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본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영화관에서 봤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다니?
이 세상에 ‘있을 수없는 일’은 없으니까 그녀의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건 하나도 이상할 건 없겠지요. 더구나 제가 몰라서 그렇지 이미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 유명한 소설 ‘키친’도 일본에선 영화로 만들어졌다는군요.
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예는 참 많았습니다.
웬만한 영화는 오리지날 시나리오로 만들기도 하지만 유명소설은 거의 예외없이 영화로 무대를 옮겨서 예술 간의 ‘상호교류’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문학작품을 영화로 만든 작품 중 지금 금방 제 뇌리에 떠오른 작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닥터 지바고’입니다. 비비안 리의 매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제가 대학입시를 치룬 다음날 친구와 함께 명동의 중앙극장으로 보러갔던 영화여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지바고’는 제가 학생 때 단체로 관람한 영화였으니 그 연조가 꽤 된 오래된 영화네요.^^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본 ‘지바고’는 지금도 저의 가슴 깊은 곳에 감동의 명화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이제까지 많은 문학작품이 영화화되었지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입니다. 도저히 영화화하기 어려울 것 같은 김승옥의 작품들도 영화로 만들어졌던 걸 보면 ‘영화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을 헌정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박경리의 ‘토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같은 작품이야 서사적인 스케일로 볼 때 당연히 영화화할 수 있지만 단편소설들도 어엿하게 영화의 옷을 갈아입고 팬들 앞에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도 참 많았습니다.
그밖에 최인호나 이문열 등 유명작가들의 많은 작품들 역시 영화로 선보였습니다. 특히 70, 80년대 ‘별들의 고향’을 비롯해 이장호, 배창호, 이런 감독들의 손에 영화로 다시 태어난 최인호의 작품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지요.
일본 소설들도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인기작가의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예로 들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재밌게 읽었던 ‘박사가 사랑한 수식’처럼 화면으로 옮기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작품들도 영화로 만들어져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더 유명하다는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도 영화로 봤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설국’도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제작되었었지요. 일본 신문 연재소설로 엄청 화제가 되었다던 ‘실락원’도 영화로 또 화제를 모았었죠. 요새 최고의 화젯거리인 ‘색·계’도 중국 여류작가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베스트셀러 소설의 유명세가 영화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소설의 후광덕에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제 기억으로는 원작 소설을 능가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활자의 세계’와 ‘스크린의 세계’는 각자의 고유 영역이 확실하게 따로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더 좋고 우월하다는 판정을 내린 다는 건 넌센스겠죠.
작가와 영화의 작가라 할 수 있는 감독들을 종종 만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 갖는 프라이드는 너무나 대단해서 그 앞에서 어느 쪽이 더 우수하다는 말은 감히 꺼낼 수조차 없었던 적도 종종 있었습니다.
분명한 건 작가는 ‘혼자’ 펜대 굴리면서 (요즘은 자판기 두드리면서) 고독하게 밀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인데 비해 영화감독은 군대로 치면 총사령관이라고나 할까요, 수많은 사람을 부리면서 진두지휘하기에 ‘외로운 직업’이라고 하긴 어렵죠.
그래선지 최근 잘나가는 한 젊은 작가는 스스로 자기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외롭지 않아서 좋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짤막한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개봉했다는 소리에 갸웃둥하는 심정으로 명동 CQN을 찾았던 겁니다.
언젠가 우리 블로그에서도 말씀드렸지만 CQN은 목이 좋지 않아선지 영 장사가 안 되는 영화관입니다. ‘안녕 쿠로’라는 영화는 제가 대통령처럼 그 큰 영화관을 혼자 차지하고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손님이 드문 영화관입니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영화관이 문을 닫지 않고 버티는 게 어떨 땐 정말이지 장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날도 관객수는 총 다섯 명! 문화계에 종사하시는 듯한 분위기의 웬 중·노년층 남성 한분과 아주머니 두 분 여대생과 저.... 거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영화를 본 겁니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저를 비롯해 모두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확고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에 그걸 화면에 옮기는 즉시 원작의 유니크한 분위기는 전부 증류해 버릴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바나나 스타일’의 등록상표라 할 수 있는 깜찍 발랄하면서도 화사하거나 바삭거리는 쿨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더군요.
이젠 요시모토 바나나도 벌써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중년여성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발랄한 20대 아가씨들의 거의 액세서리 같은 존재로 그녀들의 젊음을 지배하는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지요. 20대 초반의 거칠 것 하나 없는 당돌하고 자존심 센 아가씨들의 취향에 꼭 어울리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은 어쩌면 ‘청춘의 한 통과의례’처럼 20대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녀의 작품들 가운데 ‘키친’이 아마도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을 겁니다. 저도 아주 오래 전 바나나의 작품을 처음 읽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한동안 그녀의 책이 나오기만 하면 읽곤 했었지요.
이번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바나나의 최근작입니다만 그녀의 작품 속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신비주의적 아우라’를 이미지로 형상화 시켜놓은 작품입니다. 여고생인 주인공 소녀가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빠는 엄마의 임종도 외면한채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요상한 분위기의 중년 여성에 빠져 아기까지 하나 낳지만 그 여성은 출산 직후 세상을 떠나고 다시 소녀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영화의 무대는 분명 일본의 어느 지방 소도시이지만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빌려와 시종 신비로운 분위기로 영화를 끌어나갑니다.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일본인들 특히 문화예술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로망처럼 동경하는 국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전 0시’라는 작품도 바로 아르헨티나라는 곳을 상징으로 빌려온 것이었지요. 요즘 그 작품을 쓴 작가는 텔레비전의 인기 MC로 활약중이라는군요. 아마도 배우처럼 생긴 그가 이미지로 차용한 아르헨티나의 분위기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소설로 읽었을 때와 영화로 봤을 땐 천양지차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아르헨티나라는 몽환적 분위기는 화면으로 보다는 활자로 음미할 때 더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영화에서 ‘아르헨티나 할머니’로 나오는 스즈키 쿄카라는 여배우는 그렇게 환상적 이미지의 외모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일본의 국민배우라는 야쿠쇼 코지는 ‘우나기’와 ‘셸 위 댄스’에서의 생활인적인 이미지가 워낙 강해선지 이번 영화에선 어딘지 좀 칙칙한 이미지로 다가와 썩 호감을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야 감독의 예술이니까 감독이 기량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 원인이 컸겠지만 배우들의 용모가 환상적 분위기가 아닌 것도 영화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데 일조했다고 봅니다.
소설로 읽었을 때 깊은 울림을 주었던 바나나의 그 만화 같기도 하고 환상적이기도 한 문체가 화면으로 옮겨오는 순간 영 어설퍼 보였습니다. 따뜻하고 동화같기도 한 그래서 비현실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가 현실성이 강한 배우들이 등장해 대사를 읊어나가는 동안 신비감이 사라져간 듯 하다고나 할까요.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모든 남자들의 로망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영화 속 대사는 왠지 좀 끈적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원작 소설을 보시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소 실망하기 좋은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원작을 보시지 않은 분들에겐 그저 그런대로 볼만은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좋았던 일본 영화’들에 비해선 그 중량감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요시모토 바나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의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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