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김치우 눈빛에서 예감한 골!

스카이뷰2 2009. 4. 1. 23:29

     

 

                               운명의 골을 성공시킨뒤 골세레모니를 하고 있는 김치우와 그 뒤를 따라뛰는 박주영의 모습이 귀엽다. 

    

          

                김치우 눈빛에서 예감한 골!


터질듯 터질듯하면서도 좀처럼 터지지 않은 골 가뭄 속 막판 2분전,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된 김치우의 빛나는 눈매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쟤가 한 골 넣겠네!”라고 외쳤다.


나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김치우의 서커스 묘기 같은 왼발 프리킥이 네트를 가르며 골로 승천했다.

그 순간 우리집 마루에선 미세먼지가 마구 날렸다. 우리 가족이 폴짝폴짝 뛰는 바람에 아래층 사람들의 미간은 좁아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조금 전 끝난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 남북대결,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88분은 무척 지루했다.

하지만 몇 번씩 우리를 탄식하게 만들었던 이근호를 대신해 들어가자마자 멋진 프리킥으로 우리를 ‘골 스트레스 지옥’에서 건져준 김치우는 푸른 말처럼  멋졌다. 결 고운 장발을 휘날리며 김치우는 며칠 전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도 우리를 시원하게 만들었던 골잡이였다.

 

입술이 타들어가는 듯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허정무감독이 막판에 김치우를 들여보내면서 그의 등을 토닥이며 무언가를 지시했을 때도 나의 예감은 좋았다. 두 사나이의 모습이 너무도 간절해 보였던 것이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 간절함이 곧바로 골망을 흔들어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 TV뉴스에서 김치우는 '간절히'골을 넣고 싶었다는 소감을 말했다. 생때같은 청년의 입에서 '간절히'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고 뭉클했다. 내가 무슨 독심술사는 아니지만 어제 TV화면에 비친 허정무감독과 김치우선수의 모습에선 그런 '간절함'이 가득 묻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북한 측에서 볼 땐 ‘마의 2분 전’, 레이저광선 같은 눈빛을 뿜어내던 김치우가  “축구란 이런 것입니다” 라며 공중부양하듯 녹색 그라운드 위를 뛰어오르는 모습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그를 막으려던 북한 선수들 대여섯 명의 머리카락을 약 올리듯 곤두세우면서  '간절한' 왼발 프리킥 볼은 그렇게 골로 연결된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2002월드컵 신화연도’의 쾌감이 몰려오는 듯 시원했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월드 챔피언이 된 김연아가 방긋거리며 VVIP석에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는 참이어서 대한민국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감했었다. 하프타임에 김연아는 대표팀 점퍼를 입은채 그라운드로 나와 5만 관중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연아 특유의 당차고 담대한 표정과 말솜씨가 돋보였다. 피겨퀸다운 당당함이 보기 좋았다.


이번 게임을 보니 전반적인 전력은 우리가 다소 우세해 보였지만 북한선수들의 찰거머리 수비와 강도높은 슛팅력은 오히려 저들이 더 나아보였다. 게임 내내 골 운이 따라주지 않는 우리 팀의 헛발질을 안타까워하며  단골야유메뉴인 ‘골 결정력 부족’을 후렴구처럼 외쳤다.  

 

짧지않은 88분동안 소파에서 보조 소파로, 마룻바닥으로 옮겨앉으며 우리 대표팀의 부진에 짜증을 냈다. 하지만 김치우의 ‘묘기 한방’에  그런 한탄과 짜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미친 듯 환호하며 박수쳤다. 이런 게 아마 축구의 매력일 것이다. 수요일 밤에 쾌거를 보여준 김치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늘 대결에서 눈여겨 본 선수는 우리 팀을 지난 몇 차례 대결에서 위협적으로 공격했던 정대세였다.

야수 같은 저돌성의 정대세는 오늘은 웬일로 북한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눈물’을 머금는 여린 모습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북한감독은 정대세와 골키퍼 등 세명의 선수가 식중독을 일으켜 구토와 설사로 고통받았다면서 불쾌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마치 호텔 음식에 독이라도 탄 뉘앙스다. 그러나 25명 선수중 유독 3명만 그런 증세였다면 이건 음식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그 선수들의 컨디션과 기타 다른 문제들이 복합돼 일어난 현상일 것이라고 본다. 어쨌든 간밤에 아팠기에 정대세가 그렇게 맥없이 보였나보다.)


