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섹스앤더시티 보다 훨씬 공감가는 브로큰 잉글리쉬

스카이뷰2 2008. 7. 22. 10:13

 

프랑스 연인 줄리앙에게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호소하는 여주인공 노라. 

 

섹스앤더시티보다 공감가는 브로큰 잉글리쉬 (Broken English)

우리 동네 롯데 시네마에서 ‘브로큰 잉글리쉬’라는 특이한 제목의 영화를 봤다. 지난 6월 우연히 본  프랑스 영화 ‘8명의 여인들’을 상영했던 바로 그 영화관이다. 어느새 영화관 입구에는 ‘예술 영화관’이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었다.


도우미 청년에게 “예술 영화관이면 관객은 별로 없겠네요?”라고 물었더니 겸연쩍은 듯 웃으면서 “네, 별로요”라고 답한다.

손님이 안 든다는 게 좀 찜찜하지만 그래도 명동 롯데 시네마에도 없는 ‘예술 영화관’이 우리 동네에 생겼다는 게 은근히 자랑스럽다.


그렇잖아도 멀티플렉스 영화관 탓에 소형극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는데 그나마 이런 공간이 생긴 게 다행이다. 든든한 후원자가 생긴 심정이었다.

요즘 웬만한 멀티플렉스 시네마에는 ‘놈놈놈’이 시끄럽게 휩쓸고 있어서 정작 볼게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썩 바람직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영화만 걸어놓고 이걸 봐라 하는 식이어서는 한국영화 발전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다. 한국영화를 집중 지원해준다는 관점에서야 그럴 수도 있는 현상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야 진정한 경쟁력이 생기기 어렵다고 본다. 다양한 영화를 걸어놓고 거기서 ‘관객의 선택’을 받는 공정한 체제라야 국제무대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브로큰 잉글리쉬’라는 낯선 제목의 로맨스영화가 조용히 상영되고 있다는 게 흐뭇했다. 동네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바로 이런 문화적 공간이 버텨준다는데 있는 것 아니겠는가! 꼭 부동산 값이 많이 나가야 ‘수준 높은’ 동네로 평가하는 것보다야 훨씬 인간적이고 바람직한 척도라는 생각마저 들었다.(원 영화 한편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하는 것 같다.^^) 


지난 번 ‘8명의 여인들’을 볼 때처럼 영화내용도 전혀 모르고 감독이 누군지 어느 나라 영화인지도 모른 채 일단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예술 영화관 간판이 효력(?)을 발휘해선지 관객은 10명 미만.

우리 시대는 일단 ‘예술’자가 붙으면 별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번 ‘8명의 여인들’때도 관객은 공교롭게도8명뿐이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영화판에도 적용되는 것인지.


‘브로큰 잉글리쉬’는 30대 중반 ‘잘나가는’ 캐리어우먼의 ‘잘 안 나가는 연애사’가 큰 줄거리다. 은은한 미모의 파커 포시라는 여배우가 여주인공. 처음 보는 그러나 상당히 매력적인 프랑스 남자 배우 멜빌 푸포가 남주인공. 뉴요커로 살아가는 여주인공의 삶이 섹스앤더시티의 요란스런 여주인공들보다 훨씬 피부에 와닿는다. 아마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대부분  브로큰 잉글리쉬의 여주인공에 더 큰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두 영화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섹스앤더시티야 화려한 물량공세와 볼거리 위주,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기법 등이 잘 어우러진 전형적 할리우드 영화다. 그러니 이제 막 영화계에 도전장을 들이민 신인감독의 독립영화인 브로큰 잉글리쉬와 비교한다는 자체가 우스꽝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뉴욕에서 직장생활하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볼때 브로큰 잉글리쉬가 훨씬 현실적이고 세대와 국적을 초월해 공감을 주는 이야기같다. 섹스앤더시티의 그 화려하고 조금은 경박스런 이야기에 비해 브로큰 잉글리쉬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진지하게 추구해나갔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에서는 무엇보다 감독이 제일 중요한 법인데 ‘브로큰 잉글리쉬’는 조 R 카사베츠 라는 38세 된 여성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물론 영화가 끝난 뒤 자료검색창을 통해 그녀의 이력을 알았다.)

오랜만에 ‘옛날 영화’같은 서정적이면서 러닝타임 내내 배우들과 함께 하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바쁘게 일하는 젊은 커리어우먼 노라는 늘 ‘사랑’을 갈구하지만 뜻대로 되질 않아서 신세한탄만 하는 처지다. ‘도시의 외로운 사냥꾼’같은 그녀의 고독은 뉴욕이나 도쿄나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일하는 똑똑한 커리어우먼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원천적인 도시인의 고독이자 현대인들의 공통된 고독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호텔리어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일하는 ‘재미’도 고독 앞에선 영 맥을 못춘다. 몇 번의 사탕발림 같은 연애에 속은 뒤 눈물을 흘리는 노라 앞에 어느 날 ‘운명처럼’ 프랑스 남자 줄리앙이 나타난다. (손태영의 눈물 흘리는 모습에 반했다는 권상우가 떠오른다.^^)

줄리앙은 파리로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선뜻 따라나서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노라는 또 외로워진다. 


