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같은 골을 성공시킨 뒤 하이파이브 하는 이정수와 기성용.(다음 뉴스 사진제공)
쾌걸 조로같은 마스크를 쓴 김남일,붕어빵 아들을 안고 있다.(뉴시스사진.)
김남일 박지성 박주영 이정수 설기현, 이들이 있어 행복했다
지난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따스한 기분을 맘껏 느꼈다.
우리 집 마루에 혼자 앉아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호주 대표 팀의 평가전을 보는 내내 박수치고 웃고 에고고 탄성을 내뱉으면서 한 20년은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축구는 너무 재밌는 게 흠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호주 대표 팀에게 3대1로 완승, 25전 연속무패 위업을 이룬 우리 대한의 아들들이 보여주는 녹색 그라운드 위의 쇼는 정말 멋졌다. 경기 시작 전 호주는 ‘피파 랭킹 14위’ 우리는 49위라는 아나운서의 멘트에 조금은 걱정했다.
하지만 호주 팀 감독이 핌 베어백이라는 말에 다소 안도감이 들었다. 베어백은 다 알다시피 우리 대표 팀 코치와 감독을 맡았던 경력의 소유자로 내가 보기엔 그렇게 썩 탁월한 감독능력은 갖추지 않은 인물이다.
그래도 피파 랭킹이라든지 호주 선수들이 대부분 유럽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어서 다소 찜찜한 기분이었다.
애잔한 애국가의 선율이 흐르는 동안 눈을 감고 기도하는 우리 대표 팀 선수들의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특히 신앙심 깊은 이영표나 박주영, 노장 골 키퍼 이운재, 무표정하면서도 강단 있어 보이는 박지성을 보니 든든한 기분도 들었다. 그야말로 우리 ‘태극전사’들은 한결같이 다부지고 믿음직한 모습들이었다.
경기 시작 5분 후쯤인가, 이청용의 어시스트를 받은 박주영의 그야말로 ‘직사포’같은 쪽 곧은 슛의 성공은 아마도 상암구장에 있던 관중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앞에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 그리고 위성으로 중계방송을 보던 해외동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애국자가 따로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그 선수들과 우리 모두는 애국자였다.
손뼉이 뜨거워질 때까지 마구마구 박수를 쳤다. 모처럼 혼자 있는 토요일 저녁 이렇게 솟구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보약이 따로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 행진이야말로 천연 보약이다.
그라운드에 주르륵 미끄러지면서 기도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주는 박주영은 어느새 앳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의젓하고 듬직한 ‘남자’의 멋을 풍기고 있었다.
2006년 월드컵 때인가 스위스 팀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실수에 당황해 하던 ‘소년 풍’의 박주영은 ‘세월의 담금질’속에 저렇게 화려한 골로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의 멋진 골 이후 우리 대표 팀은 호주 팀을 제압하면서 ‘축구 보는 재미’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박주영의 골 성공 후 불과 15분 쯤 뒤에 이정수의 ‘마술 같은’ 골은 또한번 내 손바닥을 달궜다. 발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골인지도 모르고 있는 새에 네트가 출렁이는 걸 보는 그 기쁨이란...
이정수는 지난번에도 절묘한 슈팅으로 ‘존재감’을 알리더니 이번에도 문전에서 스포츠만화에서처럼 ‘휘리릭’ 날랜 발동작으로 호쾌한 골을 보여주었다.
이정수는 ‘아내의 유혹’에서 푼수고모가 좋아하던 ‘오빠’와 무척 닮은 꽤 핸섬한 얼굴의 소유자다. 축구선수가 아니었다면 록밴드의 베이스를 맡았을 그런 예술적 분위기의 섬세함도 갖춘 선수로 내년 월드컵 때 ‘일’을 낼 것만 같은 예감을 준다.
박주영에 이어 이정수의 골로 ‘승세’는 거의 굳어져 가는 듯했지만 호주도 가만있진 않았다. 호주 골잡이 패트릭 키스노르보의 ‘만회 골’로 2대 1이 되면서 은근히 불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우리 앞에 모습을 보인 우직한 표정의 설기현이 또 ‘깜짝쇼’처럼 슛을 날려 골로 연결했다. 골이네 아니네 잠시 실랑이를 벌였지만 볼이 엄연히 백색 데드라인 안에 들어간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은 마침내 호주에 3대 1로 ‘승기’를 잡았다.
호주 전에서 제일 돋보였던 선수는 박지성과 김남일이었다. 주장 박지성이야 아무리 멋진 말로 묘사를 해도 부족할 것 같은 ‘축구 천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SF영화에 나오는 우주인 같은 헤어스타일이 그에게 어울려 보였다.
아마 호주 선수들은 박지성의 ‘초인적인’ 집요함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단독 드리블 실력에 두손두발 다 들었을 것 같다. 박지성이라는 존재는 아마 대한민국 축구역사상 아주 특이한 존재로 기록될 것 같다.
박지성의 드리블은 언제나 골보다 멋있다. 물론 ‘축구의 꽃’은 네트를 가르는 골이 단연 으뜸이겠지만 그의 신들린 드리블은 골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뭐랄까, 축구의 진수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박지성이 20여m를 질풍노도와 같은 솜씨로 단독 드리블하는 모습은 어떤 ‘전투 신’보다 화려하고 시원하면서 멋있었다. 그러고도 그의 ‘아무 일 없었던 듯한’ 태연한 표정은 얼마나 압권인지...‘사나이의 멋’ 그 자체인 듯하다.
이번 경기에서 나에게 흐뭇한 미소를 선사한 ‘수훈 갑’선수는 애기아빠가 된 김남일이다. ‘쾌걸 조로’ 같은 마스크를 쓴 채 등장한 김남일을 보는 순간 며칠 전 ‘Daum 대문페이지’에 실렸던 ‘김남일 아들’의 모습이 포개져 그렇게 재밌고 우스울 수가 없었다.
마스크를 썼더니 돌잡이아들 얼굴과 그렇게도 꼭 같은 ‘붕어빵 부자’의 진면목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축구관전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했다. 코뼈 골절로 마스크까지 써가면서도 그라운드를 달리겠다는 ‘야생마 의지’를 보여준 김남일은 이젠 의젓한 아기아빠가 되어선지 마스크 속으로 보이는 눈에 카리스마가 강렬하게 번쩍였다.
2002년 ‘월드컵 4강’ 환영 광화문파티에서 “오늘 밤 나이트에 가고 싶은 김남일입니다”라고 말해 아가씨들을 자지러지게 만들었던 ‘매력남’ 김남일도 서른 셋, 명실상부한 대표 팀 ‘큰 형 그룹’이 되었다. 그만큼 세월이 흐른 것이다.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허정무감독의 전략과 용병술도 대단하다. 축구도 영화처럼 '감독의 예술'인 만큼 감독의 역량이 그 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법이다. '토종'감독으로서의 컴플렉스를 25전 무패로 깔끔히 털어버린 허정무 감독에게 헌사를 보낸다.
어쨌거나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이 ‘푸른 말’같은 선수들과 함께 보낸 지난 토요일 밤은 오랜만에 참 행복했다.
태극전사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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