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과 오바마, 차베스

스카이뷰2 2009. 4. 20. 16:51

오바마대통령이 차베스대통령이 선물한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표지를 찬찬히 보고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움베르토 에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과 오바마와 차베스


오늘아침 신문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오바마의 겸손한 외교노선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그 사진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 반가움과 그리움에 잠시 울컥해졌다.  대통령의 손에 들린 한권의 책이

나의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남미의 말썽꾸러기 악동’으로 불렸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부터 한권의

책을 선물 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 책표지를 찬찬히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절개된 혈관들’이라는 책으로 우루과이의 좌파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쓴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비판서라는 짤막한 설명을 보는 순간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라는 이름에서 시선이 멈췄다. 반가웠다.


좌파적 사고방식에는 동조하진 않지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에세이들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특히 그가 쓴 탁월한 축구 에세이들을 비롯 라틴 아메리카의 ‘믿어지지 않는 실상’을 냉정하면서도 서정미 넘치는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들은 어찌나 잘 썼던지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거침없는 필치로 쓴 그의 책들을 페이지 넘기는 걸 아까워할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정치인 중엔 드물게 ‘글쓰는 재주’도 뛰어난 오바마 대통령이 평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글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물 받은 갈레아노의 책에 단숨에 빠져들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그만큼 그의 유려한 글 솜씨와 해박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제3세계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정의롭고 온정에 넘치는 그의 따스한 감성에 오바마대통령도 감명받을 것으로 확신한다. ‘어린이 문제’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바마가 아닌가.

취임 직전 오바마는 딸들에게 ‘아빠는 빈곤에 시달리는 세계 각국 어린이들을 위해 일할 계획이란다’라는 자상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케냐의 아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시카고에서 워싱턴의 백악관으로 이사 간 지도 오늘로서 어느새 꼭 석 달이 되었다.

치열한 선거전 기간 동안이나 당선 직후까지만 해도 ‘청년 기운’이 펄펄 넘쳤던 오바마였지만 아무래도 ‘세계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가 주는 스트레스 탓인지 요즘 그의 얼굴은 꽤 늙어버린 것 같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총기를 느끼게 해주던 눈빛도 조금은 초점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직전 대통령은 취임 석 달 즈음에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철부지 소리를 해 우리를 놀라게 한 적이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소리를 했다는 보도는 아직까진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며칠 전 오바마는 사랑하는 두 딸아이에게 약속했던 대로 ‘보’라는 이름의 ‘퍼스트 도그’를 백악관의 새 식구로 들였고,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두 딸과 함께 백악관 경내 잔디밭에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평화롭고 단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취임 전부터 몰아닥친 ‘경제공황 급’ 세계적 경제 위기 특히나 금융위기와 자동차산업 붕괴 등으로 밤잠까지 설쳐가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느라 노심초사했던 오바마로선 ‘퍼스트 도그’의 백악관 입성으로 팽팽해졌던 뇌신경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 것도 같다.


부시 직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다른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는 오바마는 ‘케냐의 아들’답게 미국으로부터 핍박받던 제3세계 국가들에 먼저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 ‘세계 대통령’으로서 일단 합격점을 받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의장에서 갈레아노의 책을 선물한 차베스 대통령에게 스페인어로, 차베스는 영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오바마는 자신의 ‘매력 포인트’인 입이 귀밑에 걸리는 파안대소로 친근감을 표시하면서 선물 받은 책을 찬찬히 읽는 포즈를 취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퍼스트 북’이라는 말은 없겠지만 회의장에서 오바마대통령 손에 쥐어진 그 책은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광고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자본주의적 해석이라고 할까?

어쨌든 그 책의 저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로선 뜻밖의 ‘귀인’을 만나 책 판매에 적잖은 도움이 될 ‘정상 급 홍보’를 돈 한 푼 안들이고 하는 행운을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1940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출신으로 세계적인 명망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좌파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내 개인생각으론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것 같다.(에코 선생이 들으면 다소 섭섭하겠지만^^*)


작가들은 ‘글’로써 승부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엊그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된 책의 저자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새삼 끌어 모을 것이다. 미국대통령이 읽을 책이라는 그 자체가 ‘뉴스’가 되는 만큼 책의 존재감면에서도 에코의 베스트셀러 부럽지 않게 되었다.


외모 면에선 두 사람이 막상막하다. 두 사람 모두 70대지만  ‘당당함과 호방함이 넘치는 쾌남들’로 한창때는 자국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을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야 미남이 워낙 많다는 이탈리아 출신에다 자본주의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환경적 요소가 배어 있는 듯한 얼굴이지만 아무래도 좌파인 갈레아노에게서는 적잖은 좌파 지식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청교도적 분위기와 깨끗한 카리스마가 합쳐진 위풍당당함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갈레아노는 아주 조숙한 소년이었다. 이미 13세 때 사회주의 계열 신문에 풍자만화를 연재했다. 21세에는 주간지 ‘마르차(Marcha)’의 편집장이 되었다. 일간지 ‘에포카’의 편집국장,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크리시스’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1973년부터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1985년 초, 간신히 조국 우루과이로 돌아와 지금까지 고향이자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에 살면서 여전히 ‘오피니언 리더’이자 원로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왕성하게 내고 있다.


