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거스트 러시를 보고

스카이뷰2 2007. 12. 3. 08:34
 

 

  

  어거스트 러쉬를 보고


오랜만에 동화와 만화를 재미있게 버무려 놓은 영화 한편을 봤습니다.

거의 언제나 그렇듯 정보 없이 보게 되는 영화는 시간이 맞거나, 영화홍보 전단지의 그럴싸한 문구와 배우들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거스트 러쉬’라는 영화도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시간대가 맞은데다가 출연배우들이 괜찮아서 봤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온 꼬마 배우 프레디 하이모어와 미션 임파서블3에서 톰 쿠르즈와 함께 나왔던 인형처럼 예쁜 케리 러셀, 미국드라마 ‘튜더스’에서 섹시한 헨리 8세 역할로 인상에 남았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등이 나오는 영화니까 ‘기본’은 따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 ‘올 겨울, 당신의 가슴을 울릴 단 하나의 감동대작!’이란 유인 문구에 솔깃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본 영화 ‘어거스트 러쉬’는 오랜만에 포근한 심정에 젖어들게 했습니다.


매력적인 밴드 싱어이자 기타리스트인 루이스와 촉망받는 첼리스트 라일라는 우연히 파티에서 만나 첫 눈에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뉴욕의 로맨틱한 보름달이 그들을 맺어준 거죠.

서로를 보는 순간 자석처럼 끌리는 순수 무아지경의 첫사랑!


하지만 한국의 부모 못지않게 미국의 부모도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한사코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더군요. (기타 줄이나 튕기는 사위는 곤란하다는 거겠죠.)


이렇게 해서 두 연인은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름달 아기’가 태어나고 비정한 할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의 딸의 장래를 위해 끔찍하게도 아기를 입양시켜버립니다. 물론 딸에겐 아이가 잘못됐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어딘지 좀 신파스럽죠?^^)


비록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지만 ‘보름달 아기’는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환치하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로 자랍니다. 게다가 특별한 선량함과 총명함을 지닌 어린 꼬마는 기특하게도 음악만이 자신을 지켜주고 헤어진 부모를 만나게 되는 지름길임을 확신하고 혼자 자신의 고향인 뉴욕으로 떠납니다. 물론 꼬마는 자기가 ‘메이드인 뉴욕’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지요.^^


우여곡절 끝에 뉴욕의 길거리에서 흑인 꼬마 악사와 우연히 알게 된 꼬마는 그 아이를 따라 간 곳에서 꼬마들을 ‘앵벌이’시키며 살아가는 괴상한 아저씨를 만납니다. 위저드로 불리는 그 아저씨는 아주 엉터리는 아니어서 한눈에 ‘보름달 아기’가 음악천재라는 걸 알아보고 무릎을 칩니다.


그 역시 하모니카 연주의 달인이지만 ‘재야 악사’로 꼬마 악사들을 거리에 내몰아 앵벌이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는 처지입니다.

할리우드의 국민배우라는 로빈 윌리엄스가 오랜만에 위저드라는 그 기인 역을 맡았습니다. 나폴레옹 비슷한 외모의 로빈 윌리엄스도 안 보는 사이에 엄청 늙었더군요.^^


아무튼 위저드 아저씨는 이 ‘보름달 아기’의 재능을 내세워 돈 좀 벌어보겠다고 꼬마와 함께 ‘예명’까지 짓는 둥 야단법석을 떱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이름이 바로 영화 제목이기도한 ‘어거스트 러쉬’입니다.


언젠가도 말씀드린 일이 있지만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만큼 중요한 이미지도 없을 겁니다. 특히나 이름으로 먹고 살아가야하는 연예인들은 이름이 거의 90% 정도 그의 앞날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도 그 자신 ‘순옥’이라는 본명 대신 ‘수현’이라는 예명으로 성공을 거둔 케이스입니다. 김순옥 보다야 김수현이 훨씬 세련되고 왠지 그럴싸해 보이죠?^^ 물론 김수현씨야 재능있는 분이라서 성공했겠지만 이름덕도 적잖이 봤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드라마에 나오는 배역의 이름을 유명인사들의 이름에서 따오는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 신뢰도도 높아지고 시너지 효과를 거둬 드라마도 자연히 시청률이 올라가는 거지요.


