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스 아일랜드를 본 초등3년 관객의 영화평
환타지 영화나 ‘초특급 어드벤처’라고 홍보하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낯익은 꼬마 여배우 아비게일 브레스린이 주연을 맡은 ‘님스 아일랜드’를 봤다. 우선 시간대가 맞았고 무엇보다 우연히 알게 된 초등3년 영화평론가(?)의 적극 권유가 마음을 흔들었다.
말하자면 ‘입소문’에 낚여서 ‘충동관람’을 한 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자체는 그저 그렇다. 단조롭고 이렇다 할 큰 감동을 선사하진 않는 것 같다. 물론 내 입장에서의 이야기다.
그러나 명동 롯데 영화관 로비에서 만난 초등3년 ‘꼬마 숙녀’는 내가 “무슨 영화봤어?”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님스 아일랜드요”라고 자랑스러운 듯 대답했다. 조금은 상기된 듯한 얼굴의 꼬마는 묻지도 않은 영화 스토리를 들려주고 싶은 듯 입을 조붓하게 오무린다.
요즘 아이들이야 워낙 조숙하다는 건 알지만 이제 겨우 초등 3년생인데도 그렇게도 당당한 표정과 목소리로 영화평을 말하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세계 12위권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면 뭐 그런 소소한 일에 국력까지 들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소한 ‘문화적 저력’이야말로 바로 국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었어?”라고 물었더니 소녀는 “네, 네, 너무너무 재밌어요. 특히 마지막이 해피엔딩이라서 너무 좋았어요. 글구 주인공이 너무너무 멋져요”하면서 생긋 웃는다. 초등 3년생 어린이의 입에서 ‘해피엔딩’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대견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꼬마 평론가가 좋다는데 한번 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이렇게 해서 보게 된 님스 아일랜드. 물론 그 영화 자체는 그냥 평범한 어린이용 모험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영화였지만 엔딩 자막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꼬마 관객의 짤막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영화평이 생각나 흐뭇하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 꼬마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올해 12세 된 아비게일 브레스린을 굉장히 부러워하면서 영화를 봤을 것 같다. 10세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서 볼 때 ‘님스 아일랜드’의 꼬마 여배우는 말할 수 없이 부러운 선망의 대상일 것이다.
게다가 경치 좋은 섬에서 아빠의 연구를 도와드리면서 학교도 안 가고, 지겨운 공부는 안 해도 되는 주인공의 일상생활은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며 빡빡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도시의 초등생들에겐 아주 부러운 세계로 보일 것이다. 나도 예전에 아역배우들을 한없이 부러워하든 기억이 떠올라 슬며시 웃었다.
꼬마 여배우 아비게일 브레스린은 한국에서도 꽤 지명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아비게일 브레스린이 나오는 영화 중 내가 본 것 만해도 3편이나 된다. 아주 ‘잘 나가는 꼬마 여배우’다. 깜찍하고 연기솜씨도 괜찮은 편이다.
‘미스 리틀 선 샤인’ ‘사랑의 레시피’ ‘나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등에서 이 꼬마 배우는 어른과 같이 호흡할 정도로 능숙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님스 아일랜드에서도 브레스린은 해양과학자인 아빠와 ‘상상의 섬’에서 단둘이 살면서 자연을 학교삼아
이구아나와 물개 같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연기를 무난하게 해냈다.
이 영화에 대해선 미국 내에서도 점수를 별로 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영화 홍보 팸플릿에는 ‘나니아 연대기’ 제작진이 선사하는 초특급 어드벤처, ‘지도에도 없는 그곳, 상상초월 모험의 문이 열린다!’ ‘상상이 현실로 펼쳐지는 비밀의 섬’ ‘인디아나 존스를 잇는 올여름 최고의 초특급 어드벤처’ ‘눈으로 떠나는 바캉스’ 등 화려한 호객문구로 요란하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그냥 밍밍한 편이다.
어린이 전용영화라기엔 어린이들이 이해 못할 장면, 모험소설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 속 등장인물이 동시에 등장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라든지 꼬마 여주인공 님이 읽는 모험 소설의 장면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면 등은 초등생들이 보기엔 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하기야 내게 ‘해피 엔딩이라서 좋아요. 아주 재미있어요’라고 영화평을 해준 그 꼬마 관객 정도라면 아마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를 이해했으리라고 본다.
영화 속 모험소설 작가로 등장하는 조디 포스터는 꽤 오랜만에 봐선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세월의 무게에 압도당한 듯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광장공포증이라는 희한한 병을 갖고 있는 까다로운 작가로 조금만 지저분한 걸 만지고 나면 곧바로 손세정제를 바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주 오래 전 잭 니콜슨이 역시 까다로운 작가로 등장하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대체로 작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다로운 존재들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싶다. 글 쓰는 걸 직업으로 삼는 작자들이다보니 까다롭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듯도 싶다.
어른 관객이 볼 때 ‘님스 아일랜드’는 크게 히트하기엔 좀 미흡한 그런 영화다. 더구나 현재 극장가의 ‘최강자’로 군림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놈놈놈’같은 영화가 워낙 드높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어쩌면 생각보다도 빨리 간판을 내려야 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름방학 기념으로 초등생들을 데리고 온가족이 함께 볼 영화라면 ‘님스 아일랜드’는 그런대로 괜찮은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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