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본점 명품관의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의 진실게임
며칠 전 우리 스카이뷰의 블로그에 실은 ‘이명희 신세계회장과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은 독자 여러분의 엄청난 호응을 받았습니다. 시카고와 워싱턴 뉴욕 도쿄 등지에 사시는 교민 여러분이 장문의 의견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명품’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것이겠지요.
그 글의 말미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2억짜리 핸드백의 후일담’을 위해 엊그제 신세계 본점 에르메스 매장을 찾았습니다.
서울에 사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 잠시 말씀드리자면 신세계 본점은 서울 충무로에 있습니다. 맞은편에 한국은행 본점이 있구요, 백화점 정문에서 일직선으로 한 5백미터(?) 거리에 롯데 본점이 있습니다. 그 쪽이 그러니까 ‘본점 동네’인 겁니다.^^
지하도만 건너면 명동이 바로 이어져 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바로 뒤편에 남대문 시장이 있구요. 요샌 일본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예전에 비해 굉장히 많아진 듯합니다.
예전엔 신세계백화점이었는데 신관이 뒤편에 들어서면서 ‘본점-명품관’으로 바뀐 겁니다. 듣기로는 이 건물을 철거하려 했지만 일제시대 때 지어진 이 건물이 워낙 튼튼해서 철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난 바람에 리모델링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롯데 백화점 본점 바로 옆에 있는 ‘애비뉴엘’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명품관이 이미 자리잡고 있어서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신세계측은 엄청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국내 최고 재벌인 삼성 창업자의 막내딸인 이명희씨와 롯데 신격호 회장의 큰딸인 신영자씨, 그리고 그녀들의 자녀들이 벌이는 ‘소리 나지 않는 전쟁’인 이 백화점사업 경쟁 덕택으로 우리네 일반인들은 ‘눈 호사’를 누리는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명희 회장은 본관 인테리어에 얼마를 들여도 좋으니까 ‘작품’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해, 본관을 장식하기 위해 들여놓은 예술작품에만 2백억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이 회장은 대학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한 실력을 발휘해 이번 본관 인테리어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는데요, 명품관 매장의 상품들의 진열상태나 상품의 질을 꼼꼼히 체크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6층 조각공원에 전시한 50억원 상당의 조각품이 일부 훼손되는 바람에 이 회장이 꽤 안타까워했다는군요.
라이벌인 롯데에 많이 밀리고 있다는 신세계지만 이번 ‘명품관’만큼은 ‘자존심’을 걸었기에 곳곳에 롯데를 의식한 흔적이 많이 드러났다고들 합니다.
애비뉴엘이나 신세계 명품관을 들어서면 무슨 특급호텔에 들어선 듯해 조금 위축되는 듯한 심정이 되곤 하는 건 아무래도 제가 오갈 데 없는 서민이라서 그런가봅니다. 아무래도 그런 ‘가게’에선 제가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지레 자격지심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취재’를 위해 신세계 본점 1층에 있는 에르메스 매장에 갔습니다. 특이한 건 보통 백화점 각 매장엔 문 같은 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에르메스 매장 입구는 검은 격자무늬로 장식된 ‘웅장한 문’이 있더군요.
물론 고객이라면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 속으로야 주눅이 들건말건 그냥 태연한 척 들어서도 되련만 그런 웅장한 문을 보니 왠지 제가 들어갈 구역은 아닌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이 주는 선입관 탓에 그런 심정이 들었겠지요.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매장 안에 들어선 순간 저는 직감적으로 그 ‘2억 짜리 핸드백마마(!)’는 안 계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점쟁이는 아니지만 저는 어떤 장소나 순간에 맞닥뜨릴 때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감’을 잡아채곤 하는데요, 대체로 빗나가진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 매장에 발을 딛는 순간 ‘2억님’은 안 계신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휙 둘러보니까 아무리 에르메스라지만 뭐 그만그만한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여성 의류 몇 점 넥타이 스카프 그리고 가방, 핸드백 등 흔히 있을만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이거다!’하고 맘에 드는 물건은 별로 없었습니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눈’하나는 높아서 그런가봅니다.^^
아무튼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까 까만색 복장을 한 점원이 다가오더군요. 아주 참해 보이는 아가씨스타일이었습니다. 물론 ‘외모’를 보고 채용한 인재겠지요. “뭐 특별히 찾으시는 게 있으십니까”라고 그녀는 아주 상냥하게 물어보더군요. 저는 조금은 거만한 말투로 “버킨이 안 보이네요”라고 말했죠.
