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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빨간 풍선'을 보고

스카이뷰2 2008. 3. 1. 23:26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빨간 풍선’을 보고


삶이 시큰둥해질 땐 재빨리 영화관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좋은 영화 한편은 제겐 마치 링거 주사를 한 대 맞는 듯한 반짝 효과를 주곤 합니다. 거의 마약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아주 오래전부터 저는 ‘영화요법’을 통해 정신에 침투하는 황사현상을 막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개봉관 영화들이 신통치 않을 땐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이곤 합니다.


지난 월요일(2월25일) OCN을 통해 생중계되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어째 올해는 영화가 통 시원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간둥이 형제 감독인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등 3개 부분에서 수상했지만 그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코엔 형제감독의 영화를 예전에 몇 편 봤지만 재주가 있다는 건 느껴져도 따스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는 어려워 그들의 영화에는 별 호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스트리퍼 출신이라는 30세 신출내기 여성각본가가 쓴 ‘주노’라는 영화도 16세 소녀가 임신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탁월하게’ 그려냈다고 하지만 왠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경쾌하고 신선하게 만든 영화라지만...

슬픈 러브 스토리라는 어톤 먼트도 '슬프다'는 소리에 그만 .... 

그러다 보니 요즘 영화 볼 거 없다는 한탄을 하게 된 겁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이젠 아무 영화나 보고 싶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영화를 보면서 공연히 감정의 손상을 입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요. 폭력물이나 슬픈 영화 같은 건 이젠 거의 보질 않게 됩니다. 좀 촌스런 얘기지만 순한 무드의 영화가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제 감정의 내구성이 약해졌다는 얘기겠지요.


아무튼 이래서 ‘ 볼 영화 기근 현상’을 한탄하던 저를 위로라도 하듯 한 편의 영화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네루다 시인이 노래한 ‘시가 나를 찾아왔다’를 잠시 패러디 해봤습니다.


오늘(1일) 아침 영화 볼 게 없나 인터넷 서핑을 이리저리 하다가 저의 ‘정서적 구미’에 딱 들어맞을 듯한 한편의 영화가 제 눈에 들어왔던 겁니다.

‘빨간 풍선’!  1989년 ‘비정성시’로 명성을 떨쳤던 대만 감독 허우 샤오시엔이 만든 영화입니다.


‘파리의 하늘, 소소한 일상의 선물 같은’ ‘프랑스가 사랑하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프랑스가 선택한 거장 허우 샤오시엔을 만나다!’ ‘외롭고 지친 어느 날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에 빨간 풍선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유인 문구’를 보다보니 저에겐 ‘안성맞춤’영화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마침 시간 때도 딱 맞았습니다. 부리나케 채비를 차려 한걸음에 명동 스폰지 하우스로 달려 나갔습니다. 이 극장은 예전에 제가 대학시험을 막 치르고 친구와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아주 ‘유서 깊은’ 영화관이기도 합니다.

이젠 시설 좋은 영화관들에 밀려 점점 초라해져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도 저는 오랜 만에 ‘정서적으로 코드가 맞는 영화’를 만나러 가는 설렘의 감정에 젖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 감정, 꽤 괜찮거든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도 나오지요, 4시에 만나기로 했다면 3시부터 마음이 설레는 그런 감정.


좋아하는 감독에 좋아하는 여배우라... 아무리 못해도 본전은 찾는다 싶은 투전꾼 심리까지 발동했습니다. 그만큼 요새 제가 영화에 목말라했다는 거겠죠.


줄리엣 비노쉬를 처음 본 건 아주 오래 전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에서였을 겁니다. 그 후 그녀가 나오는 영화는 웬만해선 다 봤습니다. 기억에도 가물가물하지만 ‘데미지’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를 파멸시키고 마는 팜 파탈 역할로 한껏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던 그녀가 떠올랐습니다.


이 ‘데미지’는 지난해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신정아 사건’과 겹쳐져 제가 우리 블로그에도 글을 하나 올린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메릴 스트립처럼 프랑스에는 줄리엣 비노쉬가 소위 ‘연기파 여배우’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제 사견입니다.


소소한 파리인의 일상을 다룬 영화라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저와는 ‘정서적 코드’가 딱 맞는데다가 아주 오랜만에 줄리엣 비노쉬를 만난다니 과연 그녀가 어떻게 변했을 지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이 영화를 맡게 된 것도 주목할 만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불리는 ‘오르세 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참여시켜 파리와 오르세 미술관을 그려낸다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초대 예술가로 대만의 영화감독 허우 샤오시엔을 선정했다는 겁니다.


프랑스인들이 안목이 높았다고나 할까요, 결과는  대성공! 그렇잖아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일상을 그려내는 탁월한 솜씨와 프랑스인의 정서적 코드가 딱 맞아떨어진 듯 합니다.


영화는 파리지앵의 소소한 일상을 가장 파리다운 모습으로 포착해냈다는 호평을 프랑스 영화계로부터 받았다고 합니다.

허우 감독은 이 영화로 칸 국제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분에 공식 초청되어 그야말로 전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은 셈입니다.


