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기둥으로 가업잇기를 거부한 아인슈타인
밀레바는 친구 헬레네에게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헬레네는 아인슈타인 어머니가 밀레바를 싫어한다는 ‘비보’를 전해주었던 바로 그 친구이다. 자존심 강한 밀레바가 그런 친구에게 왜 하소연을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쨌든 그녀는 헬레네에게 이러다 자기가 먼저 죽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소리까지 쏟아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인슈타인의 자신을 향한 ‘불같은 사랑’을 자랑하면서 “그가 날 사랑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아무 바라는 게 없단다”라는 말로 자신들의 사랑을 은근히 과시했다. 바로 이런 점이 밀레바의 친구들이 그녀 곁을 떠나게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친구지간이라 해도 ‘깨소금 냄새가 진동하는 사랑’을 자랑하는 꼴을 봐주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순진한 밀레바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 친구들 사이에선 그런 식의 ‘사랑의 주인공’행세를 하는 여성에 대해선 ‘재수 없는 공주병 환자’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랑’에 관한한 아무리 진한 우정의 친구라도 왠지 너그럽게 봐주기 어려운 게 동서고금의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돌아 다니는 거다. 한마디로 남이 하는 ‘사랑’에는 눈꼴이 시다는 말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아인슈타인도 헬레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와는 달리 “나는 그녀와 언제나 즐겁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라고 그 특유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어쩌면 그의 그런 ‘근거 없는 무한한 자신감’이야말로 그의 성공을 이끌어냈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지자 아인슈타인은 일단 밀라노로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 헤르만은 돌아온 아들에게 ‘가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가족과 함께 밀라노로 이사 온 베소와 거의 매일 저녁 물리학 토론을 벌였다. 기술 연구원으로 일하던 베소는 그에게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묻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딜 가나 물리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가 물리학으로 대성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꾸준히, 인내에 인내를 더하면서 외길로 생각해온 자세가 바로 성공의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그냥 어느 날 아침 깨보니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식의 ‘벼락 성공’은 적어도 물리학 같은 고도의 학문분야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고향에 돌아온 8월 첫째주 밀레바가 보내온 편지 한통은 그와 가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밀레바는 갑상선종에 걸렸다고 전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장애를 가진 여성인 게 영 맘에 걸렸던 부모는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와의 결혼에 대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연인이 보내온 편지내용을 가족들에게 선뜻 말해버린 아인슈타인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그냥 조용히 혼자 삭혀야 할 문제를 미주알고주알 가족에게 말하다 보니 그의 가족들은(부모와 여동생) 아인슈타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 가족의 기둥으로, 명문 대학까지 나온 아들이 취직도 못한데다 장애인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은 평범한 가정에선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인슈타인이 아버지의 ‘가업’을 더 이상 배우기 싫다고 말하자 가족들은 또 놀라면서 비통해 했다. 모두들 아인슈타인만 바라보고 있는 형편이라 그는 상당한 중압감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안의 기둥인 장남, 혹은 아들들의 진로가 그 가정의 행복을 좌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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