속으로야 어쩔는지 몰라도 그녀는 제가 ‘웬만한 버킨’은 구입할 능력이 있는 고객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진 건 없는 사람이지만 때때로 있어 보인다는 얘기를 듣는 편이거든요^^)
그녀는 제게 “주문을 하시면”이라고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저는 좀 냉랭한 말투로 “됐구요, 그런데 여기 2억짜리 버킨이 있다던데 왜 안보이네요”라고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제서야 그녀의 표정이 홱 바뀌더군요. ‘아 이 사람은 고객이 아니로구나’라는 얼굴빛이 완연했습니다. (저는 또 사람의 내심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걸 캐치해내는데도 다소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 백은 저희 매장엔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전 하고는 달리 다소 냉랭했습니다. “아니 여기 에르메스 매장에 있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신문에도 나왔구” 제가 슬그머니 말꼬리를 잘랐습니다. 내가 다 알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 이거죠. 그런데 그 아가씨는 한사코 그 핸드백은 자기네 매장에 진열된 일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아니 여기 분명 2억짜리 버킨이 진열됐고, 이 회장님이 그걸 팔에다 걸쳐 보셨다는데 무슨 소리야?”
그 아가씨의 대답이 다소 의외였습니다. 그게 아니라 그날 이 회장님이 버킨 핸드백을 들고 오셨다는 얘깁니다.
몇 번을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어서 알았다고 하고 일단 그곳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 찜찜했습니다. 신문기사나 온라인 뉴스에서도 분명 이회장이 2억짜리 버킨을 보고 ‘한 말씀 ’ 하셨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왜 그럴까 싶어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 ‘한 말씀’이 매체에 따라 다르게 나왔기에 저는 그 ‘진실게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건의 현장’을 간 것이지요.
조금 전 그 아가씨를 찾았더니 점심식사를 갔다고 합니다. 제가 뭘 좀 취재하러 왔다고 하니까 ‘점장 신명희’씨가 왔습니다.
그녀는 신문기사가 잘못 나가는 바람에 자신이 ‘직장’을 그만두어야할 위기에까지 처했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녀는 좀 화난 듯한 얼굴로 “신문기사가 틀렸습니다. 그날 이 회장님과 기자들이 수십명이 따라왔는데 어떻게 감히 회장님에게 우리 직원들이 핸드백을 사시라고 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신문기사에는 매장 직원들이 회장님에게 2억짜리 핸드백을 사시라고 권했다고 나왔거든요.
그녀는 계속 ‘신문에 난 기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그날 ‘2억짜리 버킨’이 있었던 건 사실 아니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녀는 “그 핸드백은 다른 매장에서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객님 두 분이 그 핸드백을 주문하셨습니다”라고 확인해주더군요. 이 회장님이 “20만 달러나 하는 건데 사는 사람이 있냐”고 말한 것도 사실이라네요.
그러니까 점장의 얘기와 기사들에 실린 내용은 어느 정도는 비슷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유독 ‘신문기사’에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런 ‘이상한 기사’가 나온 바람에 자신의 입장이 너무 난처해졌다는 겁니다.
그녀는 다른 코너에 있는 주얼리들은 2억짜리 버킨 보다 훨씬 비싼데 왜 그런 건 말하지 않고 우리 것만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계속 자기네 매장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 너무 속상하다는 듯 거의 울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녀는 “더 이상은 안 떠들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날 이명희 회장님과 그 딸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가 들고 온 백도 바로 ‘버킨 백’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2억짜리는 아니었구요.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버킨’에도 ‘계급’이 있어서, 1천만원대부터 4천만원대까지 다채롭게 나와있는데요, 그날 ‘회장님 모녀’가 들고 온 건 얼마짜리였는지는 ‘비밀’이더군요.^^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여성 중 최고 갑부인 이명희 회장이야 2억짜리 정도의 ‘버킨’은 얼마든지 들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진심입니다.)
요는 에르메스 매장에 ‘그날’ 방문한 이명희 회장의 발언이 왜 그런 식으로 ‘와전’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했던 건데, 매장 직원들은 자꾸 쉬쉬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더군요.
하기야 신세계백화점의 한 임원이 “에르메스를 유치한 직원들에 대한 격려 차원에서 회장님께서 그런 말을 한 것이지 실제 구입한 건 아닙니다”라는 해명까지 한 것을 보면 이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을 둘러싸고 신세계 내부에서 굉장한 진통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 신세계 본점 명품관의 에르메스 매장엔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은 ‘안 계십니다.’ 그걸 주문했다는 두 분의 고객에겐 아마도 직접 자택으로 배달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2억짜리 버킨 핸드백’은 신세계 본점엘 가도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게임’의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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