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까다로운 관객이 본 ‘흥행참패 영화’ ‘흥행대박 영화’ 과속스캔들vs

스카이뷰2 2009. 1. 30. 10:10

 

 

 

 

   까다로운 관객이 본  ‘흥행참패 영화’와 ‘흥행대박 영화’ 비교

  버터플라이 VS 과속스캔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이 유명한 경제이론은 비단 경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종종 이 이론은 위력을 발휘하는 것같다. 그래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세상의 통속적 원리라고 여기곤 한다.

 

영화에도 이런 ‘안타까운 이론’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좋은 영화는 ‘대박’이 나야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영화가 묻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아니 이런 영화에 어떻게 수백만 명이 몰려올까라고 의아해하는 영화들이 ‘한국 흥행영화 베스트 ’에 드는 경우도 많았다.

 

아주 오래 전 한 선배가 “어떤 영화에 100만 명이 들었다면 그 영화는 무조건 봐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야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알수 있다는 게 그 선배의 지론이었다.

그 때만해도 개봉관이 많지 않고 멀티플렉스극장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대여서 100만명!이 들었다면 대단한 영화로 쳐줬었다.

 

이제는 일곱 배가 늘어난 700만명이 들어야 ‘대박영화’축에 속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요샌 ‘흥행대박의 커트라인’이 700만 명인 듯하다.

700만 명 이상의 관객동원한 한국 역대 영화들을 대부분  봤지만 볼 때마다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최다 관객 동원을 기록했다는 ‘괴물’이나 2위를 차지한 ‘왕의 남자’, 한국영화중 최초로 800만을 동원해 화제가 되었던 ‘친구’, 신인감독이 기대하지 않고 만들었다가 대박 터졌다는 ‘웰컴 투 동막골’ 등은 보긴 봤지만 선뜻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 ‘화려한 휴가’ 같은 방화는 아무리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지만 본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서도 끔찍한 생각이 들어 전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지난 연말부터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매스컴을 탔던 ‘과속 스캔들’도 이 ‘700만 명 고지’를 언제 돌파하느냐를 놓고 매스컴에서 ‘중계방송’하듯 소식을 내보냈다. 사실 우리 영화 ‘과속스캔들’은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버터플라이를 보고나서야 아무래도 두 영화를 비교해 보려면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볼까말까 망설이고 뜸을 들이고 있는데 ‘관객동원 700만을 곧 돌파’한다는 뉴스를 듣고 어렵사리 티켓을 끊었다. (내가 보고 난 뒤 그날 밤 TV뉴스에선  이 영화가 7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의 관객기록 갱신에 일조를 한 셈이다.^^)

아무튼 ‘과속스캔들’을 어렵사리 본 것은 감독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700만 위업을 달성한 대박영화’여서 봐준 것이다.

 

이렇게 ‘세 과시’에 편승한 흥행대박 영화 ‘과속스캔들’에 비해 관객동원에 철저히 실패한 ‘버터플라이’는 비록 한국관객에겐 외면당했지만 내 취향으론 ‘과속스캔들’에 비해 ‘울림’이 있는 영화 같다.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소재인 ‘결손 가정어린이들’이 등장하는 것은 ‘과속’이나 ‘버터플라이’나 같지만 감독의 ‘시선’과 ‘접근 방식’에선 천양지차가 나는 두 영화를 연거푸 보고나서 ‘대중이 원하는바’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어느 영화가 수준이 높다 낮다 라고 단순비교해 말하는 건 어렵사리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 대해 실례가 되는 일이다. 단지 두 영화는 감독들이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주제를 말하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 선명하게 대비가 되는 영화들이었다는 건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사대주의자나 외국문화 맹목추수주의자는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나름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곤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 영화보다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잘 만든 영화’를 더 많이 봐왔다.

한국영화가 별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자연스럽고 디테일에 강한 영화들을 찾다보니 우리 영화는 그런 면에선 다소 처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본 프랑스 영화 ‘버터플라이’도 보기 전부터 나의 알량한 ‘취향’과 꼭 맞을 거라는 ‘행복한 확신’이 들었고 예상대로 영화는 나를 행복한 관객으로 만들어주었다.

여덟 살짜리 소녀와 일흔이 훨씬 넘은 할아버지가 ‘환상의 나비 이자벨’을 찾아 떠나는 일종의 로드무비 스타일의 버터플라이는 83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아쉬웠다.

 

크레디트 자막과 함께 흘러나온 ‘엔딩 송’은 집에 와서 듣고 또 들을 정도로 정겨웠다. 어린아이들이나 여성용 언어로 정평이 나있는 프랑스어의 귀에 착착 감기는 매력적인 소리는 그 언어의 뜻을 잘 모르더라도 ‘막연히 좋다’는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앙증맞은 목소리의 꼬마숙녀가 호기심 가득 안고 노래 부르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럽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은 뽀뽀해”라고 묻거나 “왜 바다는 썰물이 되는 거야” “왜 해님은 사라져” “왜 불은 나무를 태워” “왜 토끼와 거북이는 경주를 해” “왜 악마와 하느님이 있어” 꼬마의 이런 질문에 할아버지의 대답이 걸작이다. “바다의 썰물은 사람들이 앙콜을 요청하게 하려고” “해님은 다른 쪽에 나타나려고 숨는 거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되기 위해 악마와 하느님이 계시는 거야”  

 

이웃집 할아버지와 편모가정의 소녀가 나비를 찾아 7박8일간 알프스 쪽 아름다운 산과 들을 함께 걸어가는 것을 상상해 보시라. 거기에 결손가정의 어린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꽤 조숙하면서도 아직 어린애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은 찡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열일곱에 엄마가 된 젊은 미혼모 슬하에서 꼬마는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을 흥얼거리며 ‘거대한 가수’라고 말하거나 자기는 개띠의 물병자리로 금주의 운세를 본다고 종알대기도 한다. 

