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전형적인 초식남을 연기하는 지진희와 건어물녀 엄정화.
초식남과 결혼 못하는 남자 VS 건어물녀 이야기
오늘 아침 뉴스시간에 소개된 ‘초식남(草食男)’과 ‘건어물녀(乾魚物女)’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렇잖아도 몇 달 전부터 심심찮게 ‘초식남’이라는 남성 스타일에 대한 보도가 지면을 장식하는 걸 보고 ‘21세기형 남성문화’의 대세를 장악할 것 같다는 예감을 가졌었다.
보도에 따르면 ‘초식남’은 2006년 일본인 여성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深澤 眞紀)가 비즈니스 잡지에 ‘U35 남자 마케팅 도감’이란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한다.
일본의 20,30대 미혼남성들의 경향성에 대해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한 그녀의 글은 일본열도를 휩쓸었고, 그 이후 일본 출판시장엔 ‘초식남’을 다룬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잇달아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아베 히로시가 주연을 맡았던 '결혼못하는 남자' 역시 초식남 열풍의 산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한 잡지사가 조사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30대남성의 70%가 자신을 ‘초식남’으로 여긴다는 응답이 나왔다.
일본의 젊은 청년들 중 적잖은 수가 ‘여성화’한 라이프스타일로 인생을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후카사와가 분석한 초식계남자(草食系男子,そうしょくけいだんし))의 가장 큰 특성은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들로 연애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소위 '남자답게 사는 것'보다는 '나답게 사는 것'을 좋아해 그런 쪽으로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로 자신의 관심분야나 취미활동에는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들이며 여성을 그냥 ‘수다 친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남자’의 특성으로 꼽혀왔던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육식남’ 혹은 ‘마초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요즘 방영중인 TV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남주인공 지진희가 바로 그런 ‘초식남’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다. 직업도 괜찮고 용모도 멀쩡한 남성이 결벽증 비슷한 증세로 여자들의 접근에 줄행랑치는 모습이 코믹하다. 하지만 자식의 혼사를 걱정하는 부모에겐 그런 증세는 꽤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
이런 ‘초식남’들의 여성버전이 바로 ‘건어물녀’라고 한다. 2007년 일본 TV드라마 '호타루의빛'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호타루의 별칭에서 태어난 말이다. 감정이 메말라 연애와는 거리가 멀다.
소위 커리어우먼 가운데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이 여성들은 직장에 출근할 때는 말쑥한 차림새지만 집에 오면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장으로 거의 털털한 ‘선머슴’같은 라이프스타일로 ‘황금 같은 청춘기’를 허송세월하고 있다. 남자들과의 연애따위는 그녀들 관심권 밖이다.
그러니까 이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함께 하는 ‘공간’에선 남녀 간 러브스토리가 발생하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지남철의 N극과 S극이 아닌 그냥 같은 N극끼리거나 S극 끼리로 ‘소 닭 보듯’ 데면데면 보고만 있으니 무슨 러브스토리가 발생할 틈이 없는 것이다.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의 여주인공 내과의사 엄정화도 바로 그런 건어물녀에 해당된다고나할까. 그래도 드라마에선 ‘초식남 증세’가 극심한 남주인공에게 한발 다가서며 애틋한 심경고백을 하는 여주인공은 ‘건어물녀’의 증세가 많이 완화된 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 ‘초식남’들이나 ‘건어물녀’들은 21세기에 탄생한 ‘신인류’들로 살아가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속에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생존양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른바 ‘88만원세대’라는 요즘 청년들이 자신의 ‘주머니 사정’상 ‘여자를 거두기’ 어렵다는 걸 잘 알기에 아예 ‘여성을 포기’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애정’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경제능력’이 되는 부류들도 ‘여성’을 돌보는 ‘기사도 정신’은 갖고 있지 않는 게 요즘 세태다.
