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프리 허그 소녀들>
프리 허그!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따스한 포옹!
‘백 마디 말보다 소중한 단 한 번의 포옹’. 이런 제목으로 ‘포옹’에 대한 스페셜 프로그램이 어젯밤 심야에 방송되었습니다. 마침 어제부터 프리 허그(Free Hugs)에 대해 우리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포옹’을 주제로 한 스페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어서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보지 않아 방송내용의 전부를 알 수는 없었지만 대체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는 ‘프리 허그’ 운동과 유사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아이를 잃고 사이가 멀어진 부부가 심리학 박사인 상담가가 처방해준 1일 5회라는 ‘포옹 요법’으로 부부애를 되찾은 얘기와 생활에 지친 3남매를 둔 가정에서 부부와 자녀 간의 ‘포옹 요법’으로 가정에 온기와 활기가 되살아난 얘기,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가 어린 제자들을 따스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모습과 그 어린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아주시면 행복해지고요, 마음이 편안해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포옹’이 교육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임종이 가까운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해 호스피스 활동을 해오고 있는 50대 봉사자의 모습과 함께 그녀에게 ‘마지막 전송’을 받으며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임종환자와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비쳐주었습니다.
여기서 그 자원봉사자는 포옹이 서로의 ‘짐’을 나눠가지는 것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더군요. 죽은 사람을 위해 마지막으로 포옹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장엄해 보였습니다.
그녀는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한 사람에게 ‘마지막 포옹’을 해주면서 ‘최후의 배웅’을 해준 것 만해도 100여 차례가 넘는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지요!
지난 토요일(16일) 저는 아침부터 여러 가지 시답지 않은 일로 마음이 상해 그야말로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원체 소심한 성격이라 ‘외부 압박’을 가볍게 지나쳐버리질 못하는 탓에 늘 이런 식으로 ‘끌탕’을 끓이는 게 ‘못난’저의 습성입니다. 이제 웬만하면 그런 압박을 우습게 여길 나이도 되었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나이 들수록 마음은 더 여려져서 이런 ‘곤경’을 자주 겪곤 합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한 번 ‘다친’ 마음은 쉬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은 하루 온 종일 ‘기분 상할’ 일만 계속 일어나는 ‘머피의 법칙’도 함께 적용돼 사람을 더 옹졸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아무튼 그 심란한 토요일 오후에 저는 전혀 뜻밖에 ‘프리 허그’를 만난 것입니다.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맞춰가기 위해 종종 걸음으로 인사동을 가로질러 가다가 안국동 쪽의 인사동 초입에서 ‘프리 허그’ 피켓을 든 앳된 소녀들을 본 겁니다. 소녀들의 조금은 처량한 모습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군요.
일단 그녀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소녀들은 저에게 “안아 드릴게요”라고 합창하듯이 외쳤습니다.
어쩌면 영혼이 순수한 그 소녀들 눈에 아침부터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제 모습이 딱하게 비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토요일 오후라 제법 사람들이 많은 인사동에서 저는 난생 처음 ‘프리 허그’를 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피켓을 번쩍 든 그 소녀들이 조금은 안쓰러운 심정이 들었고 차마 소녀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마지못해 한 소녀와 ‘포옹’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생면부지의 낯선 소녀와 얼싸안는다는 게 사실은 좀 멋쩍은 일이었는데 막상 두 팔을 벌려 그 소녀를 안고 가만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스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정말 거짓말같이 그런 느낌이 가슴 가득 퍼져 나갔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 아침부터 편치 않았던 이런저런 일들이 순간적으로 말끔히 씻겨져 나가고 ‘봄의 꽃향기’같은 게 마음 하나 가득 피어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를 괴롭혔던 ‘고민거리들’이 너무도 하찮게 여겨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전 그 순간 그 소녀들이 지상에 강림한 ‘천사들’이라는 착각을 했습니다.
