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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1> 아인슈타인이 열등감을 느낀 천재 과학자 로렌츠

스카이뷰2 2009. 6. 1. 09:27

 

 

    아인슈타인이 열등감을 느낀 과학자 로렌츠

 

 어떤 이론도 ‘진정한 혁명’으로 평가받기 어려운 과학계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은 명실상부한 ‘진정한 혁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의 이 이론이 허허벌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솟아오른 물줄기는 아니다.

 

그가 ‘완제품 상대성 이론’을 내놓기 전 까지 많은 유럽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그의 이론에 초석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의 ‘독창적 상대성 이론’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독보적인 창의력의 산물이라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단지 19세기 말 이론 물리학계에서 서서히 변혁의 기운이 태동되고 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 물리학자 핸드리크 안톤 로렌츠 박사는 아인슈타인이 ‘최고의 스승’으로 뽑고 있는 이론가다.

 

아인슈타인은 로렌츠를‘살아있는 예술품’이라고 말했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제게 큰 기쁨입니다. 그 순간에는 당신에 대한 지적 열등감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애롭고 친절하게 대하는 당신이 상대방이 실망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 주기 때문입니다”라고 로렌츠에게 최고의 존경심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천하의 아인슈타인이 지적 열등감을 느낄 정도의 석학인 로렌츠는 현대물리학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온화한 성품의 로렌츠는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를 1년 반 만에 마칠 정도로 탁월한 수재였던 그는 24세때 쓴 ‘맥스웰의 광학’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유럽의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최고의 석학으로 대우받았다.

 

그야말로 ‘약관’의 나이에 대가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인품도 뛰어나 주변의 존경을 받았다. 주변 인물들과 갈등이 많았던 아인슈타인으로선 부드럽고 원만한 로렌츠가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순탄하고 화기애애한 가정을 꾸리는데 두 번이나 실패한 이 천재는 그의 만년에‘한 여자와 해로’하고 세상 뜬 친구 베소를 몹시 부러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었다.

 

오직 물리학의 세계에 파묻혀 살아온 나날들에 후회는 없었다 해도 무의식 속에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1928년 로렌츠가 세상을 떴을 때 그의 무덤에서 이런 추모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가장 작은 부분까지도 결코 소홀함이 없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인간사에 대한 직관적이고도 정확한 이해와 짝을 이루는 언제나 변함없는 친절과 관용과 정의감으로 그는 자신이 속한 어느 곳에서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