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책은 왜 밀봉해서 파는 걸까?
아시아경제 사진제공.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어떤 상품이 잘 팔린다는 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더구나 그 상품이 호황기에도 잘 팔리지 않는다는 서적류라면 세인의 관심사를 끌기에 충분하다.
평소 ‘책’과 관련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나는 자주 책방에 들러 어떤 ‘신상품’이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취미가 있다.
‘쓸 만한 물건’이 보이고 그것이 장사도 잘 되는 ‘효자 상품’이라면 남의 일이라도 든든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요새는 워낙 경제가 얼어붙어 출판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지만 극소수의 책 몇 권은 신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스무살 안팍의 청년들 그룹인 ‘빅뱅’이 펴낸 ‘세상에 너를 소리쳐!’ 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매한지 1주일도 안 돼 10만부! 가 팔렸고, 추가로 6만부를 찍었다고 한다. 대단한 기록이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빅뱅이라는 그룹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텔레비전에 나온 그들을 보니까 요 근래 인기를 끌었던 소위 ‘꽃미남 아이돌 그룹’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청년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그렇게 ‘꽃미남’만은 아닌 듯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청년들 소속사 사장이 “기존의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되는 남성 그룹을 컨셉으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얼굴’은 별로지만 ‘노래’로 승부한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험난한 가요계에 그 청년들을 던져놓았나보다.
어쨌든 노래도 들어보니 나같은 기성세대에게도 비교적 어필하는 감성이 있어보였다.
여하튼 그런 그들이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를 합친 듯한 ‘책’을 냈는데 단시간에 16만부가 팔려나갔다는 소식에 ‘책동네’에 관심 있는 나로선 일단 그들의 ‘작품’을 유심히 봐두고 싶어 책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책방에 진열된 그들의 책은 한결같이 비닐 커버로 ‘밀봉’되어 있어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게 해놓았다.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들리는 서점마다 동일하게 ‘속을 볼 수 없게’ 비닐로 봉쇄해 놓고 있었다.
일부 대형서점의 여성잡지 코너에는 그 잡지들을 비닐로 밀봉해놓고 판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왠지 불쾌한 기분이 들곤 한다. 비단 잡지 뿐 아니라 책 특히 인기인들의 ‘저서’는 그런 식으로 밀봉해놓고 파는 경우를 종종 보곤 했다.
물론 그들이 그런 ‘상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속’을 베일에 가린 채 상품을 팔아먹으려는 ‘상술’은 일종의 기만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독자에 대한 기본예의 조차 모르는 것 같다. ‘내용은 별거 없지만 일단 돈 내고 사서 봐라’라는 싸구려 장사꾼 기질이 느껴져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어쨌든 빅뱅의 첫 책이 저렇게 ‘돌풍’을 일으키며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계에 신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나쁜 소식은 아닐 듯 싶다. 하지만 ‘밀봉’해 팔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세상에, 상품 내용도 모른 채 ‘덥썩’ 돈을 지불하고 사게 만든다는 건 ‘상도의’에도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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