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본능’ 한동원과 바딤 아브라모프 감독
-우즈베키스탄 전을 보고
스타탄생!
조금 전 우즈베키스탄에게 2대 0으로 이긴 ‘08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혼자 두 골을 성공시킨 한동원을 보면서 떠오른 이미지입니다.
어떤 기사에는 한동원의 별명을 ‘킬러 본능’이라고 붙였더군요.
좀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별명이지만 일단 그럴싸한 느낌이 드네요.
경기가 끝나자마자 검색창에 ‘한동원’을 쳤더니 <86년 4월 6일생, 178cm,70kg, A형>의 기본 신체조건이 나왔고, 학력은 남수원 중학교까지만 나왔더군요.
한동원은 비록 스물 한 살이지만 K-리그 6년차인 베테랑이자 한국 프로축구 최연소 출전 기록(16세 1개월)을 보유한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지난 3월 15일 아랍에미리트 원정경기에서 ‘출장정지’를 먹은 박주영 대신 뛰었는데 두 골을 성공시켜 한국 팀이 승리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내용이 떴습니다.
불과 13일전 두 골을 골인 시킨데 이어 또 두 골을 성공시켜 한국팀을 승리로 이끈 건 제 기억으론 우리 축구역사상 거의 전무한 일인 것 같습니다.
‘골이면 다냐’ 라고 비판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축구의 하이라이트는 ‘골’에 있다는 게 무지한 저의 소견이거든요.^^
대단했어요! 한동원!
오늘은 이 한동원 선수와 우즈베키스탄 아브라모프 바딤 감독을 ‘주제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물론 축구전문가가 아니니까 ‘정식 관전평’을 할 깜냥은 아니라는 걸 미리 밝힙니다.^^
이번 경기는 22세라는 나이제한을 둔 올림픽 대표팀이어서 국가대표팀 선수들보다는 한참 어려보이고 낯선 선수들이었지만 그들이 뿜어대는 신선미는 ‘국대 선수’들의 노련미 못지않더군요. 선수들의 기존 이미지의 매력면에서야 ‘국대 팀’이 한 수 위지만 신인이 주는 매력은 ‘올대 팀’이 위였죠.
엊그제 우루과이 전을 보고 우리 '다음 스카이뷰의 블로그’에 올린 ‘우루과이가 축구 잘하는 진짜 이유’에는 하루 동안 6만 명 가까운 방문객이 운집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날 저는 글의 서두에서 축구 경기의 기본 지식조차 없는 ‘아마추어 관객’으로 ‘전문적인 관전평’은 못하고, 그저 제가 느낀 이런저런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만 오늘도 다시한번 같은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군요.
저는 원 톱이니 투톱이니 해트 트릭이니 하는 용어의 정확한 뜻도 모르는 ‘축구 맹’ 수준입니다만 그저 단순한 저의 감성이 느끼는 대로 경기에서 받은 인상기를 적는 것으로 제 ‘임무’를 다 한 듯 ‘성취감’마저 느끼는 극히 ‘낮은 단계’의 축구팬입니다.^^
하지만 사랑도 ‘맹목’일 때가 무섭듯이 저의 축구 사랑은 그런 ‘유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만 나름대로 보고 즐기는 ‘맹목적 차원’에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바보 같은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답니다.^^
그래서 단순히 ‘중원을 장악했다’! 이 한 마디에 가슴 설레는 정말 무지 몽매한 관객이기도 합니다. 비록 무지하나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을 이긴다는 그런 속설처럼 저도 무식하지만 즐거워할 줄 아는 거의 ‘본능적’인 축구 관전평을 쓰고 싶은 것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던 우루과이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그의 축구 에세이집 서문에서 자신의 책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적이 있는 꼬마 축구선수들에게 바친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 꼬마 축구선수들은 축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군요. 그 노랫말을 소개한 글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저의 축구에 관한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각본 없는 시나리오’ 속에서 ‘12번째 선수’로서 자긍심을 같고 그 젊은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90분 동안 녹색의 그라운드를 누비고 나면 그야말로 ‘맨발의 청춘’이 된 양 제법 우쭐해지곤 합니다.