아무튼 이 거리의 악사 아저씨와 어거스트 러쉬는 의기투합해서 ‘길보드 차트’를 평정해 나갑니다. 이 꼬마는 워낙 ‘절대 음감’의 음악천재여서 무슨 악기든 몇 번 만지면 첨본 악기라도 그냥 척척 연주해 나갑니다. 거의 ‘신의 손’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악보 쓰는 법을 몇 시간 배우고는 그냥 멋진 곡을 만들어 냅니다.

이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거스트 러쉬는 의젓하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화를 믿듯이 난 음악을 믿어요”. 꼬마는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지만 부모가 자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음악’을 해야만 부모와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에겐 이 ‘확신’을 갖는다는 일처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봅니다. 뭘 이루려면 ‘확신’없인 좀 어려운 것 같더군요.


참 신통하지요. 바람소리부터 거리의 온갖 소음 심지어는 지하철의 괴로운  소음까지 모든 소리는 이 꼬마의 귀에 들어가면 그냥 ‘음악’으로 변합니다.

이런 ‘은혜’속에 아이는 점점 자신의 운명을 업그레이드해 나갑니다.

물론 부모를 만나겠다는 의지와 옆에서 도와주려는 ‘귀인’들의 일조가 척척 맞아 떨어지지요.


자, 그럼 이 어거스트 러쉬의 부모는 과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버지가 강제로 떼어놓은 두 연인은 항상 서로를 그리워합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들 사이에 아기가 있었던 사실은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라일라의 아버지가 병상에서 유언 비슷하게 아기의 존재를 털어 놓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고백에 딸은 제 정신을 잃고 말지요.


세상 어느 어미가 자식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절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라일라의 ‘아들 찾아 삼만리’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보름달 아기’가 그렇듯이 ‘보름달 엄마’는 자신이 접었던 음악을 다시해야 잃어버린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다시 첼로를 붙잡습니다.


그럼 아빠는? 아빠 역시 자신에게 아기가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르지만 보름달 아래 맺어졌던 첫사랑을 끝내 잊지 못해 한때 놓아버렸던 기타줄을 다시 고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음악 가족’은 점점 ‘가족 상봉’의 정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마 ‘음악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운명을 부른다’라는 카피가 나왔나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를 보시는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예전 젊은 시절의 감수성 같았으면 “웬 신파?” 그러고 말았을 영화지만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에 홀려선지 아니면 제 자신이 세월에 많이 너그러워져선지 이 영화 재밌다! 는데 평점을 많이 매기고 싶었습니다.


지난번에 봤던 음악 영화 ‘원스’보다 오히려 재미있고 우선 보기에 좋았습니다. ‘원스’는 신문에서 하도 떠들어 가봤더니 뭐 그냥 그런 정도였거든요. 물론 돈 쪼금 들이고  그 정도 만들었다는 건 높이 살 일이지만 어떤 영화담당 기자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칭찬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물론 원스엔 우리네 생활의 진실, 삶의 진정성이 배어있어서 어거스트와는 또 다른 깊은 맛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원스’에 비해 제작비를 훨씬 많이 들였기에 화면도 좋고 음질도 좋았습니다. 아무래도 돈들인 효과를 보게 마련이겠지요. 물론 돈들이고도 형편없는 영화도 참 많습니다만 ‘어거스트 러쉬’는 그런 대로 꽤 재미있게 스토리를 끌어나가서 지루한 줄 모르고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음악’이 주는 힘은 위대하다고나 할까요. 모처럼 환상적인 동화같은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물론 이런 초현실적 이야기에 영화평론가들이야 짠 점수를 주겠지만 관객들은 좋은 점수를 줄 것 같습니다.


CJ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해선지 한국인의 정서에 상당히 어필하게 만들었더군요. 

평론가들이야 뭐라 하든 말든 관객들에게 훈훈한 기분을 갖게 만든다면 그 영화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거창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일단 관객이 다른 생각없이 영화에 몰입해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영화라면 기본적인 영화의 도리는 다 한 것이라고 봅니다.


‘보름달 아기’와 ‘보름달 엄마 아빠’가 감동적인 선율 속에 극적인 가족상봉을 하게 되는 ‘어거스트 러쉬’는 아마 적잖은 관객을 불러 모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