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와 그들 각자의 영화관(To each his own cinema)
오후 네 다섯 시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에 지치거나 일상에 지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제 그 무렵 저는 무슨 영양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반짝 기운이 들었습니다. 기운만 든 게 아니고 아주 신이 났습니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본 덕분입니다.
114분 러닝타임이 끝난 4시 반 무렵부터 제 자신은 어느새 정신적 영화감독이 되어 차기 작품 구상에 들떴거든요.^^ 착각은 자유여서 저의 영화보기는 늘 이런 행복한 착각과 함께 기운을 얻습니다.
평소 영화 한편만 봐도 원기를 팍팍 얻는데 무려 33편이나 되는 영화를 한꺼번에 봤으니 그 넘치는 기운이 오죽했겠습니까. 이런 알짜배기 영화를 운좋게 본 건 생애 처음입니다.
‘절대 다시없을 금세기 최고의 역작’이라는 영화사의 홍보 문구가 적힌 팸플릿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35명의 감독이 참여했지만 까다로운 2인의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말라해서 33명의 작품만 소개되었다는군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작년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질 자콥의 지휘아래 칸영화제 역대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이른바 톱클래스 영화감독 33명이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각각 ‘3분 미니 영화’로 만든 것을 한 자리에 모은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말하자면 ‘장원급제한 수재 33명을 한 자리에 모아 다시 또 재간 겨루기’를 한 셈이지요. 그것도 3분이라는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이 생애를 걸고 일해 온 ‘영화’를 정의해, 관객 앞에 한 상 차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가끔 옴니버스 영화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내로라하는 세기의 감독들이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생존의 이유’인 영화관을 테마로 3분 압축영화를 만들어 한 자리에 모았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중에게 사랑받으면서도 예술성에서 뛰어난 그런 작품이어야 한다! 아마 이 페스티벌에 참석한 재기 넘치는 33인의 감독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엄청 긴장한 가운데 어쩌면 자신의 최고 역량을 발휘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 3분짜리 영화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좀 다른 얘기지만 아마 한국의 거의 모든 영화감독들이나 감독 지망생들의 로망은 바로 작품성을 겸비한 1천만 명 관객을 불러들이는 작품을 극장에 선보이는 것이겠지요.
시대적 트렌드가 워낙 ‘경제와 돈’에 연결 지어지다 보니까 예술도 돈이 안되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것이 요즘 한국 실정이지요. 그러니 이런 ‘3분 영화’에 전력투구하는 아티스트들을 보는 시각이 한국에선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선지 이 영화를 개봉하는 극장은 서울에서 서너 군데 밖에 안 됩니다.
물론 이 영화가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어쩌면 더 많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활극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들 각자의 영화관’같은 영화는 영화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관객이야말로 영화의 존립근거이다 보니 ‘손님’들지 않는 영화를 돌리는 영화관이 많지 않다는 건 비즈니스법칙상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돈’만 따지는 소위 ‘실용주의 경제’만 판을 친다면 진정한 인간의 길을 모색해보는 예술영화가 설 땅은 점점 좁아지겠지요.
사실 한 나라에서 1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드는 영화가 몇 년 사이에 서 너 작품이나 쏟아져 나온 건 아마 우리 대한민국 외에 그렇게 많지도 않을 겁니다.
하기야 일본에선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몇 편이 1천만 명 이상을 동원하긴 했지만 일본은 우리가 아무리 가볍게 봐도 인구만 해도 우리보다 3배나 많은 ‘대국’이니까 우리와 그런 식의 평면비교를 하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더구나 일본에선 극영화에 1천만 명 이상 들어 대히트한 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런 ‘1천만 흥행 영화’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누군가 그랬지요. 1천만 흥행 영화 한편 보다는 1백만명이 본 영화 열편이 있는 게 문화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구요. 공감합니다.
‘1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들이 작품성도 탁월했다는 평가를 내리긴 어렵습니다만 그렇게 상업적으로 대히트한 자체만으로도 그 감독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제까지 관객동원에 성공한 그런 영화들은 솔직히 제 개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1천만 명 이상이 그 영화를 선택했다는 그 점을 존중하고 싶거든요.
마찬가지 이유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영화를 만든 감독정도라면 아무리 관객동원에 실패했다 해도 본인의 예술세계와 자존심이 확고한 아티스트들임으로 그들은 당연히 대접해줘야 할 겁니다.
1천만명을 동원한 감독이나 10만 명 동원에도 실패한 감독이나 자존심의 무게는 똑같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10만 명 동원한 감독이 자존심 면에선 더 날이 서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벌써 재작년인가요, 봉준호 감독이 ‘괴물’로 대히트하고 있을 때 마니아들에게서만 인정받고 있는 걸로 알려진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절영선언’을 했었지요. 그 선언이 바로 김 감독의 자존심의 무게였을 겁니다. 그 후 김 감독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영화 일을 재개했지요.