초식남들은 1970,80년대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태어나 물질적으로 풍요한 시대에 자라났다. 산업전사로 뛰느라 바빴던 부친을 대신해 ‘모친(母親) 주도’의 정서적 교육을 받았고, 학교에서도 대부분 ‘여선생님’아래 교육을 받아 자연스레 ‘여성적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여성’은 ‘돌봐줘야 하는 존재’라기 보다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존재고, 모친과 여선생님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여성 친화적 문화’를 전수받았기에 은연중 그들 인식의 DNA에는 여성적인 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패션이나 요리에 관심이 많고 여자 친구들과의 ‘수다문화’에 익숙하다. 그런 그들에게 여성을 ‘이성(異性)’으로 느끼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한 자녀 가정의 ‘외동이’들로 애지중지 자라난 그들이기에 예전에 형제 많은 집의 아들들처럼 누구를 ‘돌봐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은 그들에겐 생경한 감정이기도 할 것이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남자아이들과 꼭 같은 ‘대우와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그들에게 남성은 더 이상 ‘의지하고 기댈 상대’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알파걸’로 상징되는 그녀들은 ‘여성상위 시대’의 명실상부한 존재들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 능력의 뒷받침이야말로 건어물녀들의 큰 백그라운드인 셈이다.
1980년대 초반 만해도 한국의 ‘여검사’는 검찰 통틀어 한, 두 명이었지만 요즘은 거의 과반수에 가까운 ‘여검사’들이 활약할 정도다. 비단 검찰 뿐 아니라 ‘금녀의 지대’로 알려진 사회 각 분야에 여성 진출이 아주 활발해졌다. 남성들도 견뎌내기 어렵다는 전투기조종사직에도 여성이 진출한 지 꽤 되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도 여성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동등한 경쟁상대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진 만큼 상대적으로 ‘초식남’들의 존재감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초식남’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에 ‘정신적,경제적, 문화적 양성평등’화 추세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긍정적 반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래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초식남과 건어물녀’ 진단표.
◇초식남 테스트
1. 격투기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2. 회식에서 건배할 때 음료수도 OK.
3. 고백을 받으면 일단 누군가에게 상담한다.
4. 소녀 취향의 만화가 싫지는 않다.
5. 여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연애로 발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6. 편의점 신제품에 항상 관심을 가진다.
7. 일할 때, 간식(특히 과자)을 옆에 둔다.
8. 외출보다 집에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9. 이성을 위해 돈을 쓰는 것보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인생을 산다.
2개이하 : 당신은 초식도20%, 3개~5개 : 당신은 초식도60%
6개이상 : 당신은 초식도90%
◇건어물녀 테스트
1. 집으로 돌아오면 트레이닝 복 차림이다.
2. 휴일은 노메이크업 & 노브라.
3.'귀찮아', '대충', '뭐, 어때'가 입버릇이다.
4. 술 취한 다음날, 정체모를 물건이 방에 있다.
5. 제모는 여름에만 해도 된다.
6. 까먹은 물건이 있으면 구두를 신은 채로 까치발로 방에 가지러 간다.
7. 메일(문자)의 답변은 짧고 늦게
8. 텔레비전을 향해 혼자 열을 낸 적이 있다.
9. 냉장고에 변변한 먹을게 없다.
10. 냄비에다 직접 대고 라면을 먹는다.
11. 방에 널어놓은 세탁물은 개기 전에 입어버린다.
12. 최근 두근두근했던 일은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것 정도.
13. 1개월 이상, 일이나 가족 관계 이외의 이성과 10분 이상 말하지 않았다.
14. 솔직히 이걸 전부 체크하는 게 귀찮았다.
15. 솔직히 질문에 체크하면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0개: 멋진여성, 1~3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4~7개: 당신은 건어물 예비인
8~11개: 건어물녀 인정! 12개 이상: 초 건어물녀)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은미 ‘애인있어요’-한국인 애창곡 1위 (0) | 2009.07.31 |
---|---|
10억원이 넘는 스타의 베스트 카 넘버 5 -박상민,소지섭,류시원,이세창 (0) | 2009.07.30 |
미셸 오바마와 두 딸의 공연장 나들이 (0) | 2009.07.15 |
장기하와 노홍철 (0) | 2009.06.17 |
‘시티 홀’ ‘신데렐라 맨’ ‘그 바보’-드라마 삼국지의 승자는? (0) | 2009.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