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에서 맘마미아까지,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보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어젯밤 제가 그랬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을 다녀왔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도시’라는 서울의 강남은 제겐 심정적으로나 거리적으로 ‘머나먼 땅’이었습니다.
무슨 모임이라도 강남에서 열린다면 웬만해선 불참했고, 어지간한 일은 모두 ‘강북’에서 해결해왔습니다. 어쩌다 결혼식이 강남에서 열리면 ‘울며 겨자 먹기’로 가긴 갔지만 그럴 때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강남’을 실감하곤 했습니다.
강남 사는 분들에겐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이상하게 강남이란 곳은 ‘정’이 안 가는 곳이었습니다. 제 홈그라운드인 광화문이나 그 옆의 삼청동 인사동 같은 곳에서 느끼는 ‘안도감’을 강남에선 전혀 느낄 수가 없거든요.
지난 금요일, 연구실과 진료실만 오락가락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모두 보내버린 ‘딸처럼 여기는 친구’가 느닷없이 토요일 밤에 음악회를 가지 않겠느냐고 더듬거리며 물어왔습니다. 이제껏 공부 아니면 진료만 해오던 친구였기에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토요일 밤에 강남’은 제겐 거의 최악의 컨셉이었지만 제게 늘 연민의 감정을 갖게 만드는 소중한 친구가 ‘나이트 신청’을 해오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친구 따라 강남’에 다녀온 겁니다.
강남의 거대 빌딩들 사이에 자리 잡은 포스코에서 주최한 ‘렌트에서 맘마미아까지 뮤지컬 갈라 콘서트’가 우리가 다녀온 토요일 밤의 음악회였습니다.
처음엔 포스코 로비에서 콘서트를 연다기에 제 ‘공간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로비에서? 더군다나 지정좌석 번호표까지 있어서 더 궁금했습니다. 게다가 ‘갈라 콘서트’라뇨. 로비와 갈라 콘서트라는 ‘낱말 잇기’가 도저히 안 되는 단어 조합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저의 상상력과 공간 상식이 얼마나 빈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지탱해 나가는 굴지의 기업인 포스코(예전엔 아마 포항제철이었죠)의 본사 건물답게 ‘로비’는 엄청나게 넓었고, 이렇게 저렇게 설치한 임시 콘서트홀은 그런 대로 공연장의 ‘위용’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뮤지컬 갈라 콘서트’라는 쉽지 않은 용어가 문제였습니다. 그 뜻이야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아마 뮤지컬이나 음악에 관심 없으신 분들께서는 갈라 콘서트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게 여겨질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여러 모로 우리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인터넷 검색창에 ‘갈라 콘서트’를 쳐 봤더니 이런 해답이 나와 있었습니다.
“갈라-잔치의, 흥겨운 등의 사전적 의미를 가지며 흔히 아리아와 중창 등 약식으로 꾸며진 오페라에 붙는 말, 콘서트와 결합해 화려한 의상, 다양한 레퍼토리가 특징인 축제 형태의 공연” “통상 국내에서는 오페라 뮤지컬 등의 주옥같은 아리아와 중창들을 특별한 무대나 복장을 생략하고 음악 중심으로 연주되는 음악회”
이 정도면 이제 ‘포스코 로비에서 열리는 뮤지컬 갈라 콘서트’에 대한 ‘낯선 감정’은 많이 해소되었겠지요. 더구나 ‘친구 따라 가는 강남’이니 제 아무리 강남이라도 두렵지 않겠지요.
이렇게 해서 뮤지컬 갈라 콘서트는 막을 올렸습니다.