이번 우즈베키스탄 전에서 우린 아주 ‘시원하게’ ‘쿨하게’ 이겼습니다.
‘킬러 본능’이라는 ‘한동원’이 전·후반에 각각 한 골씩을 성공시키는 대견한 장면을 보면서 거실에서 폴짝폴짝 뛰었습니다. 나이도 잊은 채!
전반33분에 성공한 헤딩 슛! 이나 후반 39분에 우즈베키스탄 수비수가 걷어낸 볼을 아크 오른 쪽 지역에서 오른발 논스톱 발리슛! 으로 성공 시키는 순간 저는 ‘영양 주사 두 대’를 맞은 것 같은 신체적 효과를 즉석에서 느꼈답니다.^^
그야말로 엔돌핀이 팍팍 솟구치는 것 같더군요.
두 번째 슛을 성공시키고 한동원이 펼치는 ‘하트 세리모니’를 보면서 수줍은
더벅 머리 앳된 총각의 ‘순정’이 느껴졌습니다. 야생마처럼 질주하면서 ‘킬러 본능’으로 달려들지만 ‘골이라는 이름의 사랑’ 앞에서는 정작 한없이 순한 양이 되는 그런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A형 선수다운 골 세리모니였습니다.
해설자는 한동원이 겸손한 성품이라고 극구 칭찬하더군요. 겸손! 이거 쉽지 않거든요. 더구나 한동원처럼 어린 나이에 저렇게 중요한 경기를 한 게임도 아니고 두 게임 연속 두 골을 성공시키고 나면 우쭐해질 수도 있어서 아닌게 아니라 그 점이 조금 걱정이 되었거든요.
모든 분야에서 재능있는 천재들을 망치는 첫번째 독소조항이 바로 오만과 자만아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천재들이 그들의 오만과 자만 탓에 사라져버려야 했습니까. 그런데 한동원같은 재간동이 슛쟁이가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더 든든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원이 '골'을 성공시킨 뒤 수줍게 웃는 표정이 아주 보기 좋았습니다. 게다가 하트 세리모니하는 모습도 귀여웠구요.^^
‘세리모니’하니까 그동안 수없이 많이 봐온 각국 축구 선수들의 기기묘묘한 골 세리모니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우리 선수들도 인상적인 세리모니를 펼치곤 했었지요.
특히 02년 월드컵 때인가요, 안정환이 이탈리아전에서 결정적 슛을 성공시키고는 반지에 키스하며 질주하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테리우스라는 별명까지 있는 안정환은 섬세한 옆얼굴이 모델처럼 아름다워 실제로 화장품 모델로까지 선발되기도 했었지요. 그 키스 세리모니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전리품’이었다고 봅니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축구선수에게는 아마도 이 ‘골 세리모니’ 순간이야말로 그들의 ‘존재이유’일 거라고 말한다면 너무나 ‘실적주의’라고 비난하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마는 저같은 무지몽매한 관중들은 그저 골! 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라고 맹신하는 ‘골인 교도(敎徒)’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군요.^^
이야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요, 자 다시 우즈베키스탄 전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올대 팀’ 정말 잘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팀도 만만치 않은 팀이었지요.
골! 장면 외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는 최철순입니다.
수비를 위해 악착같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다가 그 가속도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해 경기장 밖의 펜스를 뛰어넘어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그 모습! 해설자는 그 선수가 ‘최 근성이라는 별명이 있는 지독한 선수인데 오늘은 최 투지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주고 싶네요’라고 칭찬하더군요.
정말 그 장면도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진기한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힘이
펄펄 나는 22세 미만 청년들의 경기니까 볼 수 있는 장면일 겁니다.
지금 그 장면을 돌이켜 보신 분들은 아마 저절로 빙그레 웃으셨겠지요.