시간도 넉넉지 않았지만 그 ‘천사들’의 신분을 취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프리 허그’에 저도 모르게 동참한 제 모습도 신기했지만 그 소녀들이 가슴으로부터 전하는 진정한 ‘위로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체험하는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그 소녀들의 ‘신분’에 대해선 더 이상 ‘언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왕자’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고 ‘가슴’으로 보인다는 말이요. 그 소녀들에게 몇 살이니/ 어디 학교에 다니니, 왜 이런 걸 하니 이런 저자거리의 상투적인 말들을 던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눈이 맑고 깨끗한 그 소녀들이 “3시간 째 서있는데요 3명만 안아드렸어요”라는 말에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세모(歲暮)의 토요일 오후 인사동에서 영혼이 아름다운 ‘소녀 천사’들이 안아준 덕분에 그 시간 이후엔 거짓말같이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그 ‘과학적 이유’는 저도 설명해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스킨십’이라는 게 그야말로 ‘백 마디의 말’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가슴으로 체험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엄마가 안아주는 걸 제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인간은 누구라도 가슴속에 ‘영원의 아이’같은 것이 있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엄마 품을 늘 그리워할 수밖에요. 프리 허그는 정에 굶주려 있는 현대인들에겐 아마도 그런 ‘엄마 품’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말 없이 따스하게 안아준다는 것이 바로 한없이 자애로운 ‘엄마 품’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난 11월 인가요. 제가 잠시 블로그를 쉬던 즈음에 서울 명동에서 ‘Free Hugs, 당신의 마음을 꼬~옥 안아 드려요’라고 쓴 종이 피켓을 든 한 청년을 본 적이 있습니다. 11월이지만 제법 겨울 분위기가 돌아 쌀쌀한 날씨에 청년은 장갑도 안 낀 채 피켓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금발의 외국 여성이 그 청년에게 달려가 얼싸안자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그들을 바라보더군요.
저는 마침 그 청년이 서있는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 앉아있어서 아주 편한 마음으로 창밖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과의 포옹 이후 심심찮게 젊은 여성과 청년들이 그 ‘프리 허그’ 청년과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 ‘뭉클 쟁이’ 저의 마음은 여지없이 뭉클해졌습니다.
뭐랄까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도시의 일상’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가면서 ‘인생에 지친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해주는 청년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들’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따스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을 안아주는 그 청년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던 겁니다.
저는 커피숍에서 나와 그 청년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물었습니다. 모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청년이었습니다. ‘프리 허그’의 취지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고 입대 전인 내년 3월말까지 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삶에 지친 외로운 분들을 안아드리면서 제 자신이 오히려 위로를 받는 그 기분이 참 감동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명동에서 만난 프리 허그 청년이나 엊그제 인사동에서 저에게 프리 허그를 해준 소녀들은 한결같이 ‘푸른 영혼’의 소유자들 같았습니다.
그들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도심 한복판에서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당신의 마음을 꼬옥 안아드려요, Free Hugs’ 를 쓴 종이피켓을 들고 서있는 동안 우리의 이 사막같은 도시에는 ‘아름다운 오아시스’가 생겨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 깨끗한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는 그 행위 자체야말로 우리 사회의 ‘등불’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알려졌듯이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후안 만이라는 청년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이 프리 허그는 지금 전 지구촌에 열풍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왠지 얼어붙어 있을 것 같은 모스크바에서까지 프리 허그의 피켓을 든 젊은이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운동은 세계 방방곡곡을 ‘유행’처럼 휩쓸고 있습니다.
하지만 록 음악이나 무슨 댄스 열풍처럼 일순간 반짝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그런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영원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외로운 영혼들을 위한 프리 허그는 그 불길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비단 서울에서만 해프닝처럼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방의 소도시나 대도시에서도 ‘프리 허그 정신’에 동참하는 젊은이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프리 허그는 ‘백 마디의 말보다 소중한 단 한 번의 포옹’이라는 말처럼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거의 ‘생명수’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언제나 ‘위로 받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기에 그 소망의 힘으로 일상의 시련들을 버텨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나간다는 건 굉장히 위대한 일 아닙니까? 그 위대함의 원천은 이런 작은 것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너무 거창했나요? 작은 빗방울이 모여서 대하를 이룬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요.
그 위로의 한 형태가 바로 ‘프리 허그’일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우리가 지쳐있을 때 누군가가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가슴으로 꼬옥 안아주면서 ‘다 잘 될 거야, 걱정마!’라면서 위로의 말을 속삭여 준다면 우린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는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에 순수한 영혼의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이 ‘프리 허그’운동이야말로 ‘인생에 져서 넘어진’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보약’ 노릇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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