영화는 노라가 성장하면서 받았던 상처들과 그녀의 마음속 고통 그리고 30대 중반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에 헌신하고 싶은 노라의 순수한 여정을 무리 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노라는 떠나간 줄리앙의 존재를 그리워하다 어느 날 갑자기 소중한 일자리마저 박차고 친구와 함께 파리로 사랑을 찾아 떠난다. 친구는 노라의 소개로 결혼해 외면상으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유부녀이지만 내면으론 역시 허상 같은 결혼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는 처지다.


감독은 아마 입장이 다른 두 여성을 내세워 상반된 처지지만 결국은 진정한 사랑이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 한 것 같다.

파리에서 연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연락조차 못하고 파리 시내를 이리저리 방황만 한다.


연인을 만나지 못하고 결국 노라는 뉴욕으로 다시 향한다. 멍하니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있던 그녀 앞에 또 우연처럼 나타난 연인 줄리앙을 만나는 순간, 관객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다행이야’ 라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관객에게 이런 느낌을 갖게 했다면 이 영화는 성공작이라고 본다. 감독이 솜씨가 있다는 얘기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같은 뉴욕에서 일하지만 요란스런 여성들의 이야기인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그런 여성들에 비하면 노라의 순수한 연애사가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어쩌면 노라의 그런 애틋함은 신인감독의 영화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암시해 주는 것 같다. 그녀는 앞으로도 영화적 진정성을 느끼게 해줄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카사베츠 감독은 이 영화를 직접 각본까지 써서 연출했다. 알려진 대로 1989년 타계한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존 카사베츠 감독의 딸로 모친은 배우 지나 롤랜즈, 오빠인 닉 카사베츠도 영화감독인 실력있는 영화인 집안 출신이다. 이 ‘브로큰 잉글리쉬’는 불과 20일 만에 촬영을 마친 저예산 인디영화로 역시 부모의 ‘영화적 DNA’를 물려받은 것 같다.


영화 속 여주인공 노라의 모친이 바로 카사베츠 감독의 모친. 그녀는 “우리 엄마는 너무나 뛰어나고 재능 있는 위대한 배우”라는 말로 사모곡을 바치는 효녀. “어머니는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날 감독으로 존중해 주셨고, 더 할 나위 없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셨다.”

1930년생 여배우로선 드물게 효녀 딸 덕분에 ‘현역’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자유분방하게 자란 딸들도 이렇게 ‘동양적 효녀 스타일’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카사베츠 감독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차세대 여성 감독이라고 한다. 원래 배우로 영화를 시작했지만 연기를 못해 그만두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처음 카메라 뒤에 서서 일하기 시작하는 순간 여기야말로 내가 일할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비단 그녀뿐 아니라 적잖은 감독들이 ‘배우 지망생’출신들이었다고 고백하는 걸 종종 봤다. 그래선지 감독들의 외모는 웬만해선 ‘수준급’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긴 하지만 정작 스크린을 누비는 ‘배우’라는 자리가 주는 매력도 만만찮은 것 같다.


한국 감독 중에서도 ‘배우 지망생’에서 방향을 튼 사람들이 꽤 있다. 반면에 배우 하다가  무언가 ‘갈증’을 느껴 ‘감독’으로 전향한 경우도 더러 있다.

요즘은 특히 ‘전 방위적 활동’이 유행하는 추세이니까 배우도 하고 감독도 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하는 게 이상할 건 없다고 본다. 


카사베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온가족이 영화인’인 집안배경 덕을 보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영화판은 냉혹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집안 배경을 가질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 항상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정작 내가 영화를 만들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카사베츠 감독은 현재 파리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녀는 파리를 시나리오를 쓰기에 참 근사한 장소라고 말했다. 그래선지 그녀는 ‘파리 사람들’을 아주 우호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마 미국인들이 파리에 갖는 ‘환상’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비단 그녀들 뿐 아니라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에게도 파리는 늘‘로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칼럼니스트 캐리가 러시아 출신 애인과 함께 파리에 가게 된다고 하자 그 친구들이 환성을 지르던 장면이나 파리에 막 도착한 캐리가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 시내 전경을 내려다  보면서 한없이 행복해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파리는 개국의 역사가 짧은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사랑과 꿈의 도시’로 남아있나 보다. 파리가 갖고 있는 역사성이나 예술성 최첨단 유행의 도시로서 갖추고 있는 세련된 이미지 같은 것들이 뉴요커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러닝 타임 100분 동안 주인공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브로큰 잉글리쉬’는 오랜만에 만난 차분한 로맨스 멜로드라마다.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강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