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사진.
오바마 추천도서가 됨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책들.
소설 읽는 대통령 오바마의 추천도서
올 상반기 내가 가장 감동 깊게 읽은 책은 오바마가 서른세 살 때 쓴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이라는 책이다. 그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자서전적인 책이었지만 거의 완벽한 대하장편소설 같았다.
오바마의 문장력은 눈부실 정도로 출중했다. 예리한 통찰력과 동물적 후각으로 번득이는 직관력에서 빚어진 탁월한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과 부러움을 느꼈다. 어떤 소설보다 생동감 넘치는 심리묘사와 작가자신의 내면고백이 감동적이었다.
그는 열두살 때부터 자신의 엄마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면서 “어머니의 인종을 밝히는 게 어쩐지 백인에게 아부하는 것처럼느껴졌다”고 고백했다. 흑백 인종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소년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또 ‘흑백 결혼, 이 말은 어쩐지 추하고 괴기스러운 느낌을 준다. 말채찍과 화염,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목련꽃과 폐허가 된 화랑의 이미지와 같은 아주 먼 옛날의 것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라며 케냐출신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사이의 결혼에 대한 그 자신의 혼돈과 이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7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흑인 최초로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통찰력 뛰어난 대통령을 뽑은 미국인들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오바마가 하버드로스쿨 시절 흑인최초로 ‘하버드 로 리뷰’라는 법률학술지 편집장으로 선출되면서 출판사의 제안으로 쓰게 되었다. 그가 33세때였다. 명문 하버드대에서 최초 흑인편집장이 선출된 것은 당시 미국사회에선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메이저 신문에서도 그의 편집장 선임을 기사로 다룰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책을 낸 오바마는 일약 ‘문장가’로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그 책의 ‘성공’으로 두둑한 인세가 들어와 그는 아내 미셸보다 비로소 수입이 많아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의 서평담당 기자는 “내가 읽은 자기발견에 관한 책 가운데서 가장 감동적인 책이다. 인종, 계급, 피부색에 관한 문제 뿐 아니라 문화와 민족성에 대한 성찰까지 조명한다. 문체는 유려하고 정교하며 이야기는 마치 잘 쓴 소설처럼 전개된다”고 극찬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정체성과 계급과 인종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겹치는 지점에 바로 이 책이 있다. 오바마의 글솜씨는 유려하고 냉정하며 통찰력이 번득인다.”라고 평했다.
이 책을 내고 15년이 흐른 2008년 오바마는 드디어 미국대통령에 취임했다. ‘역사를 바꾼 인물’로 선정될 만한 미국의 첫 흑인대통령 오바마는 거의 전세계인들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미국이외의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우리 블로그에도 소개했지만 오바마는 베네수엘라 차베스대통령으로부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절개된 혈맥’을 선물 받았다. 71년에 나온 그 책이 오바마의 손에 들려진 순간부터 아마존닷컴에서 그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는 소식도 전했다. 순식간에 판매고 2위를 기록했다.
이렇게 오바마의 ‘문화파워’는 오래된 책들도 다시 일어서게 만들고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조각(組閣)에 들어가면서 읽은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라는 책을 읽고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구간’이었던 그 책은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소설 읽는 대통령 오바마’의 손에 들려진 소설책들은 예외 없이 크게 히트하고 있다고 한다.
오바마는 지난 달 중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면서 “굉장한(wonderful) 책”이라고 밝히자마자 판매량은 40%나 뛰었고,10만부 가량이 팔렸다고 한다.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서평을 내놓는다는 것은 참 부러운 현상이다. 대단한 ‘오바마파워’다.
소설 ‘네덜란드’는 뉴욕시 맨해튼에 사는 네덜란드 출신 한 금융분석가의 이야기다. 9·11 테러이후 충격을 받은 아내와 점점 멀어지면서 별거까지 하게 된 주인공은 홀로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다 한 사업가와 친하게 되면서 오래전 잊었던 크리켓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다룬 소설인 듯하다.
미국의 정치전문 사이트 폴리티코는 “오바마가 자신의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는 책 이름을 말하면 그 책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기사를 지난 달 30일 올렸다. 아주 낭만적이면서 동양적 분위기가 감지되는 이야기다.
‘귀인’을 만난 책들의 ‘운명’이 바뀐다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도 재미가 있다.
한 도서전문 에이전트는 “오바마는 대통령인데다 법학자이고 자신이 쓴 책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에 추천 신뢰도가 엄청나게 높다”고 ‘오바마 문화파워’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오바마는 지적 호기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흑인 여성방송인 오프라윈프리의 책 추천보다 훨씬 힘이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당시 기자가 “언제 책을 읽느냐”고 묻자, “잠자기 전 30분 동안 읽는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요즘 ‘왓 이즈 더 왓(What is the What)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실존인물인 수단의 난민 발렌티노 아크 뎅(Deng)이 무슬림테러단체에 의해 마을이 짓밟힌 뒤 가족들과 떨어져 살며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다.
오바마는 이 책을 보좌관들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멋있고 부러운 풍경이다. 대통령이 아랫사람들에게 “이 소설 한번 읽어 보게나”라고 권한다는 대목에서 ‘미국의 파워’를 새삼 느껴볼 수 있는 것 같다.
오바마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추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저자 데이브 에거스는 “오바마가 내 소설을 읽었다니 엄청난 영광이다. 한 남자가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에 맞서는 이야기라 오바마 대통령이 공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이 책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것이다. 이제 가히 ‘오바마 북클럽’의 파워가 전미(全美)도서의 판도를 바꿀 것 같다. 그런 미국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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