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21세기 영재특강
아마 2009년 교육열에 불타는 대한민국의 젊은 엄마들 앞에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영재 특강’을 한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아래는 우리 블로그가 독창적으로(?) 간추린 아인슈타인의 <21세기 형 아인슈타인 영재특강>이다.
“당신의 자녀를 아인슈타인처럼 키우고 싶으세요? 그럼 일단 그 아이에게 무한대의 독서를 시키세요. 그리고 아이의 정신을 구속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다 나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 우리 엄마도 내가 노벨상을 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셨거든요. 하하하! 그리고 바이올린을 배워주세요. 극성쟁이 우리 엄마 덕분에 억지로 배운 바이올린이었지만 나중엔 걔처럼 날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모두들 나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나처럼 되는 것이 꼭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도 워낙 파란만장했거든요.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나는 그저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편지 쓰는 것에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물리학의 세계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단순한 게 아름다운 것이지요. 아무튼 내 인생에서 아름다운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편지쓰기는 그 자체로 내게 대단한 즐거움을 선사했지요. 자기 자신이 즐거워야 세상도 즐겁습니다. 하하하!”
여행을 다녀온 뒤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에서 25km떨어진 빈터투어에서 약속했던 임시교사직을 맡아 학생들에게 기하학을 가르쳤다. 취리히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인 그곳에 아인슈타인은 방을 하나 얻어 지냈다. 매주 일요일엔 기차 타고 취리히로 와 밀레바를 만나고 돌아갔다. 코모 호수로 여행을 다녀온 후 두 사람은 별 다툼 없이 행복한 연인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에게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될 거예요”라는 고백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글쎄, 좀 전근대적인 연애법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속마음 보여주기’는 과히 바람직한 대처법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고백에 남자라는 존재들은 감사해하기보다는 무의식에서나마 오히려 조금은 뒤로 빼고 싶은 심보가 있는 법이다. 세르비아 촌 아가씨 밀레바는 나이는 아인슈타인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남자를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월급을 받게 된다는 안정감이 두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씀씀이를 갖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나 보다.
밀레바는 졸업시험 준비를 위해 다시 공과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지도교수인 베버와는 아인슈타인의 영향도 있어선지 별로 좋은 사제관계가 아니었다. 밀레바는 너무 즐겁게 보낸 여행 탓인지 평상심을 되찾고 공부에 전념하기가 꽤나 힘들었다. 게다가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니 학문에 대한 집중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느 일요일,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에게 임신했다고 말했다. 당시 아인슈타인의 반응은 문헌에 나와 있진 않지만 훗날 이 아기가 태어났을 때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요즘 유행어로 ‘업 된’기분이었을 것 같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예삿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어머니가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코모 호수에서의 ‘아름다운 결실’에 대해 마냥 기뻐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100년 전 미혼 남녀가 부모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미혼부모라는 존재가 거의 없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
1901년 취리히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신생아의 12퍼센트가 사생아였다. 미혼남녀 10명중 1명 이상은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얻었다는 얘기다. 특히 밀레바의 출신지인 세르비아인의 미혼모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 밀레바가 자란 헝가리 남부에서는 3명 중 1명이 사생아였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 당시 세간에는 세르비아 계의 여성들이 자유분방하다는 평도 돌았다. 아인슈타인의 모친이 밀레바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녀가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점도 큰 몫을 했다. 그에 비해 유대인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수가 적은 민족이었다. 그들은 특히 사생아 출산 비율이 다른 민족들에 비해 월등히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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