처음 등장한 여가수와 노래는 제겐 조금 생소했습니다. ‘눈은 새것을, 귀는 옛것을 좋아한다’는 말도 있듯이 귀에 익지 않은 노래와 ‘생소한’ 여가수의 등장으로 조금 긴장이 되더군요. 하지만 세 번째 곡인 맘마미아에서 나오는 'money, money, money'와 그 다음 뉴욕 뉴욕 주제곡인 ‘뉴욕 뉴욕’이 들려오면서 슬그머니 기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관객들은 한없이 점잖은 편이어서 마치 영화관에 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번 록 밴드 크라잉넛의 공연장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나 할까요. 물론 장르도 다르고 청중의 연령층도 다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장내는 너무 경직되어 있는 듯 했습니다.
오죽하면 사회를 보던 뮤지컬배우 박칼린이 “여기선 박수치고 같이 따라 하셔도 되거든요!”라고 재치 있는 멘트를 하기 전까진 음악횐지 영화관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얌전한 분위기’였습니다.
사회자가 억지로 ‘옆구리 찌르는 바람’에 점잖은 관객들은 그제서야 겨우 박수를 박자에 맞춰 쳐주기 시작했습니다. 얌전한 우리 친구도 조용조용 박수를 치더군요. 저요? 저도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얌전히’ 박수를 따라 쳤습니다. 저번 크라잉넛 공연 때 ‘광분’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사람이 달라진 거지요. 아무튼 그렇게 미미한 ‘열광’이 보내졌지만 가수들은 ‘열창’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에비타의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들으면서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페론의 젊은 부인이었던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그린 이 ‘에비타’는 ‘인간의 허망한 운명’과 비운에 스러져가는 댄서출신의 전설적인 퍼스트레이디를 그려 전세계적으로 굉장한 인기를 모은 작품이죠.
아주 멋진 의상을 차려입은 여가수가 애절하게 부르는 그 노래를 듣다보니까 웬지 저도 우리 친구도 모두모두 ‘가여운 인생’이라는 ‘싸구려 감상’이 일어났습니다. 따지고 보면 가엽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자들일지라도 한낱 ‘풀잎에 맺힌 이슬’같은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미천한 댄서 출신이었지만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 되어 나름대로 자신같이 ‘미천한 사람들’을 보살피려 했다는 에바는 32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암으로 죽어갔다죠.
그런 그녀가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마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전 인간의 ‘본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노래의 멜로디는 또 얼마나 애절합니까. 울지 마라 해도 저절로 눈물이 나오더군요. 옆에 앉은 친구에게 들킬까봐 얼른 눈물을 감추는 제 모습도 좀 코믹했겠죠.
왠지 저는 옛날부터 그 친구 앞에선 부모처럼 ‘의연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가 워낙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거든요. 언젠가 백화점에 함께 쇼핑을 갔는데 마치 일곱 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다닌 기분을 느낀 이래로 전 언제나 그 친구를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친구 앞에서 ‘나약하게’눈물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그 노래가 끝나자 속이 다 시원해졌습니다. 그 다음엔 빤짝이가 붙은 까만 드레스로 성장한 여가수가 ‘캬바레’를 멋지게 불렀고, 우리 귀에 익숙한 ‘Winner Takes it All'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이 노래도 사실 꽤 재밌죠. 인생은 카드게임처럼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고 하는 이 노래는 그룹 아바의 노래 중에서도 아주 잘 만들어진 곡으로 꼽히고 있죠. 멜로디도 아주 대중적이면서도 음악성이 있는 듯하죠. 팝송에 약한 저도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도 가창력이 풍부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저 정도면 우리 뮤지컬 배우들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 맘마미아의 하이라이트인 ‘맘마미아’ ‘댄싱 퀸’ ‘워털루’를 ‘최고의 드레스’로 차려입은 여가수들과 그들을 받쳐주는 젊은 남자 가수들이 나와 춤을 곁들이며 그야말로 ‘열창’을 했습니다.
