 국민들에게 환호의 기쁨을 선사한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설기현을 두고 선배선수 이영표는 “기현이가 하루아침에 잘하게 된 선수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뭐는 하루아침에 되겠냐마는.^^

노력파 설기현은 한때 ‘역주행’한다는 둥 축구광팬들의 힐난을 받기도 했지만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다’고 그는 항상 묵묵히 연습에 몰두했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엔 적시에 강렬한 슛을 성공시켜 팬들에게 보답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월드컵 국가대표선수 중에 설기현의 ‘얼굴표정’이 가장 마음에 든다. 물론 다른 선수들도 다 나름대로 성실하고 착한 얼굴들이지만 ‘효자 설기현’의 묵묵하면서도 속 깊은 얼굴을 보면 천하 남인데도 ‘듬직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한마디로 ‘의리의 청년’처럼 보인다.


요즘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설기현의 재발견’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설기현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얘기일 것이다.

어제 성공한 슛도 단순한 슛이 아니다. 상대 팀 선수의 집요한 마크에도 불구하고 요리조리 볼을 놀리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이번 경기에선 설기현의 소속팀이 상대 웨스트 햄보다 전력상 다소 처지는   팀이었지만  그의 초반 ‘벼락 선취골’ 덕분에 1대0으로 이겼다. 그의 소속 팀 스티브 코펠 감독은 “공을 잡으면 설기현에게 주라”고 할 정도로 그를 신뢰하고 있다고 한다.


설기현의 골 탓에 진 웨스트 햄의 앨런 파듀 감독도 “설기현이 멋진 마무리(great finish)를 했다.”며 “그의 골이 너무 일찍 터졌고 우리가 공격력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득점에서 실패했다”며 패인이 설기현에 있음을 인정했다. 그만큼 설기현의 위상은 올라간 것이다.


설기현은 그 바쁜 선수 생활 중에도 1주일에 2~3차례는 국제전화로 모친과 통화를 한다. 어머니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면 힘을 얻는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효심’이 그의 에너지의 원천인 것 같다.  


그런 효자 설기현은 이번 10월 8일과 11일 열리는 가나와 시리아와의 평가전에 합류하기 위해 내일(3일) 가족들과 함께 입국한다.

설기현의 어머니에겐 이보다 더 큰 추석선물은 없을 것 같다.

‘의리의 설기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