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마음의 고향 스위스 취리히(다음 뉴스 사진)
스타기질이 넘쳤던 아인슈타인-"아내는 꼭 필요한 존재에요"
그날 밤, 아인슈타인은 베소에게 간단한 감사의 말을 전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달려와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유명한 논문을 완성하는데 불과 6주일이 걸렸다.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 역학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그가 오래전 여름 휴양지에서 공부했던 헤르츠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이 논문을 완성한 직후 아인슈타인은 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탓에 무려 2주 동안 계속 잠만 잤다고 밀레바는 말했다.
그녀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 논문을 쓸 때 수학적인 문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 논문을 학회로 보내기 전 여러 번 점검하고 교정을 본 것도 밀레바의 몫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항간에는 상대성 이론이 밀레바의 작품이라는 과장된 소문도 떠돌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아인슈타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밀레바의 보조원으로서의 노력이 일정부분 기여한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1905년 이 논문들을 완성한 직후 떠났던 밀레바의 친정나들이에서 아인슈타인은 밀레바의 고향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성공한 여성’으로 비쳐지는데 크게 일조했다고 자랑했다. 학문적 업적으로 이제 곧 유명해질 잘생긴 남편이 “아내는 제게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내는 저를 위해 모든 수학문제를 풀어준 은인입니다”라고 말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도회풍의 멋있는 사내가 그렇게 애처가이기까지 하니 세르비아의 순박한 사람들은 얼마나 감격했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는 정치인이 무슨 유세라도 하듯 호방한 목소리로 그 동안 자신이 이룬 학문의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은 허풍을 가미해가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시골사람들이라 해도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긴 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린 아들 손을 잡고 동네를 뛰어다니는 그를 보고 ‘마리치가의 미친 사위’라고 수근 댔다. 아인슈타인에겐 의외로 대중취향의 쇼맨십이 많았다.
대부분 어려운 학문세계에 전념하는 사람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사회성이 그에게도 풍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상에 서툰 점만 해도 그가 여느 책상물림 학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으로 완전히 유명인사가 되었을 때에도 매스컴을 피하기보다는 즐기려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오히려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이나 비서진들이 과잉 방호벽을 쳐서 매스컴의 접근을 막았던 탓에 노출 빈도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공동 기자회견이라든지 혹은 운 좋게 단독으로 그를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보여준 모습은 대중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한 태도였다. 젊은 날 아내의 시골집을 방문했을 무렵, 아인슈타인의 그런 태도는 훗날 풍부한 쇼맨십을 보여주던 아인슈타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가까이에 함께 사는 가족들에겐 다소 근엄한 편이었으나 대중이나 카메라 앞에선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스타 기질이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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