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타일 - 영혼은 없고 패션만 있는 ‘엣지녀’ 드라마

스카이뷰2 2009. 8. 3. 12:03

  

                                     이런 황당한 머드팩 전쟁 장면을 보여준 드라마 '스타일'(다음 자료사진) 

   

     스타일 - 영혼은 없고 패션만 있는 ‘엣지녀’ 드라마


8월 1,2일 안방극장에 첫 선을 보인 주말 드라마 ‘스타일’을 보면서 씁쓸한 느낌이었다. 첫 시청률도 17%를 넘겨 굉장히 높았고, 시청자들의 게시판 반응도 우호적이라는 드라마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요란한 '눈요기거리'로 어필하려는 듯한 비상식적인 드라마전개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없고 여자 탤런트들의 요란한 패션과 아찔한 ‘킬 힐’을 번갈아  선보이는 ‘패션 쇼’ 같은 장면 나열, 상식적으론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오버 액션들을 보며 이런 드라마가  시청률만 높게 나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개 드라마에서 무슨 의미를 찾느냐고 비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의미가 있어야 재미와 높은 시청률도 지속되는 법이다.


한마디로 ‘영혼 없는’ 이야기, 진정성 부재의 드라마가 명품만 걸치고 나와  쇼나 하면서 대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제작진의 큰 오산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두 번은 그런 설정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시청자들의 높은 수준은 그런 걸 계속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이 드라마의 전작 드라마가 워낙 시청률이 높았던 덕을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첫 회를 보면서 재작년에 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미국 영화와  비슷한 장면들이 많아  ‘표절 시비’가 붙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물론 그 영화를 안 본 다수의 시청자들에게야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적잖은 장면들이 영화와 너무 비슷해 첫 회부터 드라마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아무리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는 패션 잡지사가 무대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기자’들인 여성들의 ‘의식구조’가 고작 수백만원 하는 ‘명품 백’을 갖고 싶어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은 현재 서울 하늘 아래 그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패션잡지 여기자들을 놀려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게다가 국무총리가 참석한 ‘공식 연회장’에서 경쟁지 편집장이 스카웃하려다 실패한 타사 여기자를 쓰러뜨리고 배 위에 올라앉아 엉덩이로 깔아뭉개는 장면은 정말 이런 드라마가 유수한 지상파 방송의 ‘황금 시간대’ 주말 드라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냉혹한 편집장으로 나오는 메릴 스트립을 흉내 내는 것 같은 김혜수는 좋은 몸매에 화려한 의상을 입는 것까진 메릴 스트립을 좇아가는 듯했지만 겉모습만 비슷해 보인다는 인상이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짝퉁 연기'라고나 할까.

아직 김혜수의 내면연기는 그 역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퀭해 보이는  눈빛으로 ‘엣지나게’라는 낯선 말을  습관처럼 걸핏하면 외쳐대는 모습이 오히려 코믹한데다가 목소리 톤도 불안정했다. 


하지만 인터넷 상엔 이미 그녀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글들이 넘치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눈은 다 제각각이니 누가 옳고 그르다는 평가는 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김혜수의 연기는 무언가 부족해 보였다.

그녀가 습관처럼 말하는 ‘엣지나게’가 최고의 유행어가 될 것이라는 예측성 보도도 넘쳐나고 있다. 

이 ‘엣지(edge)나게’는 패션 쪽 종사자들이 자주 쓰는 말로 ‘날선 듯 뚜렷하고 두드러진 차별화된 개성과 멋’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시청자들에겐 김혜수라는 탤런트가 수시로 외쳐대고 있는 중독성이 매우 강한 이 낯선 외래어가 다소 ‘폼 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텔레비전의 최대 위력이라 할 수 있는 ‘반복적 동어사용’에 의한 유행어 등극의 수순이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외마디’를 수시로 외쳐대 유행어로 만들어 버리는 일을 그동안 수없이 봐왔다. 텔레비전이 만들어낸 이런 유행어가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을 떨어뜨리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민화 정책이 따로 없다. 별 대단치도 않은 외마디 말들을 자꾸 들려주고 시청자들의 의식을 세뇌시켜버리는 것이야말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최악의 수법이 아닐까 싶다. 


독한 편집차장 김혜수를 ‘빛나게’받쳐주는 어리버리하고 명품중독자같은 풋내기 여기자 이지아의 역할도 ‘오버’가 심하다. 그 드라마를 본 수많은 시청자들은 그녀가 그렇게까지 몸을 던져 하는 연기가 오히려 안쓰럽고 불편했을 것 같다.  


도대체 아무리 ‘하늘같은’ 편집차장이라지만 보기에도 흉기 같은 10센티가 훨씬 넘는 ‘킬힐’을 신은 채 바닥에 누워있는 후배 여기자를 밟고 지나간다는 ‘설정’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혹자는 ‘드라마’인데 뭘 그러냐고 하겠지만 드라마의 기본은 ‘리얼리티’라는 걸 감안한다면 드라마 ‘스타일’에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오버 액션은 참고 보기 민망할 정도다. 어제 방영한 2회 때도 ‘말도 안 되는 설정’을 계속 보여줘 이 드라마의 감독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화보촬영 중에 소품으로 필요한 조개를 캐러갔던 푼수데기 여기자 이지아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친과 새로 생긴 애인을 ‘조우’하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치고받는 극한의 몸싸움까지 벌이는 장면은 코미디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사람사는데 무슨일인들 안일어날까마는 서울에서 사라진 연인을 하필이면 제주도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맞딱뜨리게 한다는 설정도 신파조다.

 

아무리 드라마라해도 어렵사리 모신 인터뷰 대상자와 함께 사진촬영을 진행하던 여기자가 '사적인 감정'에 빠져 일을 망치는 이런 유치한 격투장면을 그토록 오랫동안 내보냈다는 건 시청자를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금같은 주말시간에 너절한 격투신을 보고 감동할 시청자는 없을 것 같다. 


담당기자의 그런 황당한 ‘비상사태’ 발생으로 직접 조개를 캐러나간 김혜수와 인터뷰의 주인공인 류시원이 개펄에서 말다툼 끝에 서로 엉켜 붙어 싸우는 대목에선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된다고나 할까.  

이런 한심한 장면을 두고 어떤 온라인 연예신문에선 ‘빛나는 연기자 정신’ 어쩌구 하면서 극찬을 하고 있는 걸 보고 더 기가 막혔다. 요 근래 본 드라마 중 ‘최악의 장면’에 뽑힐 만한 한심한 장면이었다.


이 드라마 속 패션잡지사 풍경은 심하게 말하자면 호스티스들이 패션 경쟁을 하고 앉아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 더구나 부하 여기자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히는 김혜수도 그 윗선에게 ‘노예나 몸종같은’ 자세로 시중을 들고 있는 장면들을 보면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실제 패션잡지 세계가 그런 식으로 천박한 상하조직문화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하더라도 드라마에선 좀 설득력 있고, 진정성 있게 그려 내야하는 것이 드라마 감독의 몫일 텐데 이 ‘스타일’ 드라마 감독에겐 아직 그런 ‘재능’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청률이 높다고 다 좋은 드라마는 아니라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단계인 드라마 ‘스타일’의 우스꽝스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 드라마가 과연 초반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거대 방송사가 내보내는 주말 드라마의 시청률까지 걱정해줄 필요야 없겠지만 재미도 없고 수준 낮은 드라마를 봐줘야 하는 시청자입장에선 그야말로 다채로운 '채널 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