거의 ‘만화적 수준’의 장면이지요. 마구 달리다가 장애물을 발견하자 그 위로 점프하는 광경은 어쩌면 영화 ‘ET’의 라스트 신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다가 붕하고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ET와 꼬마들 생각도 나게 하는군요.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의 푸른말같은 젊은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90분을 뛰는 모습에서 3월의 봄날이 주는 향기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국제경기’에서 제일 먼저 저의 눈길을 끄는 사람은 바로 감독!.
경기 시작 직전 양국국가가 울려 퍼질 때 우즈베키스탄 감독이 텔레비전 화면에 꽤 길게 비쳐졌습니다. 아라모프 바딤 감독!
제가 엊그제도 말씀드렸지만 축구감독들은 왜 그렇게 미남들이 많은지요!
이 바딤 감독이 화면에 비쳐지는 순간 저는 무슨 영화배우가 격려차 벤치를 찾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의 타이틀 롤을 맡았던 저 유명한 오마 샤리프와 <소피의 선택>에서 메릴 스트립과 열연한 케빈 클라인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콧수염을 길러서 더 그렇게 보였겠지요. 게다가 긴 목도리를 멋스럽게 걸쳤는데요, 축구감독이 목도리 두른 채 벤치에 서 있는 모습도 거의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패션감각이 뛰어난 감독인 것 같더군요.
저는 그 감독을 보는 순간 우리 가족에게 “저 감독 좀 봐, 하이고 배우네 배우야!”라고 소리 쳤습니다.^^ 가족도 순순히 인정하더군요.^^
감독들이 저렇게 ‘미남 과(科)’가 많은 이유는 아무래도 축구선수 출신인 그들의 ‘야성미’에다가 ‘브레인’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감독직의 직업적 특성에서 생겨나는 ‘지성미’가 합쳐져 그렇게 ‘매력적인 미남’들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요.
다 아시겠지만 그냥 단순하게 예쁜 여자들은 ‘백치미’가 있다고 하듯이 미남도 단순히 얼굴만 잘 생겼다면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지요.
그런데 이 축구 감독들은 녹색 그라운드의 ‘제왕’다운 풍모로 길러지는 것 같다는 게 저의 ‘소박한 미남 감독론’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우즈베키스탄 감독은 지난 번 우루과이 감독보다 더 멋있게 생겨서 그 ‘미인계’에 혹시 우리가 지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다행히 기우에 그쳤지만요.^^
‘패장은 말이 없다’지만 바딤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이런 말을 해서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 유감입니다. 다음번 홈경기에선 우리가 이길 것을 확신합니다. 안산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에게 지는 모습 보여서 미안합니다.”
그의 마지막 이 말에서 미남 감독의 따스한 휴머니즘이 느껴져 그가 더 멋있게 보이더군요.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경제대국 10위권 안에 드는 명실상부한 ‘부자 나라’여서 저렇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하는 나라가 된 것이라는 자부심도 느껴졌지만요, 요즘 경제가 하도 안 좋다니까 언제 또 우리도 주저앉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동시에 느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이 20만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1930년대 스탈린이 우리 조선족 출신들을 허허벌판으로 ‘강제 이주’ 시킨 곳이 바로 이 우즈베키스탄이라고 하지요.
그 ‘고려인’들이나 조국의 선수들이 왔다고 지금 저렇게 안산 경기장에 구경나온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나 신세는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기에 축구를 보면서 향수를 달래러온 동포들에게 좋은 선물을 못 드려 미안하다는 바딤 감독의 소감이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벌써 재작년인가요, 우리 팀이 우즈베키스탄에 원정경기 갔을 때 그 영세한 모습의 경기장이 떠올랐습니다.
바딤 감독은 또 “이렇게 좋은 경기장에서 승리한 경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군요. 어쩜 그렇게 ‘배우 같은 감독’은 대사도 ‘영화처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너무 미인계에 빠진 거 아니냐구요? 글쎄요, 그래봤자 그림의 떡이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경기에서 시원하게, 신나게 이겨준 우리 ‘올대 팀’ 화이팅!!!
그대들 덕분에 한 일주일은 아무 스트레스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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