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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4>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킨 신의 직장-스위스 특허국

스카이뷰2 2009. 1. 26. 10:43

 

 

 상대성 이론을 탄생시킨 신의 직장-스위스 특허국

 

아인슈타인은 이런 기쁜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연인 밀레바에게 즉시 알렸다. “한꺼번에 좋은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지? 특허국 일은 나에게 꼭 맞는 일이야.”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직감이나 예감 같은 것을 갖게 마련이다. 그런 예감은 틀릴 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맞아떨어진다.

 

아인슈타인이 특허국에 취직하면 무언가 자신에게 엄청나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한 것은 고스란히 적중했다. 그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세계 물리학 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던 ‘위대한 논문’ 3편을 쓰게 된 것이다. 다소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특허국이라는 일터가 그로 하여금 ‘상대성 이론’을 집대성할 수 있게 해준 ‘신(神)의 직장’이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손의 떡’을 다 먹기로 했다. 특허국은 물론이고 임시교사 자리도 맡기로 했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모처럼의 행운을 연인과 함께 오붓하게 즐기고 싶었다. 밀레바에게 코모 호수에서 며칠 함께 있자고 말했다. 그동안 일자리 알아보려고 날카로워졌던 신경 탓에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인색하게 굴었다. ‘못난 애인’탓에 덩달아 마음 고생한 밀레바에게 아인슈타인은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코모 호수는 알프스 산자락에선 최고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당시 제일 좋은 휴양지였다. “나를 만나러  코모호수로 꼭 와줘요. 나의 사랑스런 마녀야. 나의 걱정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오. 내가 얼마나 밝고 유쾌한 사람으로 변했는지 보여주고 싶어. 내가 특허국에 나가게 되면 당신을 나의 작은 과학자로 임명할거야. 꼭 코모 호수로 와줘요.”

 

밀레바는 마음 같아선 금세 코모 호수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장고 끝’에 사양했다. 딸에 대해 기대가 대단했던 아버지로부터 그녀의 부진한 성적에 대한 질책과 함께, 딸을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한 원인제공자로 아인슈타인을 지목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인 편지를 받은 탓에 의기소침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 기분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은 이제 방안에 틀어박혀 오로지 공부만 하겠다면서 코모 호수에 가거들랑 그 곳에 핀 꽃이나 몇 송이 보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말을 입증하듯 그녀는 편지를 보낸 다음날 다시 마음을 바꿔 함께 코모호수로 가겠다는 편지를 다시 보냈다. 이런 게 바로 운명의 갈림길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코모 호수에 가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또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코모에 동행함으로써 그녀 인생에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운명을 무슨 도리로 해 보겠는가. 그저 순응할 수밖에.

 

어쨌든 나중에 ‘운명의 독배’를 마실지언정 즐거웠던 그 순간은 엄연히 진실한 사랑의 순간이었기에 밀레바는 친구에게 “그 여행은 너무도 아름다워 모든 괴로움과 슬픔을 다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인생 뭐 별 거 있나, 순간순간을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면 되는 것 아니겠나.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야 두 연인의 그때 코모 호수로의 여행은 그리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젊은 그들’이 그동안 겪었던 온갖 시름을 잠시 내려놓고 모처럼 찾아온 휴식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면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인 것이다. 그러나 그 즐거움엔 혹독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가 잉태된 것이다.

 

바다같이 넓은 코모호수는 이탈리아 북부를 감싸 안고 있는 47km나 되는 굉장한 호수다. 호수의 푸르른 물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호수 뒤의 웅장한 배경으로 서있는 알프스의 눈 덮인 봉우리들과 새하얀 석회암들의 날씬한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대자연의 위대함을 각인시켜준다. 유럽에서 가장 깊은 호수다.

 

온화한 공기는 그곳을 로마시대 이래 그때까지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로 만들었다. 지금도 이탈리아 북부 관광여행에선 필수 코스로 꼽힌다. 5월 5일 아침, 젊은 두 연인은 두 손을 꼭 잡고 호수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다. 이제 싸울 일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은 온전히 자신들의 것 같다는 아름다운 착각 속에  그들은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긴 해도 초여름 싱그러운 아침, 멋진 이국적 풍경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