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행복한 눈물’
울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안 보려했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드디어 봤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펑펑 울었습니다. 그야말로 한 반년 치 눈물을 고작 두 시간 동안 흘렸으니까요. 최근 내 돈 내고 들어가서 본 영화치고 이렇게 저를 울게 만든 건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요 몇 년 새 본 영화중 가장 많이 운 영화였습니다.
태생적으로 누선이 약한 데다가 나이가 든 탓인지 누선이 엄청 더 약해져 조금만이라도 슬프거나 가여운, 혹은 외롭거나 허무한 이미지의 단어들을 보거나 연상만 해도 뭉클해지곤 합니다. 그만큼 노화가 심화된 탓이겠지요.
그런 주제이다 보니 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가 매스컴에 소개된 걸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울컥했습니다.
제목과 스토리만 전해 듣고도 눈물 나는데 하물며 두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정서적 고문’을 당한다는 건 사실 견디기 어려운 거지요.
그래도 개봉한지 20일 만에 2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는 소식에 그 영화를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뭐랄까요. 어떤 영화나 혹은 문화예술 작품에 사람이 몰린다는 건 바로 우리 사회의 트렌드를 알게 해주는 것이니까 명색이 ‘트렌드 워처’인 저로선 당연히 그런 작품들을 직접 마주해야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제가 잘 가는 명동의 롯데 시네마에선 이미 매진이었구요, 건너편 명동 CGV에서 간신히 한 장의 티켓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250만 흥행 영화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하면 울지 않으리라는 결심까지 했지요. 솔직히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그런 ‘소소한 이야깃거리’에 운다는 게 좀 쑥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짐짓 무심한 마음으로 인생이 다 그런 건데 뭐 그 정도가지고 울 것까진 없지 하는 다짐까지 했지요.
그런데 여자 선수들이 게임에 승리한 뒤 회식하는 자리에서 팀이 해체돼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감독으로부터 전해 듣는 장면에서부터 울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여주인공 중 한 명인 문소리는 애 딸린 엄마 선수여선지 팀이 해체되어도 다른 자리에 배치해 먹고 살게는 해준다는 소리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를 다부지게 따집니다. 옆에는 다섯 살배기 철모르는 아들이 고사리 손으로 젓가락질을 열심히 하고 있구요. 저 어린 걸 먹여살려야 하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겠죠.
자! 이렇게 해서 대형 마트에 취직한 한미숙 선수(문소리)는 야채 코너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다가, 점장으로부터 주의를 듣고 겨우 세일 구호를 외칩니다. 그 장면도 왜 그렇게 눈물겨운지요.
코트에서 펄펄 날아다니던 야생마 같은 그녀가 우리 안에 가둬진 맹수모양 맥 놓고 서 있는 장면!
주장으로 뛰었던 송정란 선수(김지영)는 튼실한 신랑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합니다. 신랑이 운영하는 설렁탕 식당을 코트삼아 밥그릇을 공 던지듯 던지며 펄펄 날고 싶어 하지만 그녀 역시 우리 속 맹수여서 으르렁거리기만 합니다. 그녀의 무조건 뛰고 싶어 하는 ‘코트 본능’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뛸 곳이 없어 응어리만 쌓여가던 그녀들에게 다시한번 ‘기회’가 열립니다. 비록 아줌마선수들이지만 그녀들을 필요로 하는 코트에 설 수 있다는 것에 그녀들은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합니다.
감독대행으로 부임한 김혜경(김정은)역시 이혼녀라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습니다. 요새도 이런 ‘개인적 생활’이 흠결로 통한다는 게 좀 놀라웠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갖은 역경을 뚫고 ‘돌아온 아줌마 선수’들의 눈물겨운 핸드볼 분투기가 영화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영화를 만든 임순례 감독은 여장부다운 외모와는 달리 디테일한 장면 연출에 기량을 발휘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영화를 만드는 내내 행복했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임감독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감독이 귀한 한국 영화계에서 임 감독은 ‘맏언니’ 역할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어쩌면 감독이 여성이기에 여자 선수들의 애환에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했겠지요. 영화에 나오는 선수들은 한결같이 사회적 약자로서 쓰라린 사연들을 갖고 있지만 그럴수록 훈련에 몰입합니다. 감독은 선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생활 속에 ‘아킬레스 건’을 짐짓 잊은 채 그냥 열심히 뛰어다녀야만 삶이 편해질 수 있다는 걸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장 선수인 정란은 생리 조절하느라 스테로이드 제재를 잘못 복용한 탓에 불임으로 고생하지만 신랑과 금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착한 신랑이 해온 개소주보약을 혼자 먹으려던 정란의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느껴집니다.
