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현실속 하얀거탑의 주인공들

스카이뷰2 2007. 2. 13. 09:43
 

          현실속의 ‘하얀 거탑’ 주인공들


요새 MBC 주말 드라마 ‘하얀 거탑’이 꽤 인기를 끌고 있다죠.

처음부터는 안 봤습니다만 같은 시간대에 다른 드라마들이 시원찮아 요 2주 사이 주말엔 그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특히 주인공 장준혁으로 나오는 김명민의 연기가 뛰어난데다가 여러 매스컴에서 칭찬해줬듯이 조연들의 연기도 탁월해 거의 실화 분위기로 나가는 바람에 흥미를 더했지요. 


원래 끔찍한 수술 장면 같은 건 잘 못 봐주는 심약이라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잠시 채널을 돌리곤 했었는데 지난 토·일요일엔 주로 법정 공방을 둘러싼 이야기들이어서 집중해서 봤습니다.


일본 원작 드라마를 거의 그대로 번역했다는 지적도 나온 듯하지만 어쨌거나 볼 만한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저는 20여 년 전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권짜리로 꽤 긴 분량이었는데도 단숨에 읽어 치웠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야망에 불타는 주인공 외과의사 자이젠 고로가 승승장구하다가 끝내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는 큰 얼개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야마자키 도요코라는 작가가 쓴 이 소설은 발표 당시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폐쇄적인 의사사회를 리얼하게 그린데다가 등장인물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통속적으로 잘 그려낸 덕인지 당시 굉장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여류작가는 ‘불모지대’라는 대하소설로도 명성을 떨쳤던 일본에선 손꼽히는 원로급 대중소설 작가입니다.


‘불모지대’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인물은 실존 인물로 우리나라의 정계 ‘배후 조정자’로도 이름을 떨쳤던 ‘세지마 류조’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박정희전대통령은 물론이고 고 이병철 삼성회장을 비롯 현존하는 국내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사부’ 비슷하게 행세했다죠.


아무튼 이 ‘하얀 거탑’은 일본에서도 두 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그 흥행이 어느 정도 보증되었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 몇 몇이 현직의사로 활동하고 있어서 그들로부터 이런 저런 의료계 이야기를 평소 많이 듣고 있는 편입니다.


지난 1월 말, 마침 ‘하얀 거탑’이 시작했을 무렵 국립대학병원의 분과장으로 있는 친구와 그 제자인 젊은 내과 전문의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주로 열병식 하듯 회진할 때 수많은 제자의사들을 소떼처럼 몰고 다니는 ‘국립대학 외과과장’의 모습이 과연 현실성이 있나 없나에 대화의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친구 이야기로는 외과의 경우 종종 그런 분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얌전한’ 내과에서는 그런  ‘군대적 분위기’는 약한 편이라고 하더군요. 드라마에서도 장준혁 과장의 동료인 내과 최도영 교수는 온순한 타입으로 나오죠.^^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과’에 따라 드라마에서처럼 폼 재기 좋아하는 권위주의적인 의사가 더러 있다는 얘기겠지요.


친구의 제자인 온순해 보이는 그 젊은 내과의사는 자신이 수련의 시절 ‘신경외과’에 전설적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어찌나 무서운 분이었든지 당시 수련의들이 전문 과목을 선택할 때 ‘신경외과에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그 ‘공포의 선생님’은 다행히 정년퇴직하셨다는군요.^^


얼마 전인가는 종합병원의 수련의들에게 선배나 교수들로부터의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된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도 있었습니다.

마침 ‘하얀 거탑’에서도 저승사자보다 무섭다는 선배가 후배 수련의들을 옥상에 집합시켜놓고 단체기합을 주고 몽둥이 ‘세례’를 하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요새 세상에 가능한 얘기야’ 라고 거부감을 느끼실 분들도 많은 것 같아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천사 같은 분위기’의 우리 친구 말이 걸작이더군요.

‘사람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 같은 수술실에서 ‘아무개 선생님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는 고운 말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어느 정도의 엄격함이나 강인한 훈련은 유능한 의사로서 성장해 나가는데 필수적인 통과의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어쨌든 그 친구 말대로 의사는 ‘사람 목숨’을 다루는 직업인만큼 한 치의 오차나 실수도 허용이 안 되는 분야라는 데에는 저 역시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의료계 현실이 굉장히 복잡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의료법을 복지부가 밀어붙일 태세인데 대해 개업의들은 ‘결사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어제(11일) 개업의를 중심으로 하는 의료인들이 시위를 했다지요.

어제 오후 2시 무렵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 청사 앞에선 전국에서 몰려든 2만여 명의 의료인들이 깃발을 흔들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오늘 조간신문에도 크게 보도 되었더군요.


저는 마침 지방에서 개업하고 있는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 시위에 참석하기 전 점심을 함께 했는데요, 그 친구는 새로운 의료법은 ‘개업의’들에겐 상당히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 이야기로는 거의 사회주의 수준으로 의료계를 초토화시키려는듯하다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있는 친구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의료법에 무지한 저로선 확실한 판단이 서질 않더군요.


그러나 의사하면 굉장히 존경받던 직업이었던 예전과는 달리 의사들, 특히 개업의들은 의료보험이나 새 의료법으로 인해 상당한 피해를 입는 듯했습니다. 예전 한때 잘나가는 개업의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셈이지요.


저도 가끔 동네 가정의학과를 찾지만 의료수가가 엄청 싸다는 느낌을 받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의료수가가 싸고 비싸고의 문제를 떠나 이번 새로 개정돼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의료법자체가 개업의들 입장을 곤란하게 만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개업 의사들이 못살겠다고 아우성들이지만 그래도 요즘 하도 취업난시대이다 보니 고3수험생들 사이에선 ‘제주 의대 다음에 서울 공대’라는 말이 돌 정도랍니다. 그만큼 아직은 의사가 선망의 직업이라는 얘기겠지요.


의사는 적어도 30대 중반만 되면 회사에서 떨려날 ‘공포’에 시달릴 염려는 없지 않냐 라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똑똑한 학생들이 전국 방방곡곡의 의과대학을 채운 다음에야 공과대학을 찾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다보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암담한 거 아닐까요? 한쪽에선 현직 개업의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드라마 ‘하얀 거탑’으로 의료계에선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야망에 불타는 주인공 장준혁과장의 ‘맹활약’은 시청자들에게 의사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라는 게 의사친구들의 주장입니다.


어쨌거나 현실속의 ‘하얀 거탑’으로 상징되는 의료계는 요즘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병원은 대학병원대로 개업의는 개업의대로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좌파성향’의 현 정권이 의료계를 ‘마지막 공적’으로 몰아붙여 나가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하얀 거탑’ 의사들의 공통 심리인 듯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