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이야기15- 슈바벤의 여인 VS 세르비아의 여인
결혼문제가 순탄치 않다는 걸 아인슈타인의 적나라한 ‘중계방송 식’편지를 통해 전해들은 밀레바는 자신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 헬레네를 통해 이미 시어머니 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소리를 듣고 상처를 받았기에 더 가슴이 쓰렸다.
모든 사람의 축복을 독차지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제일 가까운 혈육과 친구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백안시당하고 경원시하는 존재가 된 자신의 운명에 밀레바는 한없이 슬프고도 불안했다. 아인슈타인을 만나기 전까지 밀레바는 이런 한심한 감정상태에 빠져본 적이 없기에 그 상처를 극복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게다가 작년까지만해도 그렇게나 자주 편지를 보내오던 아인슈타인이 답장보내는데 늦장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밀레바는 서서히 다가오는 불행의 그림자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 사랑 조니, 당신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하지만 당신은 나의 작은 입맞춤을 받을 수없는 아주 먼 곳에 있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좋아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즉시 대답해주세요. 당신의 돌리가 천 번의 입맞춤을 보내며”
‘키스로 봉한 편지’를 보내는 연인의 절박한 심정이 애틋했는지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용감무쌍한 슈바벤 출신 여인은 두렵지 않아요. 부모님의 완고한 고집보다 내손가락 하나의 고집이 더 세다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내 사랑, 당신입니다. ”라는 허풍 같은 위로의 답장을 보내주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슈바벤의 여인이라고 칭한 비유법에서 아인슈타인이 어머니에게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슈바벤 기질’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자신도 슈바벤의 아들이 아닌가. 그렇게 따지자면 세르비아의 여인이야 그 강인함에서 누구에게 뒤지는 법은 없는데...
그렇다면 슈바벤의 아들을 두고 격돌하게 된 슈바벤과 세르비아의 여전사들의 싸움은 과연 누가 승리할지...그러나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 게다가 제 눈을 제가 찌른다 해도 사랑의 화살로 찌르겠다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슈바벤의 여인은 아들의 사랑에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민한 그 아들은 일찌감치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아들의 선택인데 그걸 무슨 수로 막겠는가. 제 풀에 지치기를 바라는 수밖에 라는 심정으로 슈바벤 여인은 애초에 포기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비단 슈바벤의 부모뿐이랴. 자식이 자기 갈 길을 가겠다고 고집 부리는데 그걸 이겨볼 재간이 있는 부모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저렇게 물불 안 가리고 난리치고 있는 저 ‘불타는 청춘’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서리 맞은 풀잎처럼 시들해지면서 제 풀에 지쳐갔다는 점이다. 만고불변의 진리인 시간 앞에 약해지는 그 ‘연애의 진실’은 연인을 위해 그토록 기세등등하게 부모에게 대항하던 천재 아인슈타인에게도 서서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 두 연인의 편지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연애초기로부터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렇게도 뜨겁던 아인슈타인의 열정이 슬며시 식어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아무리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 미만이라지만 그 가혹한 ‘연애의 법칙’이 100년 전 사랑에도 적용될 줄이야.
아무튼 ‘약한 자 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셰익스피어의 ‘저주’를 굳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사랑이 세월을 타고 흘러가다보면 약자인 여자의 입장은 너무 안쓰럽게 변모한다. 다부지고 똑똑했던 동유럽의 한 엘리트 여성이 ‘세계적인 천재’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운명적으로 받아야 할 ‘사랑의 상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단계다.
이제 겨우 결혼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첫 단계인데도 저렇게 초라한 저자세로 굽실거려야 할 줄을 밀레바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녀의 서러움은 무슨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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