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 현빈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과 베스트셀러 오늘 아침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꽤 재밌는 뉴스를 봤다. 인기탤런트라는 현빈이 무슨 책을 보는 사진과 함께 ‘현빈 덕분에 앨리스 1위’라는 사진 캡션이 포털 사이트 대문에 실렸다.책이야기인 듯해 클릭했더니 추측이 맞았다. 영국 작가 캐럴 루이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지난 21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집계에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제치고 일부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뉴스가 될 만한 ‘꺼리’다. 그런데 베스트셀러로 뜬 이유가 좀 우스웠다. 요즘 방영하고 있는 ‘시크릿 가든’이라는 TV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장면이 방영된 직후 19일 하루 판매량 순위에서 그 책이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19일 판매 순위에서도 ‘앨리스’는 3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고 한다. 출판사 집계에 따르면 이 책은 이 드라마 방영 이후 무려 2만부 이상 판매됐다는 것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로서는 ‘횡재수(橫財數)’가 있는 복덩어리 효자 책인 셈이다. 다 알다시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이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1865년 발표한 소설이다. 앨리스라는 이름의 소녀가 토끼 굴에 빠져 기묘하고 의인화된 생명체들이 사는 환상 속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호기심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야기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더니 ‘재벌집 도련님과 평범한 여성의 연애 스토리‘가
주요 줄거리인 듯하다. 현빈과 하지원이라는 남녀 인기 탤런트가 주인공이어서 원래 기대를 모은 데다 젊은 여성들에겐 영원한 로망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인어 아가씨 이야기를 버무려 놔 요즘 드라마 중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웬만한 인기 드라마는 즐겨 보는 편인데 이 드라마가 내 ‘시청권’ 밖에 있었다는 게 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시청률 50%를 넘었다는 무슨 ‘제빵왕~’ 어쩌구나 몇 년 전 주몽이나 최근 종영한 자이안트, 엄마가 어쨌다는 등등 장안의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불러 모았던 내로라하는 드라마들을 안 본 적도 꽤 있었다. 어쩌면 나는 취향이 까다로워 TV방송사 입장에선
‘귀찮고 고약한 시청자’류에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크릿 가든’을 한 번도 안 본 ‘죄’로 이 드라마에 대한 안내를 꼼꼼히 챙겨봤다.며칠 전 드라마의 남주인공 현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것 같은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기하고도
슬픈 질환이다“라며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저 여자와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라고 독백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현빈의 손에 쥐어진 책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고 그 다음날부터 별로 팔리지 않고 있던 그 책이 베스트셀러 1위를
단숨에 차지하면서 출판사 사장님의 입은 귀에 걸렸다는 얘기다.
드라마에 등장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드라마뿐이 아니다. 언젠가는 한 유력 일간지에서 삼성재벌가의 막내따님인 신세계백화점 이명희 회장이 인터뷰 도중 ‘요즘 읽는 책’으로 ‘열정과 기질’이라는, 일반인이라면 듣도보도 못했을 특이한 책제목을 말하자 그 다음날부터 그 책의 출판사에선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작년 5월 자살한 대한민국의 한 대통령이 탄핵시절 무슨 책을 읽으셨냐는 질문에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었다는 답을 하자 그 책은 바로 그날부터 ‘대박’이 터져, 급기야는 ‘밀리언셀러’반열에까지 오른 일도 있다. 그러니까 미디어에 노출된 책은 그날로 ‘팔자 고친다’는 속설까지 생긴 것이다. ‘귀인’이 나타나 ‘횡재수’가 있다는 토정비결 문구가 생각난다. 세상사(世上事)는 새옹지마요, 한 치 앞을 알 수 없듯이 ‘책과 영화와 주식’의 흥행운명은 아무래도 ‘타고난 팔자소관’이지싶 다.
요 근래 가장 재밌게 봤던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도 원작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이 드라마화하면서 가뜩이나 잘 팔리던 책이었는데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까지 올랐다.몇 해 전인가 현빈이 역시 재벌가 도련님으로 나오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도 '모모'라는 책이 주인공 손에 쥐어지면서 100만부나 팔리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아무튼 늘 ‘불황’에 허덕인다는 대한민국 출판업계는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이라는 이름의 ‘싼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목마르게 기다리면서 ‘대박에의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베스트셀러’가 꼭 양서는 아니라는 말도 있듯이 이렇게 미디어에 소개되는 책들이 과연 내용마저 실(實)하냐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물론 웬만한 책들은 출판사 사장님과 제작진들의 각고의 기획회의 끝에 난산에 난산을 거듭하며 간신히 태어나기에 그 책들에 거는 ‘베스트셀러’의 꿈은 어쩌면 출판인들의 당연한 꿈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별 시답지 않은 내용의 책들도 TV화면에 비춰지면 ‘베스트셀러’반열에 오르는 확률이 대단히 높아진다는 건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만 독서시장에 ‘대중화 바람’만 부추기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이론이 바로 ‘책 시장’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어떤 출판인은 한권의 책이 대박‘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는 자조어린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베스트셀러 되기는 어려우면서도 ‘운명의 장난’처럼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드라마 주인공 손때가 묻기만 하면 ‘대박’난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면 앞으로 방송드라마 작가나 드라마 PD들은 적선하는 셈치고 수시로 주인공의 손에 책을 쥐어주면 어떨까 싶다. 물론 ‘공정한’ 심사를 거친 책에 한해서 말이다.
*참고로 ‘앨리스 증후군’에 대한 사전적 설명을 소개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은 실제로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토드(J. Todd)가
자신의 논문에서 소개한 증상으로, 매우 드물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기이한 증상들을 겪는 것을 말한다. 그는 이 증상을 소설의 제
목을 인용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AIWS, 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 이름 붙였다. 정신의학계에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은 측두엽의 이상으로 인해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앨리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
들은 대개 시각적 환영(Optical Illusion)이 보인다. 또한 대체로 편두통의 병력이 있다. 물체가 작아 보이거나(micropsia) 커 보이거나
(macropsia) 왜곡되어(metamorhopsia) 보이거나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해서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멀어 보이는(teleopsia)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 앨리스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루이스 캐럴도 편두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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