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
“고독과 소외감이 작품 활동을 하게한 원동력입니다.”
이런 멘트는 웬만한 예술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말하고 싶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건 어쩌면 비단 예술가뿐이 아니겠지요. 팍팍한 인생살이를 해야 하는 우리네 서민들은 누구라도 그런 말을 하고 싶어할 겁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아마 대기업 회장님이나 최고로 성공한 사람들이라도 이 ‘고독과 소외감’은 피해가기 어려울 겁니다.
누군가는 그랬죠, 사람이니까 외로운 거라고.
서정주 시인도 그랬다죠,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시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 정확한 시세계를 평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바람’이라는 건 결국 고독과 소외감이 구성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황야에서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거, 그 것 자체가 고독한 일이겠지요. 그런 고독함과 소외감이라는 ‘바람’에 단련되면서 사람은 성장해나가는 거겠지요.
모두가 고독한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예술가들은 그걸 원료삼아 ‘작품활동’을 하는 걸 겁니다.
일본인 일러스트 작가 요시토모 나라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요시토모 나라와의 여행’에서
주인공인 요시토모 나라는 그렇게 말합니다.
고독과 소외감이 작품 활동에 몰입하게 했다고.
영화는 93분 동안 세계적 일러스트 작가로 명성을 얻은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 활동 과정과 그가 서울 뉴욕 런던 방콕을 돌며 전시회와 팬미팅을 하는 모습을 그야말로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떤 특별한 사건도 없이 편안하지만 예술가의 열정적인 영혼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입니다.
요시토모 나라라는 40대 후반의 한 일본인 예술가가 지인들과 만나 ‘초심자의 마음’을 잃지 않고 싶어하는 간절한 심정을 이야기 하거나 자신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 서울 남대문 근처 로댕 갤러리에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모습, 서울 팬미팅에서 일곱 살짜리 앙증맞은 소녀에게 저자사인을 해주는 모습과, 세희라는 이름의 그 소녀가 슬플 때는 아저씨 이름(요시토모 나라)을 부른다는 어찌 보면 참 신기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세상에, 일곱 살짜리 대한민국 꼬마소녀가 슬픈 감정이 생길 때 일본 화가의 이름을 생각해낸다는 것, 그 자체가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림에 천부적 재능을 갖고 있는 듯한 소녀를 보면서 요시토모 나라는 수많은 팬들 중에 자신의 그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그 소녀뿐 인 것같다고 말합니다. 세희 엄마가 이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나레이션을 듣다보면 뭉클해집니다.
요시토모 나라는 작업실 벽면에 세희가 준 그림엽서를 걸어놓고 새로운 작품활동에 몰두합니다. 그 엽서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세희가 아저씨에게 쓴 감사 말이 적혀 있습니다.
순수한 영혼의 소녀와의 교감을 통해 요시토모 나라는 작품활동에 힘을 얻은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의 북쪽 아오모리현에서 태어난 작가는 고향의 미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답답한 일본을 탈출’하고 싶어 무작정 머나먼 독일땅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에뜨랑제로 보내면서 일본에서와는 또 다른 고독과 소외감 속에 작품활동을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온 일본, 그는 여전히 혼자 작업을 하고 있지만 어느덧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됩니다.
영화는 그가 2006년 7월 고향 히로사키 시에서 ‘A to Z’이라는 전시회를 준비하는 틈틈이 서울, 뉴욕, 런던, 방콕을 돌며 개인전을 여는 모습을 비쳐줍니다.
젊은 시절엔 상당한 꽃미남 풍(風)이었을 요시토모 나라는 영화를 찍는 시점인 2006년무렵 현재 독신남으로 나옵니다. 서울의 팬 미팅 현장에서 서울아가씨들은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보다 “왜 독신으로 지내시냐”는 걸 집중적으로 묻고, 작가는 수줍어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런 그의 일상은 자고 깨면 오로지 작품에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작업실이나 살림집은 ‘깔끔한 주부의 손길’이 닿지 않아선지 너절한 분위기입니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야말로 예술가들이 안주할 수 있는 ‘둥지의 편안함’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늘 혼자 작업해온 그는 ‘A to Z’ 전시회를 위해 집단창작 그룹인 Graf의 멤버들과 공동 작업을 하게 됩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예전 자신의 작품에 주조를 이뤘던 시니컬한 소녀풍에서 벗어나 온유한 표정의 소녀들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록음악을 즐겨듣는 이 화가를 위해 화면에는 록 음악들이 자주 나옵니다. 거기에 일본의 인기여배우 미야자키 아오이의 매력적인 나레이션이 단조롭기 쉬운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윤활유 노릇을 합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한 사람의 예술가와 무언의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듭니다. 어느 새 끝난 짧은 여행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예술가와 함께하는 한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도 듭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소설도 떠올랐습니다. 모처럼 영혼의 비타민을 섭취한 기분입니다.
젊은 예술가 지망생 여러분에게 강추합니다.!
********************************************************************************
* 2008년 올 한해 저희 스카이뷰커뮤니케이션즈 블로그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에도 계속 여러분의 따스한 방문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굿’바이>와 마지막 세안 (0) | 2009.02.20 |
---|---|
까다로운 관객이 본 ‘흥행참패 영화’ ‘흥행대박 영화’ 과속스캔들vs (0) | 2009.01.30 |
앤티크-서양골동양과자점: 썩 맛있지는 않은 영화 (0) | 2008.11.21 |
도쿄! 봉준호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 감독의 흔들리는 시선 (0) | 2008.11.12 |
섹스앤더시티 보다 훨씬 공감가는 브로큰 잉글리쉬 (0) | 2008.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