그 순간엔 얌전했던 객석도 역시 ‘젊은이들의 주도’로 ‘스탠딩 자세’가 나왔습니다. 쭈볏쭈볏 눈치를 보던 저와 친구도 앞이 가려 안 보인다는 핑계로 벌떡 일어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전 이상하게 ‘군무’하는 장면만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영화 ‘메종 드 히미코’의 나이트 클럽 군무 장면에서도 눈물이 막 흘러내려 좀 창피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 때 배경음악의 애절한 가사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 그 순간엔 잘 몰랐지만 아무튼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어제도 어김없이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무대를 활기차게 움직이는 남녀 뮤지컬 배우들의 군무를 보면서 눈물이 막 흘러내렸습니다.
군무! 에선 어떤 인간의 저항적인 몸짓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유한한 우리네 인생에서 그 순간만큼은 온갖 시름을 다 놓아버리고 그냥 흐르는 물처럼 우리들도 흘려보내는 그런 ‘무위의 정신’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귀에 익은 멜로디에 맞춰 목청껏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는 무대 위의 그들과 이렇게 몸을 흔들며 잠시 세상사를 잊고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우리들 모습을 보면서 감사의 눈물인지 아니면 회한의 눈물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특히 ‘공부만 해오던 친구’를 보니 더 애틋한 마음이 들더군요. 인생에서 흔히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을 거의 모른 채 오로지 환자돌보기와 연구에만 몰두해오던 ‘철부지 친구’가 저렇게 몸을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까 눈물을 주체하기 어려워지더군요.
자! 이렇게 해서 잔치는 끝났습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청중들을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것 같았습니다. 직업정신이 발동해 오늘 몇 명이나 왔냐고 주최 측에 물었더니 912명이 왔다고 했습니다. 적지 않은 관객동원이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포스코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이런 ‘음악 공연’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역사회를 위한 기업의 사회공헌행사라고나 할까요. 기업측에서 보면 이런 소공연을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하고 지역주민들로서는 문화공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여서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행사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 동네야 워낙 수준 있는 강남 아닙니까! 이런 행사를 ‘돈 있는 기업’이 ‘돈 있는 동네’에서만 할 게 아니라 저기 달동네에서도 다달이 행사를 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에게 “너 아까 군무 장면에서 뭉클하거나 울컥하지 않았어?” 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또 일곱 살짜리 철부지 목소리로 “아니! 왜에?”라고 어린애처럼 되묻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과학소녀’는 ‘군무’를 보며 울컥하는 감정 나부랑이에 대해 ‘공감’을 할 정도로 감성이 예민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조그만 자극에도 뭉클하네, 울컥하네 하면서 주관이 흔들린다면 ‘오진’하기 십상이겠지요.
그저 우리같이 ‘백수(白手)정서’에 익숙한 그야말로 ‘철없는 인생’들이나 ‘인생’에 대해 절절 매면서 ‘일희일비’를 취미생활처럼 하는 거겠죠.
그러고 보니 ‘친구 따라 강남’간 제 모습이야말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여겨지더군요.
좀 둔감해서 인생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주어진 대로 묵묵하게 살아나가는 ‘과학 마인드’의 친구야말로 어쩌면 인생에 대해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뒤 밥을 먹으면서 모기만한 목소리로 우리 친구가 “이민을 가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그야말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 역시 우리 친구는 내가 영원히 보호해주어야 하는 아이라는 마음이 들더군요.
전 다시 씩씩해져서 “야 미쳤니! 이민은 뭔 이민 ! 지금 니가 여기서 해야할 일이 얼마나 많은 데 그런 쓸데없는 소릴 하니 시끄러!”라고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어 짐짓 친구를 꾸짖었습니다.
즐거운 토요일 밤, 뮤지컬 갈라 콘서트씩이나 보고 난 우리들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은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걸 재확인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일 겁니다.
최고로 화려하게 성장(盛裝)을 한 뮤지컬 여배우들이었지만 조금씩 세월의 나이테가 묻어나기 시작한 그녀들을 보면서 인생에 대해 애틋한 감상을 새삼 느껴본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다녀오면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한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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