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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7>아인슈타인이 장인이 준 거금을 거절한 이유

스카이뷰2 2009. 4. 29. 00:35

   

 

  

       아인슈타인이 장인이 준 거금을 거절한 이유

 

1903년 아인슈타인 부부는 크람 가(街)49번지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이들 부부는1904년 5월 14일 첫 아들 한스 알베르트를 얻었다. 아인슈타인 부부는 장남 한스 알베르트를 알베르틀리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했다. 밀레바는 첫 딸을 낳을 때도 난산으로 곤욕을 치렀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난산의 고통을 겪었다. 그것은 그녀의 신체장애와 연관이 있었다.

 

밀레바는 1905년 여름 아인슈타인과 함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을 방문한다. 금의환향한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그때 처가를 처음 방문했다. 장인 밀로스는 듬직한 체격에 인물 좋은 사위가 마음에 들었다.

 

아인슈타인은 밀레바가 자신을 도와 수학적 문제를 모두 해결해준다고 자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딸이 학문으로 성공하길 바랐던 밀로스로서는 사위의 그 말 한마디에 지난  몇 년 자신의 딸을 괴롭혔던 아인슈타인 부모들에 대한 고까운 심정도 많이 누그러졌다.

 

밀레바의 친구 밀라나에 따르면 ‘합법적인 손자’가 태어나자 밀레바의 부친 밀로스는 아인슈타인에게 거금 10만 프랑을 주려고 했다. 장인이 거금을 쥐어주려 하자 아인슈타인은 자신은 돈을 보고 밀레바와 결혼한 게 아니라며 거절했다. 아인슈타인은 장인에게 밀레바는 자신에게 ‘학문적 영감’을 주는 수호천사라고 말했다. 그 마음 변치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에 어느 장인이 이런 사위를 보고 감동하지 않겠는가. 밀로스는 고향 친구들에게 두고두고‘사위자랑’을 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물욕’이 별로 없음을 보여주는 증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일생을 통해 아인슈타인은 ‘보통사람’으로서는 따라 하기 힘든 발언을 툭툭 하거나 물질에 연연해하지 않는 일화를 많이 남겼다.

 

이는 그가 의식적으로 그랬다기보다 아인슈타인에게선 세속의 어떤 것도 물리학만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많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단지 아인슈타인에겐 새롭게 그의 앞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존재가 그의 ‘물리학’에의 경배시간을 잠시 줄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인들과의 즐거운 시간에서 얻은 ‘원기(元氣)’로 그는 다시 물리학이라는 제단 앞에 엄숙한 사제 역할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언제나 신인의 기분으로 이론 연구에 매달렸던 것이다. 

 

새로 이사한 크람 가는 괴테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감탄한 거리였다. 아름다운 시계탑, 시원한 분수대는 유서 깊은 아케이드와 함께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아인슈타인이 살던 아파트는 ‘아인슈타인 학회’라는 작은 지방 학회에 의해 <아인슈타인 하우스>라는 박물관으로 개조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아인슈타인 하우스>에 들어서면 아인슈타인이 밀레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랑했던 크람 가의 경사진 아케이드가 내려다보인다. 그들 부부의 침실에는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풍채 좋은 아인슈타인이 책을 보고 있는  커다란 사진이 걸려있다. 거실에는 아인슈타인이 책을 읽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던 탁자가 여전히 놓여있다. 아인슈타인 시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려내 방문객들이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있는 듯한 즐거운 착각여행을 할 수 있게 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