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고 뭐고 다 팽개쳐버리고....
그해 10월,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밀레바의 부모에게 아주 격렬한 비난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세르비아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굴욕적인 내용의 편지였다. 밀레바는 자신의 잘못으로
부모에게 그런 치욕을 안겨드린다는 것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한탄했듯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헬레네에게 그녀는 이런 하소연을 적어 보냈다. “ 그 부인은 내 인생만이 아니라 자기 아들의 인생까지 파멸시키려 작심한 듯하구나. 그렇게도 비정하고 잔혹한 악인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어.”
아무리 딸 가진 죄인이라지만 그런 수모를 당하자 밀레바의 부모도 받은 만큼 되돌려 주는 보복의 답신을 띄웠다. 이제 양가는 도저히 한 하늘아래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뭐니뭐니해도 산달이 다가와 몸이 무거워진 밀레바는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밀레바의 부모는 아인슈타인의 부모에겐 다신 안 볼 사람들처럼 돌아서버렸지만 장차 사위가 될 아인슈타인에겐 그렇게 냉랭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 문제인 만큼 그들의 행복을 최대한 보장해주려는 부모의 마음이 남아 있었던 듯도 하다.
편지소동이 벌어진 며칠 후 밀레바는 아무도 몰래 아인슈타인을 보러 스위스로 다시 돌아왔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인슈타인이 머물고 있는 샤프하우젠이 아닌 그 옆 도시인 슈타인 암 라인으로 갔다.
슈타이너호프 호텔에 투숙한 그녀는 아인슈타인에게 꽃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찾아와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그녀가 읽을 책만 보내고 오지 않았다. 천재의 마음은 아무래도 아기를 가진 연인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심증이 가는 대목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취리히의 유명한 병원 원장인 아우그스테 포렐이 쓴 최면에 관한 책을 보냈다.
밀레바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그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최면의 과정이 인간의 의식을 거칠게 공격한다는 것에 불쾌해 했다.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에게 재차 자신을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돈이 없어서 못가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 때서야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살살 구슬려보는 편지를 다시 보냈다. 이젠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사악한 나의 작은 연인! 일요일에는 틀림없이 나를 놀라게 할 거죠. 당신이 오지 않으면 갑자기 떠나버릴 겁니다. 나는 지금 향수병에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어요. 만약 일요일까지 돈이 안 생긴다면 내가 얼마라도 보내드릴게요.”연인으로 하여금 이렇게까지 애원하도록 만드는 남자는 그렇게 좋은 남자는 아니다. 언젠 밀레바가 없으면 어찌 살아갈지 모르겠다더니....
결국 밀레바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11월 14일 다시 취리히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는 길에 그녀가 탄 기차는 아인슈타인이 있는 샤프하우젠 역에 30분정도 정차한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보기 위해 역으로 나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취리히에서 다시 이틀씩이나 기차를 타고 고향인 머나먼 노비사드로 돌아갔다. 이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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