어쨌든 어제 제게 영양주사 33대 맞은 효과를 주었던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보면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영화감독들의 끓는 피와 성역 같은 자존심,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화에 대한 무한한 그들 각자의 애정에 숙연하면서도 행복한 기분이었습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라스트 폰 트리에, 빌 어거스트, 구스 반 산트, 첸 카이거, 기타노 다케시, 장 이모우, 왕가위, 마이클 치미노, 데이빗 린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빔 벤더스, 후 샤오시엔, 로만 폴라스키 제인 캠피온, 켄 로치 등등...
웬만한 영화팬들이라면 그 작품에 박수와 격려를 보냈을 이런 거장들이 ‘3분’을 위해 전력투구로 만들었을 영화관에 관한 영화 33편을 안락한 의자에서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의 어제 오후는 꽤 근사했습니다.
그들의 ‘영화적인 재능과 버릇’은 이 ‘3분’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감독들의 독특한 취향을 떠올리며 누가 만들었나를 알아 맞춰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가령 후샤오시엔의 이번 작품에는 그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성시’의 그 단란하지만 왠지 아련한 슬픔 같은 게 감지되는 가족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폼생폼사’일 것 같은 멋쟁이 왕가위도 자신의 화려한 컬러를 버리지 못했더군요. 딱 보는 순간 ‘왕가위 표’를 알아 맞췄거든요. 얼마전 봤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와 너무도 유사한 이미지였습니다.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만 빼곡한 영화관 풍경에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어둠 속의 댄스’의 비장함을 극장 안에서도 연출한 라스 폰 트리에, 한때 제일 좋아했던 ‘정복자 펠레’를 만든 빌 어거스트 감독의 3분 영화에서도 그의 취향을 대번에 알아봤습니다. 영사실에서 영사기를 돌리는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의 모습도 보기에 좋았습니다.
영화감독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안테나’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 역시 유년시절부터 영화라는 매력적인 예술 장르에 막연한 동경과 경배를 바쳐왔다는 걸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위병 시절의 쓰라린 경험을 비극적 화면으로 보여주었던 첸 카이거는 눈먼 소년이 영화에 바치는 한없는 애정을 ‘동심의 세계’ 속에 녹여내 보는 일들을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꼭 눈이 보여야만 보는 것은 아니라는 거겠죠.
아무튼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서 그들 재능 있는 감독들은 ‘내가 이렇게 해서 영화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었소’ 라는 자기고백을 진솔하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관에 얽힌 추억들은 대부분의 영화팬들에겐 각자의 소중한 유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것입니다.
저의 영화보기도 여섯 살 무렵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본 한국영화 ‘이 생명 다 하도록’이 생애 처음 본 영화였습니다. 아역배우 전영선이 저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최은희 김진규 남궁원등 호화배역진으로 당시 굉장히 히트했던 영화라고 합니다.
유치원 다녀오는 길에 집에서 일하던 언니와 함께 남영동 길가에 있던 성남극장에서 ‘유관순’을 보고 사진관에서 기념사진 찍은 기억도 납니다. 그 후 부모님과 함께 이광수의 ‘꿈’이나 ‘청일 전쟁과 여걸 민비’를 가슴 떨려하면서 본 추억도 있습니다. ‘콰이강의 다리’는 처음 본 외국영화였지요.
‘왕과 나’ ‘애인’ ‘닥터 지바고’ 이런 영화들이 저의 어린 시절을 충만하게 해준 ‘작품’들입니다.^^ 그밖에도 저를 아련한 행복감에 젖어들게 한 그 무수한 영화들...‘나의 영화관’ 수첩은 ‘행복 수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광적인 영화팬으로 자임한 일본인 시오노 나나미는 흠모했던 게리 쿠퍼가 세상을 뜨자 ‘상중(喪中)’이라며 학교마저 결석했다죠. 그 심정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영화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봐오면서 살아왔지만 ‘좋은 영화’는 거의 언제나 제게 ‘알부민 효과’를 선사합니다.
그래서 한사코 영화관으로 뛰어갑니다. 영화관의 어숨푸레한 분위기에서 영혼의 안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만든 감독들도 영화에 대해 인생에 대해 거의 저와 같은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무조건 좋은 거죠.^^
이 33인의 감독들 중 우리나라 감독이 한 명쯤은 있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 난 하루 뒤인 오늘까지도 ‘영화 엔돌핀’이 저의 행복한 정신건강에 기여를 하고 있네요.
영화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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