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의 전원주택(사진은 다음 카페에서)
만년의 아인슈타인
일반인의 평범한 상대성 이론- 사랑은 시간 앞에 진다
밀레바 역시 그런 여학생 중 한명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아들보다 더 귀하게 키운 ‘알파 걸’인 셈이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기대는 지나칠 정도로 컸다. 정부의 관리로 일하던 밀레바의 아버지는 세상물정에도 밝은 편이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았고, 부를 축적하는데도 적잖은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밀레바는 처음엔 취리히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무슨 연유에선지 그녀는 1년 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으로 옮겼고 바로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 아인슈타인을 만나게 되었다. 역사에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쓴다는 것처럼 바보스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그녀가 그냥 의과대학에 다녔더라면 그녀 앞의 생은 그처럼 처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로, 당당한 여의사로 그녀의 앞날은 전도양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그녀 편을 들어주지 않았고 ‘남자 때문에’ 그녀의 인생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누구의 인생이라도 그러하듯 ‘남녀관계’에서는 설령 상대에게 99%의 과오가 있다하더라도 마지막 1%를 가진 사람이 핵심적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았다. 그렇게 선망 받던 ‘귀한 집 따님’으로서의 밀레바의 위치는 결국 아인슈타인이라는 ‘복병’을 만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고야 말았다.
99%는 아인슈타인 잘못이었다 손치더라도 1%의 핵심 키를 가지고 있던 그녀에겐 과연 반전드라마를 연출할 힘이 진실로 없었을까? 아니면 그녀는 정해진 운명에 저항하지 못하고 자신을 포기해버렸을까? 그들 남녀의 ‘청춘 보고서’인 서한들을 읽다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왜 그들은 그렇게까지 파란을 일으키며 헤어지지 않으면 안됐는지...과연 인류 최고천재 아인슈타인이 그런 식으로 아내를 함부로 대하게 된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물론 그 ‘내밀한 사연’이야 그들 부부의 몫이겠지만 100년 후 그들의 인생을 엿보는 우리들로서는 ‘인생의 진실’ ‘진정한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들의 사연은 흥미진진하다. 사랑은 왜 시간 앞에서 빛을 잃어가야만 하는 지.
상대성 이론의 대가인 아인슈타인은 어쩌면 그 ‘시간의 비밀’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세상을 뒤흔든 ‘상대성 이론’은 어쩌면 그의 인생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과 맞춰본다면 그 어려운 시간과 사랑의 ‘상대성 비밀’을 의외로 쉽게 풀어내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 앞에 사랑은 진다. 이것이 물리학을 모르는 우리네 일반인들의 ‘상대성 이론’인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친한 친구가 되는 마르셀 그로스만은 장래 수학자로서의 포부가 대단한 학생이었다. 용모도 잘 생겼지만 판단력도 탁월한 엘리트 청년이었다. 그로스만은 아인슈타인과 곧 친해져 그를 집으로 초대해 부모에게 인사시켰다. “이 아인슈타인은 앞으로 매우 위대한 인물이 될 겁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했다. 그로스만의 사람 보는 안목은 대단한 셈이었다. 이제 겨우 18세를 지나고 있는 어린 남학생이 미래를 보는 먼 시야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은 보통일은 아니었다.
꼼꼼한 성격의 그로스만은 노트 필기도 매우 꼼꼼히 하는 스타일이어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노트를 자주 빌려보는 신세를 졌다. 학교를 졸업하고나서도 이 둘의 우정은 그들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어나갔다. 이처럼 우정은 연인들의 사랑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진해지나 보다. 특히 아인슈타이의 경우 어린 시절 쌓아놓은 우정을 만년까지 이어나갔다. 여인들에겐 쉽사리 싫증을 냈던 것과는 달리.
나중에 그로스만 덕분에 아인슈타인은 그 험난한 취업난을 뚫고 간신히 취직자리를 얻기도 했다.
당시 엄청난 구직난에 비춰볼 때 그로스만은 아인슈타인에게 ‘생명의 은인’이 된 셈이다. 대학 졸업후 아인슈타인은 극심한 취업난으로 고생을 많이 했었다.
