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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1-아인슈타인 이야기>취직이 되다니...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

스카이뷰2 2009. 3. 9. 02:13

 

 

       취직이 되다니...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

 

1901년 12월 18일 아인슈타인은 베른에 있는 스위스 연방 특허국의 프리드리히 할러 국장으로부터 새 일자리에 지원하라는 ‘복음’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는 엔지니어 제2급 사무원에 정식으로 원서를 접수시켰다.

 

다음날 바로 입사 합격증을 받은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에게 “행복해서 미칠 것 같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또 특유의 자신감이 발동했는지  “우리는 곧 부자가 될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특허국장의 특별 배려로 약간의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며칠 후 그는 샤프하우젠에서 하던 가정교사 자리를 당장 그만두고 특허국이 있는 베른으로 이사갔다. 그는 그때까지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 다소 찜찜했다. 그러나 지도교수인 클라이너 교수가 그의 논문 방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려주었고, 그가 원한다면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이내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는 1000km나 멀리 떨어져 있는 밀레바에게 이런 심경을 털어놓았다. 자신을 둘러싼 여건들이 좋아져선지 그는 오랜만에 다정한 화법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당신이 나의 사랑스런 아내가 된다면 우린 함께 과학연구에 매진할 수 있을 거요. 우리는 늙어도 속물스럽게 변하진 않을 거야. 당신은 언제까지나 나의 마녀이자 부랑아로 남아줘야 하오”

 

만삭의 밀레바를 보며 그녀의 아버지는 아무래도 아기는 당분간은 먼 친척에게 보내야 모두에게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 듯하다. 그는 장래의 사위가 될 사람이 스위스의 특허국 공무원으로 취직이 되었는데 결혼도 안한 젊은 청년이 사생아를 두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는 날에는 공직생활에 좋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02년 1월 27일 밀레바는 아주 심한 난산으로 초산치레를 했다. 출산후 밀레바는 한참동안 운신을 못했다. 그래서 딸의 출산 소식도 아인슈타인에게 직접 알릴 수 없었다. 딸이라서 미리 지어놓은 대로 리제를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아기는 세르비아 정교회의 의식에 따라 영세를 받았다.

 

‘장인’으로부터 아빠가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아인슈타인은 아기를 보러 갈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딸에 대해 무척 궁금해 했다. 밀레바에게 아기의 건강상태라든지 얼굴 생김새 등에 대해 아주 꼬치꼬치 물었다.

 

그의 편지를 보면 젊은 아기 아빠의 왕성한 호기심에 웃음이 날 정도다. “아기는 건강한가.  이렇게 사랑하는 아기를 아직 볼 수조차 없다니. 누가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지. 건강을 회복하면 아기사진을 찍어 보낼 수 있을까. 나도 리제를 같은 아기를 한번쯤 낳아보면 좋겠는데. 아기는 벌써 우는 법은 알고 태어났겠지. 그러나 웃으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거요. 거기에 아주 깊은 진리가 담겨있지.”

 

아기를 직접 한번 낳아보고 싶어 하는 아인슈타인의 엉뚱함에서 그의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창조 본능이 얼핏 느껴진다.

이렇듯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해선 서신교환만 몇 차례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아기를 직접 보러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아기가 성홍열에 걸려 호되게 앓고 있다는 걱정을 끝으로 그 아기의 존재에 대해선 더 이상 아무데서도 언급이 되고 있지 않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리제를이 성홍열에 감염된 것은 흔한 일이긴 하지만 가슴이 아프오. 하루빨리 그 병이 지나갔으면 좋겠네. 아이의 출생 신고는 어떻게 되었지?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거야.” 이게 아기에 대한 그의 마지막 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