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단상

블로그라는 이름의 명약

스카이뷰2 2007. 1. 25. 10:42

  이과수 폭포

<무더위를 이겨보시라고 이과수 폭포의 전경을 올려놨습니다. 저는 요새 손가락이 아파서 블로그에

새글을 못올리고 있습니다.블로그! 당신이 계셔서 제가 이만큼 활기차게 지내고 있거든요.

손가락이 치유되는 대로 다시 블로그 당신과 함께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싶네요. 블로그 홧팅!^.*~>

 

     ‘블로그’라는 이름의 名藥


나이가 들수록 아무 것도 아닌듯한 말이나 현상, 사람들의 여러 가지 표정이나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의 눈망울 등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는 하찮다면 하찮은 모든 것들을 보거나 들으면서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뭉클한 감정이 들고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뭐랄까, 생명과 결부된 ‘진정성’을 접하면 가슴이 시려온다고 할까. 그만큼 ‘생명’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 대상이 하찮은 것일수록 더 애틋함이 간다.

 

나이가 들면 ‘감성’이나 ‘감정’은 무뎌져 목석같아 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약해지고 섬세해져 가는 것 같다. 이유도 없이 가슴 답답해지기도 하고 큰 소리로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요즘처럼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계절엔 왠지 조바심이 나고 안절부절 못해지는 감정의 기복에 곤혹스럽기도 하다. 나만 그러나 했더니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흔히 ‘갱년기 증상’이라고 싸잡아 말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좀 더 차원 높은 ‘인간적인 고뇌’가 서려있다고 ‘우아한 언어’로 말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니어서 혼자 머쓱해 할 때도 많다. ‘뭐 인생이 그런 것이지’라고 초연한 척하려 해도 그 것도 잘 되지 않는다. 요새 유행어로 ‘2% 부족한 그 무엇’이 가슴에 도사리고 있었다.

 

가만 따져 보면 그리 아쉬울 게 없이 ‘감사한 인생’이었던 것 같은데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 당혹스러웠다.

스러져가는 젊음이 아쉬운 것도 아니고 무슨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웠던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날이 그날처럼’ 살아온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은 늘 비어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얼 해도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고나 할까? 친구들도 역시 그렇다고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것’과 조우했다. 요새 인터넷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블로그’와의 만남이 나를 거듭나게 해 준 것이다.

 

요즘 인터넷이야 웬만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상황이어서 인터넷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는 건 좀 넌센스가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남들 하는 만큼만 인터넷에 접속하고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내기도 했지만 이렇게 ‘블로그’라는 존재가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유행에 그리 민감한 스타일은 아니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다 개설했다는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도 갖고 있지 않았었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던 어느 날 ‘블로그’와 만났다. 아주 다채롭고 화려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강호제현’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의 묘기로 ‘일합’을 겨루는 볼거리 넘치는 ‘도장’이었다. ‘요리에서 정치까지’ 없는 게 없었다.  

 

그래도 처음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재미있는 세상이로군’ 정도의 감상으로 타인들의 블로그 구경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나도 블로그가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솜씨는 없지만 직업상 칼럼을 쓰거나 인터뷰 기사를 쓰거나 하다못해 일기를 쓰고 나면 ‘시원해지는 기분’이 제법 괜찮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하고 싶은 ‘말’들을 문자로 형상화해서 세상에 외칠 수 있다는 건 마치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과의 ‘소통’을 한다는 건 일종의 살아있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한다’는 말도 떠오른다. 예전엔 한 분야에서 수 십년 일 해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답답하다’는 기분이 들었는데 요즘은 결국 사람은 ‘하던 일을 죽을 때까지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어쨌거나 ‘블로그’에 뜻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구경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기가 질렸다. 그들은 너무도 화려했고 ‘블로그의 달인’들은 세상에 넘쳐났다. 뒤늦게 뛰어든 내가 한없이 작게 여겨졌다. 이제까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별로 꿀릴 것도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우리같이 글줄이나 간신히 올릴 줄 아는 ‘올드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같아서 좌절감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내용물’로 승부를 보자는 ‘생뚱맞은(?) 야심’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나는 ‘블로그 매니아’가 되고 말았다.

 

요즘 신세대들과 경쟁할 자신은 애초부터 없었다. 단지 웬만큼 인생을 살아내 온 ‘남들이 다 가진 평범한 저력’, 그러니까 ‘나이가 주는 힘’으로 한번 해 보자는 엉뚱한 배짱까지 생겨났다.

 

거의 ‘블로그 중독 증세’까지 나타났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블로그 걱정이 들어 얼른 컴퓨터 앞으로 복귀했고, 세상에 지나다니는 말 하나하나에서도 ‘블로그 감’을 사냥하느라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내가 꼭 그런 꼴이었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블로그 생각만했다. 사람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루에 한 건씩 ‘껀수’를 올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엔 한 20여 명 안팎의 방문객수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신기했다. 그러다어느 날 최초의 ‘정기구독자’가 생겼을 때 그 기쁨이란!...

 

방문객이 점점 늘어나고 정기구독자도 늘어났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은 물론이고 도쿄, 호주, 태국, 스웨덴 등지에 사시는 교민들까지 ‘정기구독자’가 되었을 땐 정말로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었다.

