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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2>죽을때까지 아인슈타인을 용서하지 않은 프랑스 수학자

스카이뷰2 2009. 6. 8. 08:49

 

 

  죽을때까지 아인슈타인을 용서하지 않은 프랑스 수학자

 

프랑스의 저명한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도 ‘상대성 원리’를 만지작거렸던 저명한 학자 반열에 드는 사람이다. 그는 1900년대 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참조해놓고도 참고문헌에 자신의 논문을 적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아인슈타인을 용서하지 않았다.

 

정작 아인슈타인 본인은 자신은 푸앵카레의 논문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나중에 푸앵카레는 상대성 이론에 관해 아주 부정적이었으며 그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두 과학자는 서로에게 냉담했다. 푸앵카레가 1912년 세상을 떴을때 아인슈타인은 그를 물리학과 기하학 분야에 ‘통찰력과 깊이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그 독창성을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은 만큼 푸앵카레의 분노는 시샘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인슈타인을 상대성 이론에 몰두하게 만든 또 한 사람으로 독일인 아우구스트 푀플을 들 수 있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농기계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1892년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에 관한 교과서를 썼다. 그 책에서 그는 물리학자들에게 공간 개념을 재고해 볼 것을 요청했다. 푀플에 의하면 뉴턴과 마흐 역학에는 절대 기준계가 없고 단지 상대적 위치와 운동만이 물리적 의미를 갖는다. 이런 그의 주장은 근본 원리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김나지움을 자퇴한 해에 출간되었는데 당시 탐구력 있는 학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인슈타인도 독학으로 물리이론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 이 책을 탐독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아인슈타인의 평생 친구 중 한 사람인 베소도 그의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에게 물리학계의 석학 마흐를 읽어보라고 권했던 베소는 아인슈타인이 연구의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을 때마다 그의 탁월한 상담역으로 뛰어난 역할을 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1년간 깊이 고민했으나 해답을 찾지 못했던 역학과 로렌츠의 전기역학과의 불일치에 대한 고민을 베소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눈 끝에 아인슈타인은 아무래도 그 문제는 포기해야겠다고 베소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밤 다시 베소의 집에 찾아간 아인슈타인은 “고맙네.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에겐 인내력만이 알파요 오메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문제에 대해 몇 년 씩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젠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인내력의 한계점까지 도달했을 때 다시 또 원위치로 돌아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번만 더 연구에 매달린 끝에 섬광처럼 떠오르는 ‘모범 답안’을 찾은 것이다. 그 때 그가 느꼈을 희열은 제3자가 보더라도 숙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