조총련계재일동포 축구선수로 북한을 ‘조국’으로 부르는 정대세는 오늘도 여러 차례 아주 강도 높은 슛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어딘지 ‘기’가 약해진 듯해 보였다. 아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겠지만 그렇게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보여 지는 모습에서 ‘승패’의 갈림길이 달라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애국가가 연주될 때 우리 선수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이영표는 기도를 하는 듯  입모습이 경건해 보였다.

뚝심 있어 보이는 맏형 이운재도 눈을 감고 기도하는 듯했다. 주장 박지성은 작은 눈에서 빛을 발하며 어떤 ‘승리의 기운’을 느끼게 해줬다.


오늘 우리가 이기긴 했지만 박지성을 비롯해 이영표 박주영 조원희 등 해외파들이 모두 합세했는데도 겨우 게임오버 2분전에야 골이 터졌다는 건 우리가 반성해야할 대목이다.


우리 대표팀의 ‘꽃미남 넘버원’ 기성용의 활약도 눈부셨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경기감각이 꽤 좋아 보이는 선수였다.

아까운 것은 박주영의 나이스패스를 두 번 씩이나 실수했던 이근호였다.


지난 번 이라크 전  때 페널티 킥 성공으로 박수를 받긴 했지만 오늘은 왜 그렇게 부진한 모습이었는지. 아무리 골이란 게 ‘운’의 뒷받침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지만 그렇게 실수한다는 것은 아직은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신호다. ‘운도 실력’이라는 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실력이 허술한 데 운이 제대로 따라주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 팀도 오늘 잘 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홍영조라는 노련미 넘쳐 보이는 선수의 저돌적 슛은 정말이지 우리 대표팀으로선 ‘십년감수’의 가슴 철렁한 공격이었다. ‘배나왔다고’ 네티즌들로부터 지탄받았다는 대표팀 맏형 이운재의 팔이 조금만 짧았더라면 그냥 골로 이어질 뻔했다.


사실 우리가 북한한테 겨우 한 골 넣고 이다지 좋아한다는 건 좀 우스운 이야기다. 국력으로 볼 때 도대체 게임이 되는 상대인가 말이다.

더구나 ‘못 먹어서’ 키도 작고 체력도 딸린다는 북한팀 아닌가.

그래도 그들은 투지가 무서웠다. 그야말로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란 말은 북한팀의 주무기였다.


그렇잖아도 어제 텔레비전에 나온 김정일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인터뷰 모습을 보면서 ‘북한’이 그리 간단한 상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도 서울 말씨를 쓰는 김정남을 보면서 북한의 또 다른 모습을 느꼈었다. 그렇게 꽉막혀있는 체제만은 아니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어제 김정남은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당연한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 말하는 품에서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개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자신감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 식이라면 아마 ‘자본주의적’ 스포츠에도 굉장히 열광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인민들의 경제사정은 형편없는 상황이지만.

 

오늘 남북 축구대결은 북한에도 ‘생중계’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저 ‘마의 2분전 골’에 어떤 반응이었을까? 어차피 우리와 함께 ‘1,2위’로 나가긴 하지만 아마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었을 것 같다. 없이 사는 것도 서러운데 한 골 차로 졌다는 건 ‘자존심’강한 인민들로선 참아내기 어려운 수모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내일하면서 미사일 발사로 인민들의 눈길을 애써 돌리려하고 있지만 그 가난을 어찌할것인지 걱정되는 시점에서 축구마저 저렇게 지다니...(북한감독은 계속 편파판정으로 불쾌해서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기자회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들은 북에 돌아가서 다 이겼는데 이상한 음식과 심판의 오심때문에 졌다는 핑계를 큰 위안으로 삼을 듯 싶다.)


어쨌거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우리가 이긴 건 백번 잘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승리는 편파판정 탓이 아니라 수천만 시청자들이 똑똑이 봤듯이 김치우의 서커스묘기같은 왼발 프리킥 골 덕분이었다. 

그러나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완벽대비하기 위해선 아직 더 많은 맹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88분 내내 경직되고 초조한 표정이었던 허정무 감독도 김치우의 골 덕에 ‘기사회생’한 모습이었다. 허 감독은 ‘국대선수들’에게 “오늘 잘했다! 이제 ‘본선’을 대비해 모두모두 정신 바짝 차리자!” 라고 외쳤을 것 같다.

 

오늘 게임의 ‘수훈 갑’인 김치우에게 마음의 꽃다발을 한아름 보낸다. 

 

*(_) 괄호안에 밑줄 그은 부분은 오늘 아침 TV뉴스를 보고 보충한 내용입니다. 글이 매끄럽지 않게 연결되었음을 양해해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