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버킷 리스트의 한 장면.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평소 좋게 여기던 37년생 동갑내기 두 노익장 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나오는 영화 버킷 리스트를 봤습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 중 ‘흑·백’을 대표해 각각 최고의 카리스마로 꼽히는 그들이 공동주연을 맡아 출연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감독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 맨’등으로 잘 알려진 47년생 롭 라이너가 맡아 ‘죽음’이라는 비장하고 엄숙한 주제를 다뤘으니 ‘본전’ 아까운 생각은 안 들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60대의 감독과 70대의 노익장 배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유지해줄 것이라는 예상대로 영화는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관객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관광’과 ‘철학’을 배합해 화면에 옮겨놓은 감독의 솜씨는 최상급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순한 마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의 히트작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미저리’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솜씨는 세월에 무뎌지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뭐랄까요 요즘 유행어처럼 어딘지 ‘2%가 부족한 듯’한, 느슨해서 조금은 허한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 정도면 됐어 하면서도 좀 더 확실하고 뭉클한 어떤 메시지를 바랐던 관객들에겐 성찬이긴 하나 간이 안 맞아 싱거운 요리를 먹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상왕’들로 군림하고 있는 쩌렁쩌렁한 두 노배우들을 보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볼만했습니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군계일학’식으로 언제나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잭 니콜슨의 영화는 이제까지 거의 빼놓지 않고 봐왔기에 그가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잭 니콜슨 하면 근 30년 전인가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그 강렬했던 연기나 ‘보통사람들’에서 로맨틱한 이웃집 남자로 나왔던 그 모습이 거의 ‘원초적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배우’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편집증세가 있는 까칠한 작가 역으로 열연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그것도 벌써 10년도 더 전의 영화라니...

그 이후에도 그가 나온 영화는 심심찮게 봤지만 그 영화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가 제게 심어준 이미지는 아마 ‘까탈스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가 출연한 영화는 어떤 걸 봐도 ‘수준 급’이라는 후한 점수를 매기곤 했습니다. 관객을 압도하는 힘이 그에게선 늘 느껴졌지요.

‘상복’도 화려해서 골든 글로브나 아카데미에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남우주연상이나 조연상을 휩쓸어 명실 공히 ‘대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이제 그는 거의 ‘할리우드 교과서’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년에는 남성적인 매력도 대단했죠.

그런 그가 이제는 칠순이 넘은 노배우로 ‘죽음’을 앞에 둔 암환자로 나오는 배역을 맡았으니 세월무상이 느껴지더군요. 어쨌든 그는 ‘죽음’앞에서도 당당해 보이려는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언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젠틀하고 안정감 있어 보이는 모건 프리먼도 마찬가집니다. 할리우드 흑인 배우의 대부 격인 그 역시 잭 니콜슨 못지않은 카리스마로 영화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멋쟁이 배우죠. 현자(賢者)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것도 배우로서 높이 살만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따스하고도 충직한 흑인 기사 역을 맡아 까탈스런 백인 노마님을 위해 헌신하는 연기를 보여준 모건 프리먼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쇼생크 탈출’이나 ‘세븐’ 등 모건 프리먼의 영화도 거의 다 봤기에 이제 영락없는 ‘황혼기’ 에 들어선 그가 어떤 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지도 궁금한 사항이었지요.

모건 프리먼은 이 영화에서 그의 좋은 이미지, 자애롭고 성실하고 지혜로운 그런 이미지를 충분이 연기해낸 것 같습니다. 

‘버킷 리스트’는 사실 한국 사람들에겐 그렇게 어필하는 주제는 아닌 듯합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 사람들에겐 ‘죽음’은 피하고 싶은 주제이니까요.

흔히 ‘죽음’ 하면 칙칙하고 슬프고 절망적인 이미지를 갖게 마련입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 역시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두 노인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얼핏 들으면 영 암울할 것만 같지만 롭 라이너 감독은 자신의 특기인 코믹한 장면에 뛰어난 연출솜씨를 발휘해 어둠 같은 죽음을 환하게 포장해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 듯합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잭 니콜슨(에드워드)과 45년간 ‘자동차 밑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온 정비공 모건 프리먼(카터)의 대비가 조금은 인위적이고 도식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대부분의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인색하고, 까다롭고, 괴팍한 성격대로 영화에서 잭 니콜슨 역시 마른 수건도 쥐어짜는 스타일의 억만장자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가 세워 놓은 규칙인 특실에서도 1인2실만 허용한다는 규정에 따라 ‘좀비 같은’ 모르는 흑인과 함께 입원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과 교수님의 지시대로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비공 카터는 대학 노트에 죽기 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나갑니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아쉬움이 그에게서 프래시맨 시절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장엄한 광경보기, 낯선 사람 도와주기, 눈물 날 때까지 웃기, 무스탕 셀비로 카레이싱 하기, 최고의 미녀와 키스하기, 영구 문신 새기기, 스카이 다이빙하기, 로마 홍콩여행 피라미드 타지마할 보기, 오토바이로 만리장성 질주하기, 세렝게티에서 호랑이 사냥하기,

이런 목록을 썼다가 버린 것을 잭 니콜슨이 주워서 읽으면서 이 두 영감님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의기투합해서 병원을 뛰쳐나와 하나하나 실천해 나간다는 게 동화 같은 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큰 부자’와 ‘성실한 소시민’이 돈의 힘에 의해 세상유람에 나서지만 ‘돈’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많고 어쩌면 그런 것들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를 감독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비록 없이 살아왔지만 다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백년해로’를 실천하고 있는 듯한 소시민 흑인과 4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해 돈은 있지만 ‘사랑’이 부재하는 억만장자 백인을 대비하는 건 사실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적인 설정이 관객들에게 더 쉽게 어필하고 더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할수 있을 것이라고 감독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의 정확한 제작의도야 전혀 모릅니다만.^^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질 수만은 없는 것이고, 인생은 그래서 불공평한 것 같지만 결국엔 거기서 거기인 게 인생이라는 일반인들의 보편적 인식을 감독은 충실히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결국 두 영감님의 화려한 외출은 ‘죽음’이 찾아오면서 끝나고 두 사람 모두 두 개의 인스턴트커피 깡통 속으로 들어가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는 히말라야 산정에 ‘안장’되는 광경에서 인생에 대해 숙연함을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로 어떤 걸 꼽고 싶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