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발렌타인데이와 어떤 실연이야기

스카이뷰2 2007. 2. 14. 15:27
 

         발렌타인데이와 어떤 실연(失戀) 이야기


며칠 전 친구로부터 어떤 청춘남녀의 ‘실연 스토리’를 들었습니다.

‘러브 스토리’에서 시작한 이 ‘실연 스토리’를 들으면서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이른바 상류층 부모들의 한심한 의식구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어서 우리 블로그에 그 간략한 실연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슬픈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남녀는 현재 서울에 있는 명문 의과대학 졸업반학생들입니다. 편의상 김군과 이양으로 호칭하겠습니다.


김군과 이양은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든 의과대학 공부를 하면서 서로는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예쁜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김군과 이양은 집안 환경도 비슷했습니다.

김군의 부친은 서울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의 교수이고 이양의 부친은 지방 사립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이라고 합니다.

모친들도 엇비슷한 수준으로 명문여고와 명문여대 출신들입니다.


이양은 대학에서 꽤 이름난 미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흔한 쌍꺼풀 성형조차 하지 않은 완벽한 ‘자연 미인’이었답니다.

이양은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팔방미인이어서 화장법도 배우러 다니고 꽃꽂이도 익히는 한편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다닐 정도로 못하는 게 없는 여학생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녀의 모친은 자신의 딸이 대한민국에선 최고의 신부감이라는 자부심속에 살고 있었겠죠.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김군 역시 뭐 하나 빠질 데가 없는 모범학생이었다는군요. 공부는 이양이 조금 더 잘 했답니다. 그건 김군이 이양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뒷얘기도 들립니다.


요즘 웬만한 청년들이 다 그렇듯이 순하디 순한 김군은 이양의 보디가드 겸 공부 도우미로 언제나 ‘레이디 퍼스트’의 정신 아래 이양을 헌신적으로 돌봐왔다고 합니다.


자연미인인 이양은 둘째 치고 의과대 모범생인 김군의 모습이 대강 짐작되시죠. 요즘 최고 인기라는 주말 드라마 ‘하얀 거탑’에 나오는 ‘순둥이 레지던트 염동일 군’을 상상하시면 될 겁니다. 요새 장준혁 과장으로부터 호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 좀 가엽죠?^^


아무튼 두 청춘 남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당연한 코스인 ‘결혼’을 상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불길한 그림자가 연인들을 에워싸기 시작했습니다.


이양의 모친은 자신의 딸이 대한민국 최고 신부감이라는 자신감 아래

김군 집에 ‘빠른 결혼’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양의 모친 얘기로는 자신의 딸을 ‘신부의 절정기’인 25세에 결혼을 시켜야만 하겠다는 거였죠. 하객들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김군 측에선 어차피 그 힘들다는 인턴 과정도 거쳐야하니까

한 2년 정도 후에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답니다.

그 때부터 양가의 감정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군은 이양을 조용히 불러내 결혼을 빨리 할 수 없는 자초지종을 말했다는군요. 그것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요.


요즘 청년들은 거의 ‘마마보이 급’이어서 그 정서가 아가씨들 못지않게 섬세하다는군요. 그러니 순둥이 김군으로선 자기가 사랑하는 연인의 청을 선뜻 들어주지 못하는 ‘신세’가 서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겠지요.


김군은 자신의 부모님이 강남에 전세로 준 아파트가 있는데 2년 후라야 그 전세를 뺄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전세금은 2억 5천만원쯤 한다는군요.

그러니까 당장 결혼할 수 없는 ‘사연’은 바로 ‘자금 부족’이었다는 얘기지요.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이양의 모친은 일언지하에 ‘그 결혼을 불허한다’는 말을 했답니다.


엘리트 여성인 이양의 모친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예비사위가 ‘최고’의 명문의대출신이 아니라는 점을 늘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있었답니다. 게다가 2억5천만원 정도를 융통하지 못해 자신의 ‘꽃 같은 딸’을 다 시들게 한 뒤에 시집보낸다는데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는 얘기였죠.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윗감’은 일단 대한민국 최고 명문 의대출신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 전공과목은 요즘 최고 인기라는 안과 정도, 2순위 인기라는 피부과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구요.

거기에 시아버지 자리는 명문대 출신으로 정형외과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장 급이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세워놓았다는군요.


하얀거탑에 나오는 장준혁과장의 장인도 아마 돈 잘버는 정형외과 병원을 운영하고 있죠? 그러니까 사위를 과장으로 승진시키는 과정에서 웬만한 상황은 케이크 상자속의 현금으로 해결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 것 같더군요.


물론 자신의 딸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최고의 신부감이다보니

자식 가진 부모 마음에 그 정도의 ‘욕심’을 잠시 가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입에 맞는 ‘조건’의 신랑감과 시아버지 감을 찾기 위해 6년이라는 짧지도 않은 세월동안 사랑을 키워온 자신의 딸과 그 연인을 그렇게 무쪽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그 ‘배포’가 참 저 같은 심약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게다가 딸의 가슴에 못 박는 건 물론, 남의 집 귀한 아들의 가슴에까지 ‘대못’을 박으면서까지 ‘실연’을 강요한다는 건 부모로선 할 짓이 못 될 것 같은데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두 연인은 ‘실연의 상처’를 안고 일단 헤어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 이양의 심정도 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조건’이 좀 맞지 않는다며 헤어지라는 모친의 ‘엄명’에 그렇게 순순히 따를 수 있냐는 거죠.

어떤 영화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요.


아무래도 프라이드 넘치는 모친의 가정교육이 그녀로 하여금 그 귀한 사랑을 쉽사리 버리게 한 것 같지요? 이양이 변심했을 거라구요? 글쎄요 누구의 마음이 변했는지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마침 초콜렛 장사가 웃는다는  발렌타인데이입니다.

‘사랑’의 덧없음에 가슴 앓아야 하는 청춘남녀들이 오늘 같은 날엔 뭔가를 기대해보고 싶기도 하겠지요.

 

사실 사랑이 덧없는지, 있는지 저 자신도 아직까지 명쾌한 판단을 내리지는 못하겠습니다.

세상의 온갖 유행가대로라면 아무래도 사랑은 덧없는 쪽에 가까운 듯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씀드린 김군과 이양은 과연 어떤 결말을 보아야 ‘덧없는 사랑’의 희생자가 안 될까요? 


일단 표면적으론 ‘실연의 상처’를 안게 되었지만 두 연인은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하면서 자신들의 사랑이 덧없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과연 어떤 결말이 좋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랑’보다는 ‘조건’을 따져가며 결혼으로 ‘업그레이드된 인생’을 원한다는 말도 떠돌고 있습니다.

만약 이양이 모친의 ‘엄명’으로 모친이 세워놓은 가이드라인에 맞는 새신랑을 맞이한다고 해서 과연 그녀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수줍은 청춘남녀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는 발렌타인데이에 갑자기 한 청춘남녀의 ‘실연이야기’가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항마가 나오기도 했다죠?^^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라지만 김군과 이양의 경우엔 아무래도 ‘어른들의 개입’으로 젊은이들에게 공연한 ‘시련’을 안겨준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웬만하면 ‘자식들의 애정사(愛情事)에 부모는 강제로 관여하진 맙시다’라는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은 발렌타인데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