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구세대가 본 황당한 ‘2PM 재범 사태’

스카이뷰2 2009. 9. 9. 12:29

 

                  8일 오후 인천 공항에서 출국하면서 팬들에게 인사하는 2pm 재범.(다음 뉴스 사진)

 

           구세대가 본 황당한 ‘2PM 재범 사태’

 

아침신문 한 구석에 나온 ‘4년 전 쓴 한국 비하 글이 한창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를 침몰시켰다’는 내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뭔 소리야” 하고 읽어보니 어이가 없다. 아무리 인터넷세상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짓밟을 수 있나싶어 공포심마저 들었다.

 

우선 명색이 요즘 신세대 부러울 것 없이 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깨어있는 구세대’라고 자부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일단 ‘2PM’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기껏해야 동방신기니 더블에스오공일이니 슈퍼주니어 정도를 아는 주제면서 요즘 아이돌들을 다 아는 것처럼 행세했으니...

 

더구나 이 ‘신성처럼’ 등장한 2PM의 리더 재범이란 청년은 요즘 ‘잘 나가는 멋쟁이 누나’들이 최고로 꼽는 데이트 상대였다는 것과, 기존의 ‘꽃미남’ 컨셉을 파괴하고 ‘짐승남’의 터프한 이미지로 누나들을 설레게 했다는 대목에선 내가 마치 ‘뒷방 늙은이’가 다 된 듯해 씁쓸해졌다.

 

비록 오늘아침에서야 뒤늦게 알게 돼 ‘만시지탄’이긴 해도 그래도 무슨 사태 돌아가는 ‘상황파악’은 워낙 기민하게 하는 편이어서(자화자찬?^&^) 요 며칠 새 매력적인 ‘짐승남’ 재범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구설수’와 그 비극적 결말을 듣고는 나라를 걱정하는 구세대로서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스물두 살이라는 재범은 4년 전, ‘JYP 연습생 시절’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글을 인터넷 사이트인 미국판 싸이 월드 ‘마이 스페이스’에 올렸다고 한다.

 

‘한국인은 정상이 아니다. 나는 한국을 증오해,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여기 사람들은 내가 하는 랩을 못하는데 잘한다고 생각해,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허상이었어.’ 이런 내용을 비속어가 담긴 영어 글로 남겼다는 것이다.

 

잘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나 사춘기 소년이 부모형제를 떠나 이역만리 ‘타향’에서 죽어라 연습만하다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헤아리면 이해가 간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면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야하는지는 웬만큼 알려진 일이다.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신세한탄’을 했을 것이다.

 

재미교포 3세라면 거의 ‘미국 사람’ 비슷한 정서를 갖기 십상인데다 말도 잘 안통하고 정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미국생활과 많은 차이를 느끼면서 하루하루가 불안한 심정이었을 테고 이러저러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극단적인 생각도 했을 법하다.

 

그렇게 해서 비롯된 잠깐의 실언이 ‘스타’로 떠오르던 이 아이돌 그룹 리더를 하루아침에 침몰시킨 게 이번 ‘2PM사건의 개요’다.

재범은 결국 8일 오후 6시 30분 대한항공편으로 가족이 있는 미국 시애틀로 떠나버렸다.

 

인천공항에는 그의 출국소식을 접한 수백 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재범아 가지마, 기다려”를 연호하는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하다. 그나마 너무 외롭고 절망적이었을 재범이라는 청년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을 것 같다.

 

구세대가 보기엔 일련의 이런 사태는 너무 황당하다. 인터넷에서 과연 저런 식으로 ‘인민재판’ 받듯이 한 사람을 망가뜨리는 권한은 과연 누구에게 위임받았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이 자리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청년의 ‘불온했던 발언’을 두둔하고 싶진 않다. 단지 그동안 연예인들의 신상에 대한 살벌한 ‘인터넷 인민재판’이 종종 일어났고, 그렇게 해서 적잖은 연예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일들을 지켜보면서 이번 ‘2PM 사건’도 그 연장선상의 사건으로 보여 지기에 인터넷 문화가 점차 ‘흉포해지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비난이 따르겠지만 소위 ‘네티켓’을 지키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그런 식으로 공격하다보면 그야말로 ‘만인이 만인을 괴롭히는’ 악순환의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경고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는 ‘관용의 정신’이 너무 부족한 듯하다. 이런 소리를 하면 ‘구세대답다’고 또 비난받겠지만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지 ‘나와 다른 의견, 우리와 다른 목소리’에 대해 너무 배타적인 듯해 걱정이 들곤 했다.

 

이런 현상은 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띤 그룹에서 상대 진영을 향해 ‘무슨 말을 못하게 하는’ 독선적인 경향으로 나타난 것 같다. 그렇다고 보수진영이 선(善)이라는 얘긴 아니다. 누구 말처럼 '악다구니하는 보수세대'를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소리도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인터넷 문화는 구세대보다는 신세대들의 ‘정신적 텃밭’ 역할을 많이 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와 수구, 신세대와 구세대 이렇게 편 가르기로 나가다 보면 인터넷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슈를 놓고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소위 ‘댓글 배틀’들을 지켜보면 섬뜩해질 때가 많다. 익명성이 보장되어선지 ‘위아래’가 없이 마구 공격적이다.

상대의 인격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아주 고약한 언사가 난무한다.

 

이번 ‘2PM의 사건’의 경우 불과 나흘 동안 ‘재범 퇴출’을 부르짖는 서명운동이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불처럼 번졌고, 수만 개의 비난성 댓글들이 폭주했다고 한다. 이제 스무 살이 좀 넘은 청년으로선 감당해내기 어려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인터넷 재판’을 보면서 일본 네티즌들까지 한국 네티즌들이 무섭다고 했겠는가.

 

물론 2PM의 재범이 ‘뱉어낸’ 말들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소년시절 내적인 갈등을 이기지 못해 주절거렸던 허접한 말들을 꼬투리 잡아 ‘죽일 놈’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군중심리의 걷잡을 수 없는 쏠림 현상과 함께 ‘속전속결’로 한 청년을 무자비하게 ‘매장’시켜버린 이번 ‘재범 사태’는 인터넷 문화의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 인성을 황폐화 시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수사대’에 의해 자신의 지난 날 ‘실수발언’이 공개된 뒤 재범은 즉시 사죄의 글을 발표했다. 이 정도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4년 전 실언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데도 끝까지 용서를 하지 않은 네티즌들은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다.

 

부정한 여인에 대해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고 말했던 예수님이야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관용의 정신’이 점차 사라지고 선동적인 군중심리에 편승해 ‘인격살인’의 우를 범하고 있는 우리 인터넷 사회의 폭력적인 집단심리가 걱정스럽다.

 

비단 이번 경우 뿐 아니라 인터넷 ‘악플’로 인해 ‘인격 살인’당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올바른 ‘인터넷 문화’가 하루빨리 자리 잡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사태로 황망하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간 재범이 다시 돌아와 더욱 성숙해진 가수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