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시비에 휩싸인 황석영의 ‘강남 몽’
어제 단골 책방의 잡지코너에서 신동아 11월호 목차를 훑어보다가 소설가 황석영이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는 제목을 보고 그 자리에서 선 채로 그 기사를 다 봤다.
황석영의 소설 ‘강남 몽’의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의 상당 부분이 조성식 신동아 기자의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의 내용을 고스란히 옮겼다는 것이다. 기사는 두 책을 조목조목 비교했는데 누가 봐도 황석영이 기
자가 쓴 책을 거의 ‘베꼈다’는 생각이 단박에 들 정도였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황혼의 시간’을 뜻한다. 프랑스어 ‘heure entre chien et
loup(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따온 것이다. 2007년 방영한 MBC 드라마의 제목으로 원작만화도 있다.
황석영의 ‘강남 몽’은 지난 6월 출간한 작품으로 강남이란 공간을 일제 강점기부터 1995년 삼풍백화점 붕
괴까지의 역사로 나눠 묘사했다. 공교롭게도 4장 ‘개와 늑대의 시간’은 조직폭력배를 주인공으로 사실과 허
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현으로 호평을 받았다.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지난해 1월 발간한 책으로 신동아의 조성식기자가 주먹 세계의 실상을 파헤친
내용이다. 저자가 직접 김태촌, 조양은 등 수십 명의 조직폭력배를 인터뷰해 그들의 생생한 삶을 비춘 논픽
션 작품이다.
신동아 기사에 따르면 ‘강남 몽’은 실제 인물들의 이름을 살짝 바꿨을 뿐, 큰 그림은 조폭세계의 현실을 세밀하게 그린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를 거의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가령 기자가 쓴 책에는 대구 출신 조직폭력배 조창조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이렇게 묘사한다. “운동선수마다 약점이 있어요.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 약점을 다 간파하고 그것을 공략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권투하는 놈은 유도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으로 무너뜨렸지요. 실전에서 가장 덕본 건 씨름입니다”
이 부분을 황석영은 이렇게 옮겨 놨다. 조창조를 '조창호'란 이름으로 바꾸고, “그는 여러 가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각 부분의 약점을 잘 알고 있어서 가령 상대방이 권투하는 자세로 나오면 유도 식으로, 유도하는 놈은 씨름이나 태권도로 공략했다”로 묘사했다.
신동아는 ‘강남몽’이 김태촌을 ‘강은촌’, 조양은을 ‘홍양태’로 이름을 바꾸고 “이듬해 5월 강은촌은 서울의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연초에 폐암 진단을 받고 형집행정지가 되어 수술한 뒤 회복 병동에서 요양하는 중이었다. 이튿날 밤 당직 의사의 회진이 끝난 뒤에 강은촌은 이대권 박광현 등과 함게 승용차편으로 서울을 빠져나갔고 부하들도 연락을 받고는 아산으로 갔다. 아산호텔에는 홍양태 계열의 조직원들 백여 명이 몰려와 있었고, 강은촌의 조직원들도 삼십여 명이 찾아왔다”면서 사람 수까지 똑같이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조양은-홍양태, 김태촌-강은촌, 조창조-조창호, 엄삼탁-엄상택, 정학모-정학영, 신우회-청우회로 바꿨고 ▲홍양태(조양은)를 '홍깡'('조깡')으로 표현한 것 ▲조창호(조창조)가 중앙청과시장(염천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장면 ▲진상사파(신상사파)를 습격한 모나코호텔사건('1975년 사보이호텔사건') ▲홍양태와 강은촌(김태촌)의 만남 ▲강은촌의 오종오(오종철) 습격사건('1973년 엠파이어호텔 습격사건') ▲강은촌과 홍양태가 처음 구속되는 대목 ▲양태파(양은이파)의 내분 등도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에서 차용했다는 것이다.
신동아가 두 책의 유사한 부분을 대조한 것을 읽어보면 소위 ‘천하의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남의 책을 자신의 원고지에 옮기려고 ‘잔머리 굴리는 ’과정이 떠올라 쓴 웃음이 나올 뿐이다.
황석영은 우리 블로그에서도 두 어 차례 그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문장 좋고, 재주가 뛰어난’ 한국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곧 ‘70객’이 되지만 여전히 현역 작가로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다 알다시피 그는 좌파와 우파를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숱한 화제를 뿌리고 다닌 인물이다.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남과 북의 최고위지도자들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는 ‘재주’마저 있어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과 같은 반열의 위인”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정도로
‘친북 성향’이 강하다.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귀여운 별칭’도 받을 만큼 ‘총애’를 받기도 했다.
1989년엔 그토록 존경하는 김일성을 만나기 위해 다섯 번이나 밀입북했고, 7차례나 '친견'했다고 한다.
김일성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25만 달러를 활동비로 받은 댓가로 5년형을 살았다.
그런 그가 작년엔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수행원으로 따라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정부로부터 ‘문화특임대사’라는 차관급 공직을 받아 해외 출장 시에는 비행기 1등석을 타게 되는 ‘영
광’도 안았다.
이렇게 ‘재간 많은’ 원로급 작가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잡지사 기자가 애써 쓴 책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
고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각 분야마다 ‘터부 시’하는 일이 있듯이 글 쓰는 사람들에겐 남의 글을 ‘훔치는’ 표절이야말로 가장 금기사
항이다. 황석영 본인의 말대로 수십 년 ‘글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이 사전 양해도 전혀 구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속에 남의 글을 슬그머니 옮겨다 놓은 행위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더구나 기자가 십여 년 간 애써 발로 뛰어 쓴 ‘다큐멘터리 원작’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그걸 ‘도용’해
소설로 포장해 내놓은 ‘유명 작가’의 책은 베스트셀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현실은 대한민국 문화계의 서
글픈 세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10월19일자 사설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2008년 논문 표절과 관련해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등을
표절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강남몽>은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어렵고 최소한 저작
권 침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신문과 잡지에서 소설 ‘강남 몽’의 표절시비를 대서특필하고 있는데도 정작 황석영은 ‘무반응’인 채
‘연락두절’상태라고 한다. 작가로서 자신이 내놓은 작품이 그런 불명예스러운 의혹에 휩싸인다면 최소한 자
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원작자’와 그 소설을 읽은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 현재 황석영의 집 전화 휴대전화,SMS 모두 ‘불통’이라고 한다. ‘대가’답지 못한 처신 같다.
‘황석영 표절시비’를 보면서 금년 초 ‘일본은 없다 표절의혹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전여옥이 떠오른다.
고법 판결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패소’판결이 나오자 일언반구 없는 ‘무반
응’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그야말로 ‘일본은 없다’가 아닌 ‘전여옥은 없다’였다.
‘표절’했는지 안 했는지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법이다. 황석영이 무반응으로 나온다는 건
표절을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마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뒤에야 ‘변
명’비슷한 ‘궤변’을 내놓으면서 독자들에게 나타날 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식의 얌체 같은 ‘표절 소동’은 가뜩이나 ‘비호감(非好感)’이미지인 황석영을 더 파렴치한 인
물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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