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20>영원한 맨발의 청춘같은 아인슈타인의 자신감
그러나 갑상선종에 걸린 밀레바는 고향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취리히로 가게 되면 여동생 조르카를 데려갈 계획이라는 답신을 겨우 보내왔다. 그 와중에 아인슈타인은 밀레바가 자신의 양말을 짤 수 있도록 자신의 발 모양을 본떠 보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함께 과학을 연구하고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고 언제나 학생처럼 살아가자고 속삭였다.
아인슈타인의 성공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이 ‘학생처럼’이었다고 본다. 학생정신! 늘 배우고 탐구하는 정신이야말로 그에게 상대성 이론이라는 물리학 이론의 금자탑을 쌓게 한 근본정신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내외적 환경이 아무리 견디기 어려운 역경이더라도 그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연인에게 우리 ‘학생정신으로 살자!’라는 철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철없음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을 아인슈타인답게 만든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공 키워드였을 것이다. 일찍이 철이 들었다면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계의 대부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이런 연서를 받고 가까스로 기운을 추스릴 수 있었다. “나의 반쪽이며 나처럼 강하고 독립적인 당신을 발견한 나는 진정한 행운아요. 당신 외에는 누구와 있어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취리히로 돌아온 아인슈타인은 모든 걸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했지만 그를 에워싼 ‘취업 전선’은 영 냉랭하기만 했다. 천하에 두려울 것 없는 아인슈타인의 자신감이라도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선 힘을 쓰기가 어려웠다.
1900년 12월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출판되기로 결정돼 그들은 잠시 기뻐했다. 밀레바는 “당신 논문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 논문은 보통 논문이 아니에요.”라며 축하편지를 보냈다. 이듬해 3월 아인슈타인의 논문은 독일의 저명 물리학 잡지인 ‘물리학 연감’에 실렸다. 물리학계에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첫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논문 출판에 힘을 얻은 아인슈타인은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해부터 이탈리아 끝까지 모든 대학의 교수들은 내가 조교자리를 그들에게 부탁했다는 사실에 황송해 할 것이다."라며 예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다시한번 만천하에 과시했다. 만천하라고 해봤자 밀레바에게 보내는 편지지 안이 고작이었지만 어쨌거나 언제나 ‘맨발의 청춘’처럼 우리의 아인슈타인은 일단은 큰 소리부터 쳐대는 것이 그만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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