또 한명의 동료 에라트는 아주 성실한 노력파 학생이어서 ‘공부가 쉬웠던’아인슈타인으로부터 학업적인 도움을 꽤 많이 받았다. 그도 아인슈타인을 종종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에라트의 엄마는 패기만만한 아인슈타인이라는 청년을 대견스러워했고, 그 역시 모정이 그리워질 때는 에라트네 집을 들르곤 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엄마가 봐도 듬직한 아들이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제노바에 사는 친척들이 매달 보내주는 100 프랑으로 우니온 거리 4번가의 쾌적한 하숙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 해에 부친은 또 사업에 실패해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아인슈타인은 개인교사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수입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생활고를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식사가 포함된 좋은 방에서 지내려면 월 70프랑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1896년 독일 국적을 포기했던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생활비를 쪼개 매월 20프랑씩 저축했다.
당시 취리히 공과대학의 학제는 비교적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해 아인슈타인은 물리 외에도 철학, 정치학, 경제학과 지질학을 선택과목으로 들었다.
대학가의 카페들은 아인슈타인의 공부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은 긴 파이프를 뻐금거리면서 열띤 토론을 했다. 카페는 늘 힘찬 대학생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들로 떠들썩했다. 걸걸한 목소리의 아인슈타인도 뒤질세라 목청을 높여 정치 사회 철학 분야의 ‘현안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술을 싫어하는 아인슈타인은 반호프 거리 근처에 있는 커피하우스를 단골 카페로 정하고 거의 매일 그곳에 들러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당시 독일대학의 학생모임에서는 맥주를 주로 마셨지만 아인슈타인은 맥주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게으르게 한다고 말했다.
‘카페를 중심’으로 한 대학생활은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동료남학생들에겐 진한 ‘동지애’를 엮어주었다. 강의가 없는 오후에는 어김없이 카페 메트로폴레에 모여들었다. ‘카페 동기생’들로서 그들은 불문율을 서로 지켜내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우스꽝스러운 원칙도 ‘젊은 그들’이 세우면 멋있어 보였다.
예를 들면 ‘늦게 일어난다, 아침 시간에는 물리학 실험실에 얼쩡거린다, 강의는 빼먹거나 존다, 그러다 카페로 향한다’ 대충 이런 규율 같지 않은 규율을 내규로 세우고 그들은 나름대로 충실한 카페 위주의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보람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빈둥거리는 대학생활에 아인슈타인은 흡족해 했다. 지금이야 아니지만 예전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도 ‘먹고 대학생’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여진 시절이 있었는데...
커피와 담배를 입에 달고 산 아인슈타인은 아직 어린나인데도 치아가 누렇게 변할 정도였다. 바이올린 역시 그의 대학생활을 풍요롭게 해준 낭만적인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격정적인 스타일의 아인슈타인은 길을 가다가도 모차르트 소나타 연주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그 집 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간 뒤 자신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함께하는 ‘끼’를 발휘했다.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감히 따라하기 어려운 일들을 그는 태연스럽게 해냈다. 그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매력이었다. 이런 매력 덕분에 툭하면 방 열쇠를 잃어버리곤 했지만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냥 너그럽게 웃었다. 아인슈타인은 하숙집 여주인들과 딸들을 위해 모차르트를 자주 연주했다.
물리학 토론회 모임에서는 장엄한 분위기의 헨델을 연주했고, 호젓한 분위기에서는 감미로운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이러니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가끔 취리히 호수에서 요트를 타기도 했다. 이 요트 타기는 인생 후반기까지 계속 이어지는 ‘종신 취미’로 자리했다.
태어난 별자리가 ‘물고기자리’인 아인슈타인에겐 어쩌면 물을 가까이 하는 요트타기가 그의 체질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종종 “아무 생각 없이 강물 위에 떠있는 흔들리는 요트 안에 있을 때 참 행복하다”는 말을 했다. 요트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물리학 이론의 뼈대를 구축해나가곤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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