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색, 계'의 짜증나는 홍보와 이안 감독

스카이뷰2 2007. 10. 30. 11:54
 

<이안 감독>

 

 <양조위>

 

   

    영화 ‘색, 계(色, 戒)’의 짜증나는 홍보와 이안 감독


요 며칠 새 인터넷을 이용하는 분들이라면 거의 누구라도 ‘색, 계’라는 영화에 대한 홍보 기사의 제목을 질리도록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니까요. 검색어 순위에서도 ‘색, 계’는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아침 신문에는 “격렬한 베드신 찍다 내가 눈물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든 이안 감독의 인터뷰가 크게 실렸더군요.


아직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건 다소 이상한 일이지만 제가 문제 삼고 싶은 건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의 홍보 전략과 영화사의 홍보를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 쓴 각종 기사들입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고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손님을 끌고 돈을 벌려고 하는 거야 나무랄 수 없을 겁니다.

홍보야말로 21세기 기업이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는 생존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든 기업에서 혹은 정부에서 내보내는 광고와 홍보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광고들은 자기가 알아서 피해버리면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듯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색, 계’라는 영화의 홍보에 대해 제가 불쾌감을 느낀 건 미국에선 이 영화에 대해 NC-17등급(17세 미만 관람불가), 중국에선 30분가량 삭제돼 개봉했지만 한국에선 완전 무삭제로 개봉할 예정이라는 대목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18세 미만은 관람 불가랍니다.

 

물론 예술 작품에 손을 대거나 삭제한다는 건 곤란합니다. 특히 영화작품을 정부당국자가 임의로 삭제한다는 건 사실 있어서는 안될 일이겠지만 어느 나라나 어떤 규정이 있을 테니까 그걸 일일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나라에선 무삭제했다는 걸 유독 강조하면서 은근히 관객을 유인하는자세가 별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에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부분에 대해 ‘자유가 많은’ 우리나라에선 무삭제로 개봉했다는 대목을 그냥 그대로 지나치기가 꽤 거북하더군요. 삭제냐 무삭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로 호객행위하는 것 처럼 보여선 곤란하다는 얘기지요.


듣기로 이 영화에선 양조위와 신인 여배우 탕유의 ‘가려야 할 부분’이 그냥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격렬한 정사 신!’ 다 좋습니다.

일반 성인들이야 이런 게 무슨 대수입니까. 하지만 제가 걱정스러운 건 중고등학생들입니다. 한참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미국이나 중국에선 ‘삭제한 부분’을 굳이 ‘무삭제’로 개봉한다는 게 자랑인지요. (아무리 18세미만 관람불가라도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은 다 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세상이라서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성의 왜곡된 부분들이 노출돼 각종 범죄가 일어나고 그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닌 듯한 세상입니다.


그런 마당에 영화 홍보사는 ‘무삭제 개봉!’을 자랑하고 있으니... 게다가 온갖 인터넷 매체와 오프라인의 매스컴들까지 가세해 ‘격렬한 정사 신’ 어쩌구 하면서 어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이 상황을 가만 보기 힘들었습니다.


무슨 극우보수주의자거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우리 청소년들은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이 영화의 배급을 맡고 있다는 CJ엔터테인먼트의 ‘색 계’ 홍보방법이 심히 걱정스런 겁니다.


개인적으론 이안 감독과 양조위를 참 좋아합니다.

이안 감독은 오래 전 ‘음식 남녀’로 저를 유쾌하게 해줬고, 그의 영화는 웬만한 건 거의 다 봤습니다. 작년에 본 ‘브로크백 마운틴’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 수작입니다.


이 감독은 어제 인터뷰에서 그랬더군요. “브로크 백 마운틴이 천국의 사랑이라면 색,계는 지옥의 사랑이다”라구요. 대강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습니다.

본 사람들 얘기로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 남녀의 세 차례에 걸친 파격 정사 신이 무려 30분! 가량 나오는데 보기에 민망했다고 합니다.

 

3분도 꽤 길고 지루할 텐데... 30분 씩이나.... 더구나 실제상황이었네, 아니네 등 말도 안되는 논란도 있다니 영화사로는 홍보에 대성공을 거둔 셈이지요.

포르노 영화도 아닌데 러닝 타임 150분에 정사씬만 30분이라니 영화 볼 맛이 싹 가시네요. 도덕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영화에서 이런 씬 많이 나오면 솔직히 별 재미가 없다는게 저의 개인적 생각입니다. 

 

이안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안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얘기겠지요. 이 눈물이 늘어간다는 건 나이가 들어간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그는 이렇게 파격 정사 신을 찍게 된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과거의 나는 보수적인 편이어서 사랑도 평범하게 해온 사람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젊었을 때 내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브로크 백 마운틴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정사 신이 아니라 제약된 사랑에 대한 괴로움이었다. 색, 계는 색에서 출발한 것이 영화의 중점이기 때문에 훨씬 더 노골적인 정사신을 보여줬다. 그것이 낭만적인 사랑이든 아니든 간에 꼭 필요한 부분이어서 그렇게 표현했다.”


이안 감독은 “이 영화가 미국에서 NC-17등급을 받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NC-17등급을 받게 되면 상영하는데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을 받게 됨으로써 작품과 노력을 함께 인정받는 것같아 기분이 좋다”고도 했더군요.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은 뉴욕대학 영화과 출신으로 지난 30여년간 뉴욕에서 영화 만드는 일에 전념해온 재능 있는 감독이죠.

작년에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영화제에 참석했던 그는 아주 수줍어하는 보기 좋은 얼굴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양조위라는 ‘중국 최고 배우’와 함께 만든 ‘색 계’는 사실 소재 자체는 참 매력적입니다. 1940년대 상하이와 홍콩을 무대로 일본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남자와 미인계로 그를 파멸시키는 젊은 여자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것이라니까 대중적 점수는 웬만큼 따고 들어간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조위라는 배우는 아마도 일반적인 여성영화팬들이라면 대부분 좋아하는 스타일의 남자배우일 겁니다. 저 역시 ‘비정성시’나 ‘화양연화’에서의 양조위의 눈빛 연기에 그의 팬이 되었죠. 아시아권 남자배우 중 양조위 만큼 심금을 울리는 연기력의 소유자는 드물 것 같습니다.


양조위에게선 안정감과 페이소스가 함께 느껴지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감돌아 매력적인 배우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색, 계’는 전혀 보고 싶지 않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양조위의 국부가 화면에 노출된다니 이건 또 무슨 민망한 꼴이란 말인지요.

그런 장면이 과연 영화예술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안 감독이 아무래도 늙어가긴 늙어가나 봅니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젊어서 못해 봤던 것을 해 본다’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양조위의 파트너로 나오는 탕유라는 올해 27세의 여배우는 미스 북경 출신으로 이번 영화에서의 전라 출연이후 ‘몸값’이 100배가 올랐다고 합니다. 영화에선 ‘치모’까지 보여주었다니 열연의 대가로 그 정도의 개런티는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드는군요. 


영화의 소재나 출연배우 그리고 감독만으로 봤을 땐 개봉하자마자 얼른 가서 보고 싶은 영화지만 영화수입사의 요란한 홍보,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장사 속 꾐수에 심한 거부감이 들어 이 ‘색, 계’는 보지 않을 작정입니다.


영화의 작품성이야 뭐라 언급할 입장은 아니지만 영화사의 얄팍한 홍보전략은 아무래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작품의 본질보다 말초적인 걸 미끼로 손님 끌어보려는 자세가 영 마뜩치 않습니다.  

이렇게 언급하는 게 또 영화사의 홍보에 도움이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