주근깨 가득한 이 꼬마배우의 연기는 곁에 있다면 꼬옥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예뻤다.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어린아이의 뜻을 무언중에 배려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할아버지 배우의 연기도 대단했다. 2007년 타계한 미셸 세로라는 프랑스의 ‘국민배우’라고 한다. 남의 나라 배우지만 그런 칭호에 선뜻 수긍이 간다. 요샌 공연히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영화가 끝나갈 즈음 할아버지는 꼬마에게 엄마의 이름이 무어냐고 슬쩍 묻는다. 엄마의 이름은 이자벨! 그들이 찾아 헤맸던 환상의 나비의 이름도 이자벨! 사랑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집에 있었다는 걸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마치 동화 ‘파랑새’를 연상시키는 그런 영화다. 

그만큼 영화는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너무나 만족스러운 영화’였다는 외국신문의 영화평론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과속 스캔들’은 매끄러운 화면과 요즘 시류에 잘 맞추려는 듯한 감독의 ‘재능’이 돋보였다. 적어도 ‘촌스런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진한 울림’을 주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냥 겉만 화려한 모양새를 갖췄지 진솔한 감동을 느끼기엔 다소 부족했다. 어쩌면 그런 코미디류에서 그런 걸 기대한다는 것이 오히려 촌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과속스캔들 류의 ‘명절개봉 코미디 영화’는 거의 언제나 관객동원엔 성공했지만 ‘수준미달’인 경우가 많았다. 한 시즌 정도 지난 뒤 ‘명절 특선 TV영화’로 집에서 공짜로 보면서까지 유치하다고 툴툴 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게 ‘명절 개봉 코미디 영화’의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꽤 까다로운 관객’인 나로선 이번 설 연휴에 본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공부할 수 있었다. 대중은 너무 순수하고 ‘철학적인 대사’보다는 그냥 웃어넘길 수 있고 심각한 장면에서도 억지로웃기려고 하는 ‘쉬운 영화’쪽을 선호하는 것 같다.

 

강형철이라는 ‘신원미상’의 젊은 신인 감독이 각본도 직접 써서 만든 이 코미디 영화는 비교적 깔끔한 화면에 한국영화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칙칙함은 비교적 적어서 그런대로 볼 만 했다.(인터넷 검색창에 감독의 이름을 검색해도 그에 대한 자료는 일절 없었다.)

 

아무튼 이 ‘700만 이상 관객동원’에 성공한 이른바 ‘대박영화’치고 이번 ‘과속 스캔들’은 내가 싫어하는 ‘폭력장면’은 거의 없어서 그나마 볼만했지만 우리 영화에서 늘상 문제로 지적되는 ‘오버 액션’은 여전했다.

억지로 웃기려 들거나 일부러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려고 하는 상투적 화면은 영화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걸 감독들은 왜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과속스캔들’은 거의 가족동반관람 영화의 분위기였다. 극장 안은 거의 일가족이 우르르 몰려왔는지 와글와글했다.  ‘과속스캔들’은 예전에 히트했던 ‘라디오 스타’와 ‘미녀는 괴로워’의 분위기를 적절히 섞어놓은 듯해 ‘흥행예감’은 어렵지 않은 영화였다. 더구나 여배우 박보영의 뛰어난 노래솜씨도 흥행에 한 몫을 했다고 본다.

 

노래 잘 부르는 여배우의 활약은 영화의 흥행을 웬만큼 보장해준다는 게 흥행공식 중의 하나다.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흥청거리는 노랫가락이 일조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고속스캔들’에는 이런저런 등장인물과 통속적인 양념들이 듬뿍 뿌려져 요란스러운 분위기까지 뿜어내고 있다.

 

그에 비해 ‘버터플라이’는 아주 담백한 맛이다. 게다가 관객 동원에도 완패했다. 겨우 예닐곱 명의 관객만이 구경한 그야말로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관람한 영화여서 그 영화를 수입배급한 회사의 경영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버터플라이는 그래도 프랑스에선 200만 이상의 관객이 든 흥행작이었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나 생텍쥐페리의 아름다운 단편소설 같은 분위기의 영화 ‘버터플라이’는 올 한 해 동안 두고두고 기억해 줄만한 ‘수준 있는 영화 목록’에 넣고 싶다. ‘과속 스캔들’은 그런대로 웬만큼은 만든 영화이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버터플라이와 과속스캔들은 결국 이런 점에서 차이가 나는 영화들이다. 

 

그래도 신인감독으로 대박영화대열에 당당히 들어선 강형철 감독은 앞으로 한국영화계에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보여줄 재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