그 보약이 ‘몸에 그렇게 좋다니까’ 그걸 빼앗아 어린 아들 입에 강제로 털어놓는 엄마 선수 미숙의 모습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자식에겐 어떡해서든 좋은 것만 먹이려는 ‘어미’의 페이소스가 전해져 사람을 웃기다가 울립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두 시간 내내 사람을 웃기고 울립니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거저 되는 건 하나 없다는 걸아는 나잇살 먹은 사람들이라도 이 영화의 다소 상투적이고도 진부한 장면에서마저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그녀들에게 ‘핸드볼’은 ‘인생의 전부’였기에 그 전부를 위해 온 몸을 던진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서로 ‘마지막 자존심’은 다치지 않게 하려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힘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힘을 합쳤을 때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꼽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툭하면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그녀들의 말들이 저를 울렸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들을 떠올리니까 컴퓨터 화면이 뿌옇게 변하는군요.^^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이 나름대로 ‘생애 최고의 순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영화의 디테일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라스트 신에서 최고의 강도로 누선을 공격합니다.
물론 무덤덤하고 굳건한 누선을 가지신 분들이야 뭐 저런 거 가지고 우냐고 핀잔을 주실 지도 모르지만 덕분에 저로선 간만에 혼탁해진 영혼이 깔끔하게 정화되는 듯한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이 울어야 정신 건강에 좋다’는 말처럼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명동의 밤공기가 참 달게 여겨졌습니다.
문득 요새 최고의 화제 거리 중 하나인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미국 팝 아티스트의 대가로 추앙받는다는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5년 전 한국의 ‘큰 손’이 무려 715만 달러에 구입했다는 작품입니다.
당시 돈으로 96억원이나 호가했다는군요. 요새 그 작품은 두 배 정도 올랐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논리가 어김없이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삼성 특검’이라는 수사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이 ‘행복한 눈물’은 누가 주인이냐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걸 보관하고 있었다는 갤러리의 여주인이 삼성 홍라희여사의 심부름을 해왔다는 소리를 듣고 한 친구는 나도 그런 ‘심부름’ 좀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런 심부름은 아무나 안 시킨다”는 한 친구의 생뚱맞은 응답이 좌중을 웃겼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우리같이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왜 그런 만화 같은 그림들을 1백 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는 지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다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순한 생각’을 해봅니다. 봉황의 높은 뜻을 참새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문득 ‘행복한 눈물’에서 눈물짓는 그 여인과 우리 핸드볼 팀의 아줌마 선수들이 흘리던 ‘행복한 눈물’이 대비되면서 인생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철학’이 의외로 쉽게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속 여인은 호되게 비싼 그림값 덕분에 왠지 부자일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만 과연 그녀가 행복한 지는 미지수겠지요.어쨌거나 눈물은 눈물입니다.
우리 핸드볼 아줌마선수들은 비록 그날 아테네의 하늘아래서 울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그녀들의 ‘행복한 눈물’에는 진솔함과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그녀들 생애 최고의 순간은 바로 그때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다시 또 최고의 순간이 찾아온다하더라도 그 날, 그녀들이 합력해서 이뤄놓은 승리는 비록 은메달이었다 해도 금메달 못지않은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억 원이 넘는 ‘고급 눈물’을 흘리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에선 돈 냄새 탓인지 아무래도 위화감이 좀 느껴지더군요.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이미 10년 전에 타계해서 자신의 그림이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겠지요.^^
누구의 인생이든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과연 어느 쪽의 ‘행복한눈물’이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우리를 기운 나게 하는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생애 최고의 순간’은 아무래도 눈물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과연 언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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