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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를 보고

스카이뷰2 2007. 10. 29. 12:20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를 보고


오다기리 죠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소재가 어두워 볼까 말까 망설이다 본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는 역시 실망스러웠습니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젊은 게이로 나와 신선한 매력을 주었던 오다기리 죠.

배용준이 일본에서 ‘욘사마’로 대접받는다면 오다기리 죠는 한국에서 ‘오 사마’로 환대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 서울에 와 자신의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던 오다기리 죠에게 한국의 여성 팬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봤습니다.

‘욘사마’가 일본 아주머니들의 우상이라면 오다기리는 한국 소녀들의 ‘영원한 오빠’로 다가온 듯합니다.


어제 극장로비에서도 제 앞에 대여섯 명의 앙증맞은 소녀들이 극장으로 몰려 들어가기에 하도 어려 보여 몇 학년이냐고 물었더니 ‘초등 6학년’이라고 하더군요.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 안에도 주로 소녀들이 눈에 많이 띠었습니다. 오다기리가 그만큼 한국 소녀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얘기겠죠.


‘메종 드 히미코’이후 그 동안 오다기리 죠가 나오는 영화 몇 편을 봤습니다.

‘박치기’ ‘유레루’ ‘인 더 풀’ 그리고 이 ‘도쿄 타워’.....

‘오다기리죠의 도쿄 타워’는 원래 제목은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들여온 회사에서 국내에 여성팬이 많은 오다기리죠를 의식해 일부러 오다기리 죠를 넣은 듯합니다. 그건 뭐 그럴 수 있는 거죠.


슬픈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영화 정보’에서 오다기리 죠가 자신의 연기에 흡족했다는 말을 들었고, 휴일의 시간대가 맞아서 봤지만 솔직히 이제까지 제가 칭찬해온 ‘일본 영화의 힘’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감독에겐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감독의 영화적 재능이 그리 많아 보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홀몸으로 온갖 고생 끝에 외아들을 키워낸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신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누선이 튼튼하지 못한 저는 조금만 슬픈 이야기에도 눈물을 흘립니다.

나이가 웬만큼 든 사람이 극장에서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는 게 민망스럽게 느껴져 손수건까지 준비해 갔지만 손수건을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줄거리로서는 참 슬픈 이야기입니다만 그걸 화면으로 담아낸 감독의 솜씨가 날렵하지 못한 탓인지 별로 눈물이 나질 않았습니다.

여걸 정치인으로 알려진 다나카 마키코 의원의 부친인 다나카 전 총리는 평소 ‘어머니’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자식인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도 ‘어머니’하면 콧날부터 시큰해지는 불효자입니다.


그래서 암투병 중인 모친과 효자 아들의 얘기를 다룬 영화라는 소리에 얼마나 울릴까 싶어서 손수건을 준비했던 겁니다.

좋게 말하자면 ‘잔잔한 영화’라는 평을 들을 수 있겠지만 러닝타임 147분이나 들인 영화치고는 짜임새가 엉성했습니다.


우리 블로그에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친일파’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본의 잔잔한 영화들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어왔습니다.

‘다마모에’나 ‘카모메 식당’ ‘박치기’ ‘훌라 걸스’ 등등이 그런 작품들입니다.


그런데 이번 ‘오다기리 죠의 도쿄 타워’는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렵네요.

영화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중의 하나는 오다기리 죠가 모친상을 당한 바로 그날 잡지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상당한 건 너무 유감이지만 원고를 펑크 내면 안 되니까 당장 오늘까지 원고를 보내라”고 다그치는 대목입니다.


“당신 같으면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원고를 쓰겠냐”고 주인공이 항의를 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젊은 시절 모친의 환영이 등장해 오다기리에게 “시고토(일)가 중요하다. 원고를 써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친의 시신 바로 곁에 상을 펴고 주인공은 원고를 씁니다. 그것도 ‘웃기는 이야기’를. 원고를 보내자 그쪽에선 ‘삽화’도 마저 보내라고 해 주인공은 또 그 자리에서 그림도 그려 보냅니다.


물론 ‘일(시고토)’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인들의 프로 정신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긴 하지만 글쎄요, 우리네 정서로는 좀....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영화에선 더 감동적으로 담아냈어야 할 겁니다.


그렇잖아도 ‘댄디 보이’의 이미지가 강한 오다기리 죠는 영화 내내 패션 모델 같은 아주 멋진 색상의 복장으로 스크린을 장식합니다.

그런데 그게 또 좀 현실성이 없어 보이더군요. 물론 엄마가 아프다고 아들이 옷을 아무거나 입으라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패션 감각이 돋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 게 영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는 겁니다.


가령 엄마가 너무 위독하다는 전갈을 듣고 병원으로 뛰어오는 오다기리의 목에는 참 멋스런 스카프가 걸쳐져 있습니다.

평소 스카프 걸친 남자들을 좋게 보아온 저이지만 그 장면에서만큼은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예사 스카프가 아니고 그런 걸 목에 두르려면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는 특별한 분위기의 스카프였거든요.


아무튼 러닝 타임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다기리 죠가 고집을 했는지 아니면 감독이 지시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오다기리의 패션이나 표정연기가 저같이 누선이 약한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엔 다소 미흡했던 영화였습니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빠’라는 원작소설은 일본에서 20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소설이 더 현실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영화는 ‘오다기리’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흥행홍보에 성공을 거두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봤던 다른 일본 영화들에 비해 ‘감동의 정도’가 미흡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출연한 오다기리 영화 중엔 아무래도 ‘메종 드 히미코’를 넘어서는 작품이 별로 눈에 띠질 않는군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메종 드 히미코’에서 흰 양복을 빼입고 여주인공 시바사키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던 장면이나 자동차에 비스듬히 기댄 채 “여자에겐 별 흥미가 없어요”라고 시큰둥하게 말하던 오다기리의 매력적이면서 도도해 보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메종 드 히미코의 바로 그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