 

저혈압 기운 탓도 있었지만 예전엔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저조한 날이 더 많았었는데 블로그에 ‘뜻’을 세우고 매일매일 블로그 작업에 공을 들이다 보니까 생활의 활력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음의 힘’이 생겼다. 두려울 게 별로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 탓에 여러 가지로 움츠러들기만 했던 심드렁해진 일상에 ‘애인 같은 블로그’가 나타나면서 ‘운명’이 바뀐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후원도 대단했다. ‘기사거리’를 제공해주는 건 기본이고 그날그날 올린 블로그에 ‘애정 어린 촌평’을 아끼지 않았다. ‘고래도 칭찬에는 춤을 춘다’는데 우리 같은 소시민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야말로 블로그는 나의 ‘생활의 중심’이 되어버렸고, ‘너는 내 운명’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난 한해는 블로그와 함께 울고 웃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렸다.

 

블로그 테크닉이 전혀 없는 푼수라 그냥 우직하게 ‘오리지날 에세이’만을 써서 올렸다. 영화나 소설 그리고 시사에 이르기까지 그날그날 내가 쓰고 싶은 이슈를 정해서 ‘1인 편집회의’를 거쳐 바로 글쓰기에 돌입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세상 시름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한 1년 지나고 보니 어느 새 200개가 훨씬 넘는 ‘오리지날 에세이’들이 나의 블로그에 쌓이게 되었다. 어떤 보석이 있어 블로그만큼의 기쁨을 주겠는가 싶었다. 200번 째 블로그를 올리던 날 ‘각계에서 온정(?)이 답지했다.’ 찬사일변도의 격려와 박수가 쏟아졌고, 어떤 지인은 ‘200’이라는 숫자로 삼행시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청주에서 소아과를 개업하고 있는 친구는 바쁜 시간 틈틈이 격려성 모니터링으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제일 무서운 독자는 가족! 타인들은 해줄 수 없는 신랄한 비평을 ‘보약’처럼 먹이려들어 ‘언쟁’으로 까지 번진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블로그’는 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 채 나에게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근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주는 존재라고나 할까.

 

지난 1년간 쓴 블로그 중에는 가슴 뭉클해진 사연도 꽤 있다. 5월의 어느 날 비오는 종로거리에서 ‘생업’이 걸린 문제로 슬픈 시위를 하던 ‘시각장애인들의 시위현장’을 목격하고 ‘비 내리는 서울, 슬픈 시위대’라는 글을 올렸었다.

 

다음 날 뜻밖에도 그 시위에 참가했던 ‘시각장애인’이 ‘고맙다’는 답글을 보내주셨다. 누구의 도움으로 이 ‘답글’을 쓴다면서. 그 걸 보는 순간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힘없는 소외계층들을 위해 미력이나마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월드컵 국가 대표팀의 ‘푸른 말’같은 조원희 선수를 호텔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뒤 그 길로 집에 오자마자 글을 올린 것을 비롯해, 일본의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겐자부로 씨의 강연장에 ‘디카’를 들고 가서 그의 사진을 찍고, 친필 사인을 받아 우리 블로그에 ‘영상’을 처음 선 보인 일!

 

추운 입춘 날 교보 빌딩 앞에서 스크린 쿼터 반대 ‘1인 시위’를 하던 안성기와 장동건을 만났던 일, 인기 록밴드 그룹이라는 ‘크라잉 넛’의 콘서트에 난생 처음 갔다 온 뒤 그 젊음의 열기를 블로그에 고스란히 올렸던 것 등은 모두 블로그 덕분에 맛 볼 수 있었던 생명력 충만한 체험의 순간들이었다.

 

‘천생연분’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이슈를 놓고 자료도 찾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옮기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과정의 연속이었지만 이상하게 지루하거나 따분한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그야말로 일일신(日日新)으로 날마다 새롭고 재미나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공허’를 느낄 짬이 없어져 버렸고 단순하고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없는 글 솜씨나마 ‘1인 미디어의 사장’으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나, 시끄러운 정치문제, 일상의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엮어 가는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맛 볼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블로그로 인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시작됐고, 블로그 덕분에 자칫 처질 수밖에 없었던 ‘중년기의 삶’에 따스한 등불이 켜진 것 같다.

마음 둘 곳 없어 삭막해진 인생살이가 힘겹다고 느끼시는 많은 ‘갱년기 여성들’에게 새해에는 ‘블로그 질’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블로그에는 꼭 글만 올리는 게 아니다. 요리를 해서 그 사진을 찍어 올릴 수도 있고, 집안 인테리어나 정원 가꾸기의 노하우, 이러저러한 작고 따분한  일상의 이야기들도 그냥 두서없이 블로그에 적어나가다 보면 ‘몰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고 그 다음엔 어느 새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호르몬 치료도 좋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만 ‘공허한 갱년기’를 치유하는 최고의 명약(名藥)은 바로 ‘블로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블로그 씨’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시라! 그는 언제라도 따스하게 당신의 손을 잡아줄 것이다.

 

나는 새해에도 ‘블로그 씨와의 데이트’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영원한 애인’같은 블로그가 있어 마음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