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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키무라 타쿠야, 일본인 감독의 시선

스카이뷰2 2007. 11. 7. 11:56
 

 영화 히어로에 나오는 한국검사 이병헌과 일본검사 기무라 타쿠야

  

          히어로· 키무라 타쿠야· 일본 감독의 시선


예전에 자신을 엄청 친한파로 말하는 일본인 기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일본 3대 일간지 중 하나라는 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이었던 그는 일본인 답게 깍듯한 매너와 한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자주해 친한파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유적에 관심이 높은 듯 예전에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경복궁 전면에 있는 중앙국립박물관이 사라지는 걸 굉장히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YS정부 시절의 일입니다. 저도 그 총독부 건물을 없애는 것에 당시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일제 잔재라는 시각에서 볼 때야 그런 건물은 백번 없애버려 마땅하겠지만 긴 안목으로 볼 때는 일제의 한 증거로 혹은 그 시대  한 증표로 역사적으로 남겨두는 게 더 좋을 듯싶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저돌적인 결단력’으로 총독부 건물은 자료화면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다 지나간 얘기지만 그 당시에는 찬반양론이 팽팽했던 현안이었습니다. 지금 광화문은 한창 공사 중인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네요.


몇 해 전 도쿄의 기노쿠니야라는 대형서점에 들렸던 일이 있습니다. 총독부 건물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한 그 일본인 기자는 특파원 임기를 마치고 도쿄로 돌아가자 한 권의 책을 냈더군요.


신간 코너를 살펴보다가 그 일본인 기자가 자신의 서울특파원 시절 이야기를 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책을 펼쳐본 순간 저는 일말의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친한파 같은 언행을 했던 그 기자는 책의 첫 페이지부터 맹렬 반한파식 문장을 태연히 쓰고 있더군요.


하도 오래전 일이라서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당시 저는 꽤 불쾌했습니다. 말하자면 일본 특파원을 지냈다는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라는 책의 일본판 버전이라고나 할까요.


그 일본인 기자의 책이 인기를 끌었다는 소리는 그 후 들어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혼네’와 ‘다테마에’가 다른 게 일본인의 특징이라는 소리를 그때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일본인이 그러더군요. “대부분의 일본인은 한국인을 뿌리깊이 멸시한다”라구요. 그거야 그들의 생각이니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일본인들 가운데 유달리 친한파같은 스타일로 우리를 현혹했던 몇몇 일본인들도 결국 속마음은 그렇고 그렇다는 걸 그 기자의 ‘반한(反韓) 에세이집’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씁쓸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한국을 좋아해요’라는 일본인들의 말은 전혀 믿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일본 흥행 역사를 뒤흔든 화제작’이라는 ‘히어로’를 보고 나서 문득 겉과 속이 다른 그 일본인 기자가 새삼 생각났습니다.


일본 젊은 층에서 절대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키무라 타쿠야가 괴짜검사역으로 주연을 맡았다는 이 영화는 사실 제 취향은 아니어서 별로 보고 싶진 않았지만 일본에서 최고 흥행작이었다는 소리에 혹시 하고 들어갔다가 역시하고 나왔습니다.


한국배우 원빈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어두운 인상의 키무라 타쿠야라는 일본 배우는 제가 보기엔 상당히 불안한 얼굴이더군요.  ‘화려한 일족’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를 볼 때도 썩 호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영화에서도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상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한결같이 찬사 일변도여서 그를 비판하는 게 상당히 조심스럽게 느껴지는군요.


일본의 최고 인기 드라마를 영화화했기에 드라마 내용을 알고 봐야 재미있다는 글도 봤지만 저는 영화는 영화,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축이어서 그런 이야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그냥 보고 재미있어야지 진짜 재미있는 거 아닙니까.


영화 ‘히어로’는 현실에선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해 아마도 ‘숨 막히는 조직사회’로 알려진 일본 사회에 어떤 해방구 같은 쉼터로서 인기를 끌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현직 검사인데도 후드 티에 다 떨어진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으로 검찰청으로 출근하는 기무라 타쿠야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억눌린 사회생활을 보상받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일본 검찰에 실제로 그런 검사가 존재하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지만 조직순응도가 높고 또 그런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 일본주식회사’에서 키무라 타쿠야 같은 ‘별종’을 보면서 순한 일본인들은 대리만족을 맛볼 수 있는 거겠죠.


어쨌든 영화자체는 그냥 B급 정도라고나 할까요. 뭐 그렇게 재능 있는 우수한 감독의 작품이라고 평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제가 우리 블로그에서 말하고 싶은 건 스즈키 마사유키라는 일본인 감독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키무라 타쿠야는 한국으로 출장을 옵니다. 마약밀매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부산으로 온 그의 눈에 들어오는 부산항 근방의 전경(全景)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전 봤던 멧 데이먼의 ‘본 얼티메이텀’에서 나온 모로코의 빈민촌 전경과 어찌 그리도 흡사한지요.


일본인 스즈키 마사유키 감독의 눈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나를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이라는 대한민국도 일본인 감독의 눈에는 ‘후진국’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 전개상 그런 전경을 비쳐주어야만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 ‘후진’ 한국 풍경을 여러 차례 보여주는 그 감독의 의식구조가 대략 어떻겠구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독에게 왜 멋있는 곳을 다 놔두고 저런 후진 풍경을 보여주느냐 라고 항의하는 건 어쩌면 수준 낮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 저는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뿌리 깊은 멸시’를 간파할 수 있었던 겁니다.


영화 속에 한국검사로 잠시 우정 출연한 이병헌의 모습도 검사가 아니라 조폭 같은 분위기여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스즈키 감독 공부 좀 더 해야 할 것 같더군요. 


‘청국장’을 먹겠다고 외치는 키무라 타쿠야의 모습도 별로 호감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뭐랄까, 작위적인 냄새가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영화 속에 차장 검사로 나오는 코다마 키요시라는 배우를 압니다.

NHK의 ‘독서 프로’의 사회자로 활동 중인 그는 1934년생으로 74세의 고령인데도 캐스팅 되었더군요.


코다마는 일본 대중문화예술계에서는 존재감 높은 인물이지요. 그 이외에도 영화에는 비교적 지명도 있는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 만큼 일본에선 화제작이 될 수밖에 없었겠지요.  


게다가 한류스타 이병헌도 출연시켰고, 청국장을 좋아한다고 외치는 키무라 타쿠야와 한국말을 더듬거리며 하고 있는 마츠 타카코 라는 여배우도 한국 팬들에겐 꽤 알려진 만큼 한국에서 개봉하면 관객동원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을 수 있었겠지요.


아무튼 한국의 인터넷 상에선 일본 영화 ‘히어로’에 대해서 대체로 호평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일본인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뿌리 깊은 혐한(嫌韓)의식’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영화 자체도 그리 짜임새 있는 것 같지 않았구요. 한국에선 일본에서만큼 히트하기는 어려운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