‘빨간 풍선’은 이렇다 할 ‘특별한 스토리’는 전혀 없는 영화입니다.

단지 평범한 프랑스인 모자 가정의 일상을 여과 없이 그려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세심한 주의를 갖고 본다면 감독이 자신의 ‘영화철학’과 ‘인생관’을 고스란히 드러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47년생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보는 인생은 조금은 씁쓸하고 페시미즘이 기조를 이루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잖아도 그는 일찍이 그의 데뷔작 ‘비정성시’에서 신산한 인생살이의 진수를 솜씨 있게 그려내 대만 감독의 ‘명성’을 세계무대에 알린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빨간 풍선’에서도 그는 일곱 살짜리 아들하나를 데리고 사는 이혼녀의 삶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45세인 줄리엣 비노쉬는 역시 나이게 걸맞게 꽤 원숙해졌더군요. 예전에 신선미는 온데간데 없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살림살이는 그저 심란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중국 전통 인형극을 제작하고 연기까지 해내는 그녀의 특수한 직업은 단지 생계를 해결해주는 밥벌이 차원을 넘어 그녀의 고달픈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인형극의 대사가 심금을 울립니다.)


어린 아들은 그런 외로운 엄마가 은연중 의지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곱 살밖에 안된 어린놈이 뭘 안다고 엄마가 하는 전화를 듣다가 “엄마 나도 남자야”라고 반복해서 소리치며 엄마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선 코끝이 찡해집니다.


영화의 도입부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꼬맹이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하늘을 보고 소리칩니다.  “너 이리 오면 사탕 천개 줄게 이리 오렴, 이리 오면 캬라멜 20억 개 줄게 이리 오렴”

하늘에 두둥실 떠올라가는 ‘빨간 풍선’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는 이 장면에서 저는 이 ‘빨간 풍선’이야말로 세상 모든 어린아이들의 ‘로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리네 인생살이의 ‘로망’이기도 할 겁니다.


아주 어렸을 적, 저도 이 ‘빨간 풍선’에 관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세상의 아이들은 거의 어떤 꼬마들이나 ‘풍선’ 그것도 ‘빨간 풍선’에 특히 끌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제가 초등학생 시절 글짓기 대회에서 어떤 글쟁이 꼬마가 이 ‘빨간 풍선’으로 상을 탔습니다.  ‘빨간 풍선이 파란하늘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내용의 동시였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이 ‘파란하늘 대문 열고’라는 표현이 어린이답게 아주 잘 쓴 것이라는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어린이가 상탄 걸 이렇게 소상히 기억하는 게 제 자신도 좀 신기합니다.


아마도 그때 제가 그 어린이에게 ‘최고상’을 빼앗겼다는 ‘분한 마음’에다가 왠지 ‘빨간 풍선’이 주는 예쁜 이미지가 저의 마음자리에 깊이 새겨진 탓일 겁니다. 그때 저는 ‘우리 집 아기 단풍나무’인가로 차석을 차지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


오늘 본 영화 ‘빨간 풍선’은 파리라는 멋쟁이 도시를 한편의 동화처럼 한편의 시적인 우화처럼 그려내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숙수의 솜씨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제 ‘완숙기’에 접어든 감독은 뛰어난 도시의 풍경화가처럼 아주 섬세하게 우수에 젖은 파리지앵의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곱 살짜리 아들의 베이비시터로  고용된 중국인 아가씨 송팡의 존재도 상징적입니다. 북경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 아가씨는 일곱 살짜리 파리지앵의 일상을 보호해주는 도우미역할을 하면서 그 아이를 주인공으로 짧은 영화를 만듭니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크는 아이들은 늘 외로움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이 파리의 꼬마아이도 언제나 혼자서 놉니다. 게임보이에 열중하는 틈틈이 엄마의 히스테릭한 독백에 신경 써야 합니다. 이런 꼬마아이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중국인 보모의 시선은 따스합니다. 아이에게 ‘빨간 풍선’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모습이 퍽 인상적입니다.


대만 감독이 만들어낸 프랑스 영화 ‘빨간 풍선’은 이렇다 할 ‘사건’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 참 편안합니다. 어쩌면 대다수 우리네 일상이 ‘그날이 그날’ 이듯이요.

취향에 맞지 않은 분들에겐 어쩌면 다소 지루하고 졸리기까지 한 그런 영화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 나오는 ‘나를 데려가줘’ 와 ‘건배’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왜 프랑스인들이 대만의 허우 샤오시엔을 택했는지를 나름대로 짐작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 노래 속에 감독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듯 했습니다. 다소 멜랑콜리하고 음울한 인생관이라고나 할까요.

영화 속 이  두 곡의 노래를 들은 것만으로도 오랜만에 정서적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숙한 경지에 들어선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그려낼 인생의 모습은 어쩌면 세계인에게 공통적으로 어필할 정신세계를 담아낼 것이라는 걸 프랑스인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빨간 풍선’은 자유와 고독 그리고 인생에 대한 페이소스가 수채화처럼 담담히 그려진 수작입니다.

일상을 사랑하는 분에게, 인생을 사랑하는 분에게 강추합니다.^^

쎄라비!(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