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의 전쟁 촬영견학 공식투어'라는 일본의
여행 안내 팸플릿이 눈길을 끈다.>
‘쩐의 전쟁’이라는 주간 드라마가 인기다.
얼마전, 아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뜬 한 여성드라마작가는 임종직전 “암보다 더 무서운 건 시청률이었다”라는 처절한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오죽하면 죽어가면서까지 ‘시청률!’에 목을 맸을까 싶어 가여운 생각이 든다.
‘쩐의 전쟁’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사람을 울리는 ‘시청률’에서 현재 수위를 다툰다고 한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데 시청률이 벌써 30%를 넘었고, 이번 주에는 40%를 바라본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이 드라마에 대해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우연히 처음 시작하는 날 중간부터 봤다. 내가 좋아하는 박신양이 형편없이 망가진 모습으로 나와 깜짝 놀랐다.
3년 전, 시청률 50%를 넘겨 박신양을 최고 남자 탤런트 반열에 올려놨던 ‘파리의 연인’을 보면서 ‘저 탤런트 괜찮다’ 는 느낌을 가졌었다.
특히 보잘 것 없는 서민 출신의 애인에게 ‘이 세상 좋은 것만 줄게요’라는 사랑의 송가를 직접 부르는 박신양의 모습은 ‘파리의 연인’을 최고 연애드라마로 띄워주었던 것 같다.
‘사랑’이 부재한 시대라는 요즘 그렇게 재벌집 도련님이 옥탑방에 사는 여성을 사랑한다는 설정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었지만 원래 인기 드라마가 되려면 일단은 ‘초현실적 요소’를 깔아줘야 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니까, 그렇게 턱없는 설정 자체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화려한 도련님’인데다가 노래 솜씨마저 빼어나 웬만한 가수보다 미성을 자랑하는 박신양이 숯 검댕 묻힌 얼굴로 나와 악을 쓰는 첫회를 보면서 박신양이도 한 물 갔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쩐의 전쟁’이 원작은 만화라는 건 전혀 몰랐지만 박신양의 애인이 “돈이 그렇게 필요하냐”라고 소리치며 그에게 병원 복도에서 돈 뭉치를 확 뿌리고, 지폐가 낙엽처럼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혹시 만화이야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튿날 신문에서 ‘만화 원작’이라는 기사를 보고 웃었다.
그렇게 해서 몇 차례 보는 동안 ‘쩐의 전쟁’이 상당히 심각한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드라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신문의 ‘만화’로 푸는 ‘TV주평’에는 “쩐의 전쟁 온가족 버닝 중!”이라는 재치있는 멘트와 함께 “아빠가 ‘하얀 거탑’ 이후 새롭게 빠져 드셨죠”라며 온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쪼르르 앉아 있는 뒷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이 만화주평의 ‘등장인물’ 품평이 꽤 재밌다. 박신양은 ‘이 시대의 진정한 광대’, 고수 사채업자로 나오는 신구에 대해선 ‘신구샘 사랑해요’, 악덕 사채업자로 나오는 이원종에게는 ‘완전리얼해 원종오빠’라고 해 놓았다.
또 ‘쩐의 전쟁’의 교훈으로는 1)사채는 절대 안 되야요!!!!
2)집안 경제상황은 온가족이 공유하자!(내가 알아서 할 게는 곤란하다)
3)고시생 애인 뒷바라지는 조심해서 하자 -.-로 요약하고 있다.
가만 보니까 이 ‘쩐의 전쟁’이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럴 수밖에 없게도 생겼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이 ‘쩐’에 얽힌 사건 사고는 얼마나 많은가. 좀 심하게 말하자면 이 ‘쩐’에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생활을 하려면 필수적인 존재가 바로 이 ‘쩐’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쩐의 전쟁’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 것이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이 탄탄하다. 박신양과 그 상대역 여주인공격인 ‘당돌한 미인’ 박진희가 일단 사람들을 끄는 ‘투 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최고 조연들이라고 할 수 있는 신구· 박인환, 여운계· 이원종· 등등 무슨 역을 맡아도 제 몫을 단단히 해내는 톱클래스 배우들이 종횡무진으로 받쳐주고 있으니 시청자들로서는 일단 안심인 것이다.
일찍이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만들어냈다. “돈은 모든 것의 척도다.”
‘더치페이’라는 말을 만든 민족답다. 이에 뒤질세라 우리에겐 이런 속담도 있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이 속담이 어쩌면 한 수 위인 듯하다.
이 드라마에서도 돈에 관한 고수들의 '철학'이 쏟아져 나온다.
극중 금나라의 '사부'로 나오는 신구(독고 철)는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 고 말한다.
금나라가 사채시장에 발을 담근 뒤 첫 '직장 상사'인 마동포는 "법보다 주먹, 주먹보다 쩐이 앞서는 세상"이라고 호언한다.
금나라 역시 이 드라마의 엑기스같은 대사를 읊는다. "대한민국은 돈이면 다 됩니다. 낙타가 아니라 코끼리, 항공모함도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요!"
부친의 사채빚에 떠밀려 억지결혼식을 올리려다 금나라에 의해 '구출(?)'된 은행원 서주희는 희한한 명언을 던진다. "남자는 상처를 남기지만 돈은 이자를 남긴다!" 이쯤되면 '쩐의 전쟁'이 안 일어나는게 이상한 세상이다.
