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연재 27-아인슈타인 이야기>부모의 결사적인 결혼반대

스카이뷰2 2009. 2. 12. 20:45

 

     

          부모의 결사적인 결혼반대

 

이런 당시의 분위기에서 볼 때 밀레바의 ‘혼전임신’은 그렇게 크게 매도당할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결혼을 결사반대하고 있는 부모입장에서 볼 땐 그렇잖아도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감이 미운 짓만 골라하는 꼴이었다.

 

밀레바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귀하게 키운 맏딸이 공부로 출세하길 원했던 그녀의 아버지로선 딸의 임신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더구나 아직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처지인 딸이 홀몸도 아닌 채 그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선 이미 각종 다양한 산아제한 방법이 널리 이용되고 있었다. 콘돔 한 다스는 일반 노동자의 반나절 임금인 5마르크 정도였다. 낙태수술은 30마르크에서 150 마르크였다. 취리히는 산아제한 산업의 중심지였다. 임신 중절약을 우편으로 주문판매하는 사업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밀레바가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자 아인슈타인은 이런 편지를 보내 그녀를 안심시켰다. 매사를 쉽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그다웠다. “사랑하는 나의 작은 인형, 걱정하지 마세요. 행복한 일이잖아.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당신 곁을 지켜줄 거야. 언제까지나 당신은 나의 사랑하는 착한 여인입니다. 모든 게 다 잘 되어갈 거야. 아이는 어때? 그런데 나의 열전기 이론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아인슈타인은 늘 그래왔듯이 학문에 더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현실생활에서 골치 아픈 문제들이 발생하면 물리학이라는 크나큰 피신처로 달려가 숨어버렸다. 오로지 학문과 자기 자신만이 있는 그 호젓한 분위기가 그를 행복하게 해줬다. 이런 점은 일반인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지만 어렴풋이나마 알 수도 있을 것 같은 경지다. 

 

전문 학자들에겐 어림없는 비유겠지만 일반인들도 현실이 고달플 땐 영화관엘 가거나 도박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카지노로 직행해 현실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본다. 자기라는 존재를 아예 놓아버리고 제3의 세계로 떠나 그곳에서 파묻혀 살아버리는 그 경지! 그게 좋다는 걸 알지만 일반인들 중엔 그런 경지로 들어가는 걸 ‘책임회피’라고 느끼기에 감히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하의 아인슈타인은 그냥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온 사람이었기에 학문의 세계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은 그 와중에도 경황없는 밀레바에게 자신의 연구를 보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는 밀레바가 하이델베르크 시절 공부를 배웠던 스승 필립 레나르트가 <물리학 연감>에 새로 발표한 논문에 대해 긴 토론 편지를 보냈다. 남은 지금 임신상태로 극도로 예민해졌건만 아인슈타인은 그런 걸 헤아릴 줄 아는 능력이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이 훌륭한 논문을 보고 너무나 큰 행복과  기쁨에 사로잡혀서 반드시 당신에게 알려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 모든 상황을 행복한 결말로 이끌 겁니다. 걱정 말아요. 내 팔에 안긴 사람을 슬프게 하진 않을 겁니다.”그나마 연인의 마음을 다독이려 몇 마디 해준 것이 밀레바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평소 존경하던 파울 드루데 교수에게 자신의 천재성이 담겨있는 새로운 논문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편지도 보냈다. 자기의 논문에 확신을 가진 아인슈타인은 드루데 교수가 반드시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교수는 아인슈타인이 원하는 답신은 보내오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는 이런 인간들에겐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겠다면서 자력으로 반드시 이론을 세워 일으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직장을 구하게 되었으니 당신과 즉시 결혼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당신에게 돌을 던지지 못할 거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할 것이오”

하지만 임신부입장에서 밀레바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우울해지기 쉬운 성격의 그녀는 침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나쁘게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지금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라고 손가락질 당할게 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 괴로웠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학문에 대한 열정과 욕구가 워낙 강했기에 ‘한 아이의 엄마’로 인생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직 어떤 친구에게도 임신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밀레바는 7월에 치른 졸업시험에 또 낙방했다. 베버 교수와의 관계도 더 악화되었다. 그녀는 앞으로는 베버에게 지도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녀가 그렇게 된 데에는 아인슈타인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연인이라는 사람이 그다지도 싫어하는 교수인데 그녀도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임신 초기로 몸 추스르기에도 버거웠으니 좋은 시험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다. 이렇게 해서 교사가 되려던 그녀의 희망은 그로써 완전히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