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블로그에 아인슈타인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많이 아껴주세요^^(아래 사진은 다음 카페에서 퍼왔습니다. 독일의 한적한 시골 풍경)
제 1부 뮌헨의 신동
‘내 고향은 수학자들의 도시 울름’
인류 최고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고향은 독일 남부 도시 울름(Ulm)이다. ‘수학자들의 도시’,‘다뉴브 강변의 베니스’로 불리는 울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울름 대성당과 어촌으로 유명한 울름은 라인강과 다뉴브 강이 흐르는 독일 남서부 슈바벤의 구릉 지역에 있다.
전형적인 독일 소도시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아늑하게 만드는 곳이어서 처음 그곳을 방문한 사람도 언젠가 와봤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정겨운 느낌을 주는 도시다.
아인슈타인은 태어나서 1년 후 뮌헨으로 이사가 유·소년기 14년간 그곳에서 성장했지만 자신의 고향은 울름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곤 했다. ‘뮌헨의 신동’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태(胎)자리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아인슈타인이 동양의 풍수지리학을 공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출생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한 사람에게 어머니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듯이 그의 출생지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향과 품격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아인슈타인은 울름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울름은 예술적 전통과 건실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고향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는 ‘씩씩한 슈바벤 사람’이라는 노래를 곧잘 흥얼거렸다.
훗날 슈바벤 사람의 ‘기질’이 요구되는 사랑의 쟁취에서 그는 태 자리가 뿜어내는 ‘힘’을 업고 새롭게 다가오는 사랑에 늘 ‘첫사랑’처럼 대시하는 괴력을 발휘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고향은 입맛’이라는 속담도 있듯이 아인슈타인은 어려서 먹던 음식 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언제나 소박한‘고향의 음식 맛’을 자랑하고 그리워했다. 훗날 재혼한 이종사촌 누나 엘자는 아인슈타인에게 맛있는‘고향 음식’을 해주면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음식만큼 친밀도를 높여주는 사랑의 매개체도 없는 듯하다.
아인슈타인의 생가는 슈바벤 중앙역 근처 반호프 가 135번지. 아인슈타인 일족이 살았던 4층짜리 석조건물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국의 문청(文靑)들에겐 소설 ‘데미안’의 작가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도 울름은 너무나 아름답고 독특한 매력이 있는 도시라고 말했다. 아인슈타인보다 두 살 위인 헤세는 ‘고향 선배’로 아인슈타인이 스위스에 살 때는 이웃 마을에 살았다.
독일문학의 최고봉으로도 손꼽히는 그는 1923년 아예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이 1922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것에 비하면 노벨상에선 한참 후배인 셈이다.
하지만 두 거장은 문학과 과학이라는 판이한 세계에서 각각 정점에 도달한 ‘달인들’답게 극과 극은 통하듯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은 거의 비슷했다. 나치주의에 항거한 헤세에게 나치독일은 헤세의 이름으로 책을 만드는 데 종이 공급을 금지했다.
헤르만 헤세는 1926년 울름을 방문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도시의 성곽과 푸줏간, 시청 등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울름이라는 도시가 주는 첫 인상은 강렬하고 다정했나 보다.
그런 ‘좋은 기운’이 감도는 소박한 도시 울름의 쌀쌀하고 화창한 봄날 1879년 3월14일 오전 11시 30분, 스물 한 살의 산모 파울리네는 힘겨운 진통 끝에 첫 아들을 낳았다. 여느 산모들처럼 아인슈타인의 엄마는 난산 끝에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을 일일이 세어보다가 지나치게 큰 뒤통수를 보면서 혹시 기형이 아닐까 걱정했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 외할머니 에텐 코흐는 너무 뚱뚱한 아기라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 외할머니는 아인슈타인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남다르게 기발난 이 아이의 공상의 세계를 아주 즐겁게 들어주는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토끼해에 태어난 이 사내아기는 두 살이 넘도록 말을 하지 않아 부모의 조바심을 태웠다. 하지만 세 살 되는 해 여동생 마리가 태어나는 순간을 지켜보다가 “왜 아기에게 바퀴가 안 달렸어?”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을 말해 부모를 안심시켰다. 그 후로도 꼬마는 거의 언제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유일한 형제인 여동생 마야는 ‘천재 오빠’를 회상하며 “아주 어렸을 때는 질문을 받으면 조용히 그 질문을 되풀이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 특이한 버릇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천재 아인슈타인’이기에 그런 평범한 버릇도 그에 대한 ‘아인슈타인 신화’를 형성하는 스토리로서 기여를 하고 있는 듯하다.
말이 늦은데다가, 말문이 트인 후에도 우물우물 되씹는 말버릇 탓에 집안의 하녀들은 아인슈타인을 ‘바보’로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다는 옛말처럼 유일한 혈육인 마야는 천재 오빠를 감싸는 발언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야에 의하면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재주는 바로 이 ‘곱씹는 언어 행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과학에 필수적인 ‘통찰력’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다는 것을 틈나는 대로 말하고 다녔다.
‘아인슈타인처럼 키우기’를 열망하는 당시의 ‘극성쟁이 엄마들’에게 아인슈타인은 가끔 강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다른 애들과 달리 말을 아주 늦게 해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지요. 말도 더디고 생각도 더딘 탓인지 어린 시절에 끝마쳤어야 할 여러 가지 궁금한 자연 현상에 대해 어른이 되어서까지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어른이면서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것은 바로 늦된 아이였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어른 속에 아이가 숨어있다는 말은 비단 아인슈타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기 속에 숨어있는 무의식의 아이 탓에 어른이 되어도 아이 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는가. ‘내안에 숨은 아이’탓에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기상천외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헤아려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자기 안에 도사린 ‘늦된 아이’덕에 세계적 석학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마도 많은 엄마들에겐 구원의 복음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저마다 ‘우리 아이는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기분좋은 착각 속에 빠지기 쉬운 젊은 엄마들에겐 매력적인 남자 아인슈타인의 그럴듯한
‘고백’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이런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에 힘을 얻었을 엄마들은 적잖았다. 어딜 가나 아인슈타인은 여인들의 환대를 받았다. 아마도 그 남자 안에 숨어있는 ‘늦된 아이’가 여인들에게 ‘모성본능’을 불러 일으켰을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의 그 말은 어쩌면 요즘 젊은 엄마들에게도 상당한 도움말로 다가갈 듯싶다.
130 년 전 태어난 ‘신동 이야기’는 21세기에도 그대로 효력을 발휘할 스토리가 아닌가. 어느 시대나 엄마들에겐 자식 잘 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자신의 아이가 ‘신동’이라고 믿고 싶은 젊은 엄마들에겐 ‘아인슈타인 따라 하기’처럼 매력적인 육아방식도 드물 것이다.
‘천하의 아인슈타인’이 ‘늦된 아이’였다는 건 그 상징성이 꽤 크다. 조기교육, 천재교육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과정 역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두 살도 되지 않은 아기들을 영재학원에 보내는 요즘 엄마들에게 한번 쯤 벤치마킹을 권하고 싶은 이야기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그‘젊은 엄마’파울리네 역시 누구보다도 교육열이 왕성했다. 대체로 유대인 부모들의 교육열은 천하에 이미 알려진 것이어서 그리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옛날 독일의 유서 깊은 교육도시 뮌헨에서 아들에게 영재교육을 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은 아인슈타인 엄마의 열정은 아인슈타인이 청년이 되어서까지도 사그라 들지 않았다. 다 큰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코치하는 재미로 살고 있는 한국의‘헬리콥터 엄마’들처럼 아인슈타인의 엄마는 아들의 애정문제에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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