‘돈과 사랑 얘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에게 무궁무진한 ‘명작 스토리’를 제공해온 핵심 요소다. 오죽하면 ‘돈에 울고 사랑에 속고’ 뭐 이런 진부한 유행가 가사마저 만들어졌겠는가.
좀 학구적으로 말하자면 고전 경제학자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는 “한 사람의 부자가 있기 위해서는 500명의 가난뱅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쩐’에 관련한 주옥같은 금언들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만큼 ‘돈’은 인간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쩐의 전쟁’은 다 알려진 대로 주인공 금나라(박신양)가 사채업자로 성공해 나가는 과정을 줄거리로 그의 파란만장한 청춘스토리를 시청자에게 속도감있게 전달한다.
지난주에는 ‘파리의 연인’에서 노래로 크게 히트했듯, 또 박신양이 노래방에서 ‘존경하는 형님’을 위해 노래를 한 곡조 뽑는다. 이번엔 ‘파워 레인저’라는 만화영화의 주제가로 지구를 침공하는 악당외계인들을 물리치는 씩씩한 스토리를 가사에 담고 있는 노래다. 이 노래가 나가자마자 벌써부터 극렬 팬들로부터 컬러링을 하고 싶은데 제목이 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원래는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려했는데 ‘똑똑한 배우’ 박신양이 자신의 어린딸과 즐겨 부르는 그 ‘파워 레인저’를 적극 추천, 밀고 나간 것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들려온다. 이 드라마 분위기 상 남진 노래보다는 파워 레인저가 훨씬 시청자들에게 어필했을 것 같다.
그동안 고리 사채업의 문제는 매스컴을 통해 간간히 제기되곤 했지만 이번‘쩐의 전쟁’처럼 강렬하게 온 국민에게 파고들진 않았었다.
그냥 세상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경이롭기까지 한 ‘사채-쩐의 세계’는 소름마저 끼친다.
2천만원 빌렸는데 이자까지 합쳐 1억원을 갚아야하는 계산법! 1억원을 빌렸는데 4억원을 갚아야 하는 엄청난 폭리는 더 이상 고상한 말이 필요하지 않을 듯싶다.
가정이 풍비박산 망가지는 건 기본에 생명마저 위협 당한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노출된 가여운 서민들은 폭우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마리 가여운 참새 같다.
이 ‘쩐의 전쟁’의 인기비결은 간단하다. 일단 웬만한 사람들의 삶에 직결될 수밖에 없는 ‘쩐’에 대해 아주 야비할 정도로 직설화법으로 마구 거칠게 다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벌써 제목에서 먹고 들어간다. ‘쩐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첨 들었을 때 퍼뜩 ‘대박 날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쩐’이라는 발음에서 울려 퍼지는 온갖 날것의 싱싱한 퍼덕거림이 상상되지 않는가.
확실히 만화가들의 상상력은 일반인이나 아니면 드라마 작가들보다는 윗길인 것 같다. 제목에서 벌써 사람을 확 끌어 모으는 흡인력이 있으니 드라마 자체야 웬만큼만 끌어나가면 ‘본전’은 따고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매력 있는 남녀 주인공 배우’를 내세웠으니 2/3의 성공은 거두고 시작한 셈이다.
아버지의 사채 빚 때문에 인생까지 망쳐가는 우리의 젊은 여주인공 서주희역을 맡은 박진희는 요 근래 제일 매력 있는 여배우 같다. 당돌함이 온몸에서 뿜어 나온다. 똑 부러지는 연기력도 사줄만하다.
여기에 러시아에 유학가서 연극을 전공했다는 박신양이 주인공으로 나섰으니 웬만하면 시청률 30%야 따논당상 아니겠는가. 그러니 인기비결이니 뭐니 따질 것도 없다. 좀 속되게 말하자면 제작진들 장사 참 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전혀 모르는 악덕사채업자의 세계와 조폭의 세계를 다루고 있으니 앞으로 ‘쩐의 전쟁’도 연장방송 운운의 기사가 곧 나올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 ‘쩐의 전쟁’의 약발로 그동안 사채광고에 출연했던 한 여성탤런트가 광고 출연 중단을 선언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효과가 이만하면 웬만한 정치인 뺨치는 것 같다.
‘쩐의 전쟁’에서 역시 여성 악덕사채업자로 나오는 여운계는 실생활에서도 현재 사채광고에 출연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양심선언’을 할 지 궁금하다. 이밖에도 최민식이나 최수종같은 이름있는 남자 탤런트들도 사채광고에 출연중이라는데 그들도 지금 어쩌면 전전긍긍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로 인해 우리 사회가 모두 정신 차려서 특히 ‘일본계’대부업체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는 이 사채시장을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이 좀 정화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런 효과를 거둔다면 ‘쩐의 전쟁’에 대해서 대한민국 정부는 ‘훈장’을 수여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한편 보면서 이렇게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쩐의 전쟁'은 요즘 새로 뜨는 '한류 드라마'로서도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일본의 박신양팬들이 이 드라마 소식을 듣고 벌써부터 '쩐의 전쟁 투어' 신청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의 연인'으로 일본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모았던 박신양 효과를 톡톡이 보고 있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는 박신양과 박진희가 맘에 들어 계속 이 ‘쩐의 전쟁’을 시청할 예정이다. ^^ 악덕 사채업자로 변신해가는 박신양이나 사채에 못이겨 억지 결혼까지 하려했던 박진희가 앞으로 어떤 사이로 발전할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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