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장기하와 노홍철

스카이뷰2 2009. 6. 17. 13:25

 

                                                                     서로 팬이라고 말하는 장기하와 노홍철.(다음 뉴스사진)

      

         장기하와 노홍철

 

어젯밤 늦은 시각 우연히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요즘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장기하와 노홍철 두 청년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이 두 청년은 서로의 ‘팬’이라고 했다.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청년이 서로에게 덕담을 선사하며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는 듯한 모습은 어떤 미녀들의 ‘수다’보다 더 보기 좋았다.

‘사나이들의 우정’이 주는 멋스러움이라고나 할까.


노홍철을 형이라고 부르는 장기하는 “형은 내가 추구하는 삶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노홍철은 “장기하의 “별 일 없이 산다를 들었을 때 무릎을 치며 공감을 했다. 열정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개그맨답게 노홍철은 장기하와의 첫 만남의 장소는 ‘남자화장실’에서였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말 저말 거침없이 할 것 같은 개그맨이지만 전화번호 알려달라는 말이 안 나와 ‘미니홈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고 그날 밤 장기하의 미니홈피로 들어가 ‘1촌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의외로 순정파스러운 그의 이런 면모가 열애중이라는 그 여가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진 미니홈피에서의 결연으로 두 청년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여가수와의 열애설로 ‘급부상’한 노홍철을 처음 봤을 땐 “요샌 별난 애들이 다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호감’이었다. 샛노랗게 물들인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촐싹거리는 듯한 화법도 정신없어 보였다.


한번 인사 튼 사람 중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겐 무조건 ‘형’이라고 부르기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인사한 뒤부터 ‘형’이라고 부른다는 보도를 인터넷 어디선가 보고 웃었던 기억도 났다. 


남을 웃기는 개그맨인 그를 보며 장기하는 “군대에서 장래에 대한 고민에 싸여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노홍철형에게 희망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장면에서 잠시 뭉클해졌다. 누가 누구에게 ‘희망’을 주고 ‘위로’를 준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하고 대단한 일인지.


장기하가 노홍철에게 희망을 얻었다는 것은 요즘처럼 ‘암울한 시대’에 한줄기 시원한 샘물 같은 청량감을 선사해주는 소리 같았다. 그 말을 들으니 어떤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짧은 시도 떠올랐다.


힘들고 각박해진 세상에서 서로서로 누군가의 희망도 되고 버팀목이 되고 연탄재같이 뜨거움을 바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귀하고도 아름다운 일 아니겠는가.


언젠가 일본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누군가 꿈꾸며 애틋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고백했던 게 떠오른다.


지금처럼 각박하고 삭막한 시대에 제일 부족한 요소는 바로 이런 ‘애틋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텔레비전에 나온 장기하와 노홍철이 ‘애틋하게’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에게서 ‘희망’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아주 소중한 상징적 이미지로 대우해줄 만하다.


노홍철은 장기하의 역설적인‘실연(失戀) 송(song)’인 ‘별일 없이 산다’를 아주 구성지게 낭송했다. 노래로 듣는 것보다 더 재밌고 의미 있게 들렸다.  그는 또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한 구절을 낭송하면서 개그맨다운 끼를 한껏 발산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공자님 말씀’을 소개하면서 그는 요즘 세상에서라면 “공자님과 1촌을 맺고 싶다”는 말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그냥 건들건들하기만 한  개그맨은 아닌 듯해 보였다.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장기하가 장식했다. ‘말하러 가는 길’이라는 그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 청년가수가 그냥 ‘반짝 지나가는 가수’가 아니라 ‘롱런할’ 가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정적인 미성(美聲)에다 노래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듯하다.


모처럼 심야에 본 TV프로그램에서 ‘희망 없다는’ 요즘 신세대들의 희망의 편린을 본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별일 없는 것처럼 살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고 유쾌하게 살기위해서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는 신세대들의 ‘삶의 철학’이 든든하게 여겨졌다.  


장기하와 얼굴들 - 말하러 가는 길


한참만에 현관을 나설 때 나의 손은 약간 떨렸다

조금씩 붉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겨우 한걸음을 떼었다

성큼성큼 걸어갈 때에 나의 심장은 약간 뛰었다

이제는 다 져버린 해를 뒤로 한 채로 훌쩍 버스에 오른다


이 길 따라 달려가면 열 정거장만 가면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찻집에 들어가면

그와 마주 앉으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그 얘기를 건네야 한다


여덟번째 정거장을 지날 때 나의 입술은 약간 말랐다

문득 떠오르는 그 날을 생각하며 꿀꺽 마른침을 삼킨다

이 길 따라 달려가면 열 정거장만 가면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그 찻집에 들어가면

그와 마주앉으면

오랫동안 준비했던 그 얘기를 건네야겠지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