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를 지켜보고 있는 포커페이스 김인식감독(다음자료사진)
김인식 감독의 애국야구
오늘 아침 양복차림의 김인식 감독이 “국가가 있어서 야구가 있고 팬이 있어 선수와 감독이 있는 거니까요”라고 말하는 텔레비전 인터뷰장면을 보고 뭉클해졌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딴 덕에 이번 제 2회 WBC 대회는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모두 감독직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행여 금메달에 먹칠하는 결과를 얻을까 두려워서였을 겁니다.
야구에 대해 일자무식꾼이지만 국가대표팀 감독이 받아야할 그 ‘막중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일지는 대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때 감독을 맡아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던 김경문 감독은 갓 쉰을 넘긴 소장파 감독이지만
일찌감치 손사래를 쳤고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68세 노장 김성근 SK 감독도 사양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중풍으로 쓰러져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인식 감독도 물론 감독직을 못 맡는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한국 야구위원회(KBO)가 김인식 감독에게 ‘간청’하자 그는 “나라에서 시키면 하겠다”면서 이번에 감독을 맡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인식 감독의 '애국야구 발언'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환갑진갑 다 넘긴 김인식 감독으로선 ‘나라’의 명령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귀한 것인지를 절절이 느꼈을 것입니다. 국가가 있기에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듣는이로 하여금 숙연한 기분이 들게했습니다.
그는 이번 WBC출전을 '위대한 도전'이라 명명했기에 결승시합전 울려퍼지는 애국가 연주를 아주 비장한 심정으로 들었을 겁니다.(*한`일전이 끝난 뒤 그의 이런 '애국 야구'에 대통령도 감동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로'를 치하했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젊은 시절엔 ‘나라’보다는 아직은 ‘나’가 먼저이고 중요하지만 연륜과 함께 시야가 넓어지면 ‘나라 사랑’의 마음은 점점 더 넓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곧 후세에 대한 배려가 깔린 마음이기도 할 겁니다.
더구나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회복한 김인식 감독으로선 지난 세월의 온갖 경험을 바탕으로 ‘고수로서의 책임감’을 절절이 느꼈을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다 깨어나면서 여러 생각들이 교차되었을 것이고 생명이나 가족, 국가에 대해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이 더 깊이 들었을 겁니다.
이제 황혼기에 접어든 김인식 감독은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할 수 있는 몫에 대해 숙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들 맡지 않으려했던 골치아픈 ‘국가대표 감독직’을 수락했을 테고 우리에게 지금 저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일면식도 없지만 ‘국민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는 김인식 감독의 그런 ‘애국 발언’과 그에 대한 이러저러한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서 ‘인간 김인식’에 대해 우리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명의 진검승부’ 한·일전 탓에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는 지금 아직 승패의 결과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야구의 히딩크’라고도 할 수 있는 김인식 감독의 매력은 설령 우리 야구팀이 진다해도 여전히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 같습니다.
김인식 감독은 다 알려진 대로 히딩크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은 선수시절을 거쳐 배문고 상문고 동국대 등 아마추어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가 마흔의 뒤늦은 나이에 프로 야구팀 코칭스태프로 합류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야구 감독으로, 국민감독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존경받고 있는 그의 야구는 이렇게 마지날 맨(marginal man, 주변인) 시절을 오래 겪고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기에 더 빛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텔레비전 스포츠 뉴스에선 그의 야구를 ‘잡초 야구’라고 하더군요. 잡초야구! 잡초 근성! 아주 무서운 말입니다.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지요. 온실에서 자라난 화초들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엄청난 생명본능이 있기에 잡초들은 ‘밟아도 잡초’처럼 일어나는 겁니다.
그렇기에 잡초근성은 생명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인식감독의 이 잡초야구야말로 리더십의 정수로 칭할만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상징하는 본질일 것입니다.
중풍으로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노감독 덕분에 조금 전 LA 다저(Doger) 스타디움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로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장면은 그 하나만으로도 김인식 감독에게 공을 돌려줄 만합니다.
그의 ‘나라가 있어 야구가 있다’는 명언이 저 애국가 속에 녹아 흐르는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후면 한·일 양팀 중 한 팀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겠지만 승패를 초월해서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은 야구의 본고장이라는 미국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좀처럼 희로애락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포커페이스’ 김 감독이지만 홈런치고 들어오는 선수를 향해 두 손을 내밀어 그 선수의 손을 잡아줄 때만큼은 선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자상하고 세심한 표정이 드러나는 그를 보면서 바둑이 취미이고 A형이라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그와 순간적으로 정서적 공감대를 느끼기도 합니다.
스포츠 기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김 감독은 기사거리가 될 만한 ‘어록’을 툭툭 던져 준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 ‘애국 야구’ 발언을 비롯해 ‘야구는 사람이 한다.’ ‘어떤 상황에 어떤 사람을 쓰느냐가 내 야구의 기본이다’ ‘진 경기를 감독이 이기게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감독 때문에 다 이긴 경기를 뒤집히는 경우는 숱하게 봤다’는 말을 통해 김인식 야구리더십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패배에 대해 변명하지 않겠다'든지, '일본이 한국보다 한 수 위지만 야구는 실력이 좋다고 항상 이기는게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야구관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덕장’으로 통하는 김감독에 대해 한 야구 전문 기자는 ‘물과 같은 사람이다. 물과 같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을 따른다. 물처럼 아무 개성이 없는 듯 보이나 그 안에 그만의 노하우를 내재한 진정한 고수의 내공을 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믿음의 인간 경영’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야구를 말한다는 김 감독은 ‘인고의 세월’을 오래 보낸 탓인지 험난한 야구인생을 사랑하는 손자에겐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하겠다는 말로 ‘야구 인생’이 자신의 천직임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조금 후면 승패가 엇갈리고 양국은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이기든 지든 간에 어쨌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 세계에 대한민국야구의 존재감을 저렇게 드높인 김인식 감독에게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
*PS;결국 대한민국은 10회 연장전끝에 3대5로 석패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페어플레이를 한 반면 일본팀은 더티플레이를 남발해 네티즌들의 눈총을 받았지요. 하지만 양팀 모두 탁월한 경기솜씨로 야구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 세기의 대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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