이번에 오바마대통령이 선물받은 ‘라틴 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들’을 1971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른바 ‘출세작’인 셈이다.


71년이라면 61년생 오바마 대통령이 겨우 10세 때이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에서 열린 미주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61년 케네디 대통령 시절 발생했던 미국의 쿠바 침공을 규탄하는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나서 변호사 출신다운 순발력 넘치는 발언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내가 생후 3개월일 때 일어난 일에 대해 오르테가 대통령이 나를 책망하지 않아 고맙습니다.” 이런 위트 넘치는 말을 해 회의장에 참석했던 중남미 대통령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61년에 ‘생후 3개월’에 지나지 않았던 ‘케냐의 아들’이 40여년이 흐른 오늘 날 저렇게 ‘세계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선 건 한편의 동화 같다. 

더구나 그는 미국으로부터 무시당하고 홀대받아왔던 제3세계 국가 정상들에게 ‘애교’섞인 유머를 보내면서 ‘반미’로 돌아섰던 그들 국가들을 ‘친미’성향으로 돌려놓는 ‘스마트 파워적 재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변화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오바마라는 ‘다문화가정 출신’ 지도자의 도량 넓은 따스한 세계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38년 전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의 좌파 언론인이 썼던 책을 오바마대통령이 선물 받았다는 것은 적잖은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500년 동안 이루어진 구미 선진국에 의한 수탈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해박함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바마대통령으로선 어쩌면 벌써 이런 류의 책을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복습’의 의미로라도 이렇게 탁월한 저널리스트의 글을 읽는다는 건 미국대통령으로서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 같다.


자존심 높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이 뉴스를 보면서 어떤 심경이 들었을지도 궁금하다. 올해 70객인 갈레아노로서도 미국 대통령의 손에 자신의 저서가 쥐어졌다는 건 그리 기분 언짢은 일은 아닐 듯하다.


그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경직된 좌파적 논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자본주의 병폐를 누구보다도 예리하고 싸늘한 시선으로 시니컬하게 비판하지만 그의 글은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저널리스트라기보다 시인이나 작가의 시선으로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언론인이다.


그가 쓴 ‘축구, 그 빛과 그림자’는 심심하면 읽고 또 읽는 아주 신랄하게 재밌으면서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축구에세이다. 갈레아노만큼 축구 에세이를 재미있게 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저 부러울 뿐이다. 

마키아벨리와 카뮈가 축구선수 출신이었다는 건 그의 해박한 축구에세이에서 알게 되었다.


66년 월드컵 때 이탈리아를 꺾은 ‘결정적 골 한방’을 날린 박(朴)이라는 북한 선수가 평양의 치과의사 출신으로 여가시간에 축구 연습을 했다는 것도 갈레아노 선생이 알려주었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 팀의 경기 모습을 이런 시적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아름다운 운문(韻文)이 간헐적으로 포함된 훌륭한 산문(散文)과 같은 플레이를 계속했으나 치과의사가 그들을 완전히 벙어리로 만들어 놓았다” “축구는 조국이고, 권력은 축구다. 그 군부독재자들은 내가 곧 조국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TV는 의지할 곳 없는 영혼에게 도피와 해방 구원을 제공하는 이동식 신전(神殿)’이라는 시니컬한 문장을 거침없이 쓴 그는 “내용 없는 껍데기와 의미없는 말의 시대에 사는 인간의 변변치 못한 운명이여!”라며 현대인들을 가여워한다.


니카라과 내전에 대해서도 ‘미국의 부름으로 미국의 훈련을 받고 미국 지시로 무장한 군부대’에 유린당했다고 일갈하고 있다. 오바마대통령의 입장에선 ‘반미 좌파 저널리스트’ 갈레아노의 책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한국의 갈레아노 팬’이 오늘 아침 오바마와 차베스 두 대통령의 사진 속에 등장한 갈레아노 선생의 ‘책’을 보고,  횡설수설의 졸문을 이렇게 우리 블로그에 올린 사실을 갈레아노 선생이 알면 어떤 말을 할지 그것이 궁금하다.^^*


(*참고로 우루과이는 인구 3백30여만 명의 소국이지만 1930년대에 이미 10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축구장을 갖고 있는 나라다. 갈레아노 선생에 따르면 우루과이 사람치고 축구의 전술과 전략에 박사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우루과이 아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골! 골! 골!이라고 외치며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루과이의 분만실에선 늘 그렇게 한바탕 야단법석이 일어난다는 것이 갈레아노 선생의 전언이다.^^*)

   

 2010년 6월 26일 밤 11시 우리 대한민국과 우루과이가 '운명의 16강전'을 한다기에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대한민국의 필승을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